건설계의 쟁점은 단연 신도시 개발 문제다. 국토개발연구원은 수도권의 주택부족과 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판교, 화성, 천안 세 곳에 신도시를 개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건설교통부는 때를 기다린 듯, 신도시 건설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건설 분위기를 조장했다. 여론은 크게 둘로 갈리었다. 찬성하는 측은 수도권의 주택난을 해소하고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 했고, 반대하는 측은 분당, 일산에 이어 또 다른 베드타운을 만들 뿐, 오히려 환경을 훼손하고 교통난을 유발하는 등 부정적 효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양측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인 것처럼 들려서 누구의 의견이 타당한 것인지 혼돈된다. 그러나 찬성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간혹 예외는 있겠지만, 그들은 대개 건설교통부 고위 공무원, 국토개발원 등의 관변 학자들, 그리고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강력히, 그러나 은밀히 찬성하고 있는 이들은 국내 유수의 건설회사들이다. 이쯤되면 무엇 때문에 신도시 개발이 계획되고 추진되는지 눈치챌 수 있다. 그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결국은 건설회사들을 살리기 위한 경기 부양책일 뿐이다.
우선 인구 20만에서 50만에 이르는 대도시를 5년, 10년의 단기간 내에 건설 완료한다는 목표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다. 물론 국내 건설계는 인구 40만의 분당과 30만의 일산을 5년 내에 끝냈던 기적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 초스피드한 업적 뒤에는 수많은 부실공사가 있었고, 인구를 분산하기는 커녕 또 다른 인구 유입요소가 되었다. 자족도시로 개발하겠다는 명분은 오간 데 없고, 서울의 위성도시, 베드 타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위성도시 분당은 수지 용현 등 새끼 위성도시를 확대 재생산했고, 급기야 용인과 화성 일대의 난개발을 불러 일으켰다.
신도시가 서울의 집값 상승을 억제한다는 논리도 선전에 불과했다. 강남 일대의 집값은 오히려 신도시와 비교 우위로 더욱 상승했고, 초기에 분당에 입주했던 영원한 서울시민들은 다시 서울로 되돌아오고 있다. 서울에 직장을 두는 한, 수도권 신도시는 영원한 밤의 도시이고, 위성도시일 뿐이다. 새로운 신도시는 자족도시를 목표로 한다지만, 자족도시를 만들 바에야 굳이 수도권에 위치할 필요가 있는가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난개발을 억제하기 위함이라지만, 계획된 난개발과 조직적인 환경파괴는 무방하다는 말인가?
신도시 개발의 논리로 삼고 있는 주택난은 근본적으로 수도권의 과밀한 인구집중 때문이다. 택지의 부족, 환경 파괴, 집값 상승 등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이란, 지방의 균형 발전을 통해 인구 유입을 자연스레 억제하고 지방 분산을 꾀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교과서적인 해결책이며 장시간이 걸리는 비현실적인 대안이라 치부해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단시간의 미봉책에만 급급할 것인가?
또한, 신도시 개발이란 구도시의 슬럼화를 전제로 하는 전략이다. 지금이라도 서울 강북의 노후 주거지들을 개량하고 활성화시킬 생각을 왜 하지 않는가? 어떤 민간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강북의 용적율을 두 배만 올려도 수도권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라도, 여러 가지 대안들을 모색하고 실현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신도시 개발이란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그만큼 부작용과 역작용이 많은 미봉책이다.
신도시 문제는 결코 남의 동네 일이 아니다. 삶의 질과 환경의 문제를 해결해야할 건축계의 문제다. 연일 지상에는 도시학계나 건설업체들의 논박만이 오르내릴 뿐, 건축계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