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2.02.01.
출처
현실문화
분류
건축문화유산

대숲 너머 부는 바람은 귀를 맑게 하고
시냇가의 밝은 달은 마음 비추네.
깊은 숲은 상쾌한 기운을 전하고
엷은 그늘 흩날려라 치솟는 아지랑이 기운

술이 익어 살며시 취기가 돌고
시를 지어 흥얼 노래 자주 나오네

한밤중에 들려오는 처량한 울음
피눈물 자아내는 소쩍새 아닌가

소쇄원 사십팔영의 작가 김인후는 그 작품 이외에도 소쇄원에 대한 수많은 시가와 기록을 남겼다. 그 가운데서도 위의 소쇄원을 위한 즉흥시는 소쇄원의 건축 계획과 개념을 핵심적으로 간파해 보여주고 있다. 대숲의 바람과 소쩍새 울음, 엷은 그늘과 밝은 달 그리고 취중에 나오는 시와 노래 등이 소재로 등장하면서, 청각적인 소리․빛과 그늘의 대조 그리고 관람자의 문학적 정서라는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김인후는 이 시에서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으로 소쇄원의 진가를 파악했는데, 소쇄원은 곧 청각적인 정원이며 밝음과 어두움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정원이고, 궁극적으로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문학적 정원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기운과 인간의 마음이 하나로 합일되는 곳, 그 곳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청각과 음영의 효과. 이제 우리도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소쇄원의 건축적 가치를 찾는다.

세 개의 레벨(Level)과 건물

․순환적인 구성
소쇄원의 배치구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나와 있다. 이 정원의 구성을 더 명확하게 살펴보기 위하여 소쇄원의 전체영역을 세분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정(前庭) / 그 유명한 대숲과 진입부. 어두운 숲을 지나 갑자기 밝고 넓어진 정원에 감동 한다.
원정(垣庭) / 담장으로 구획된 대봉대(待鳳臺) 애양단(愛陽壇)이 있는 장소, 긴 담장을 따라 좁은 진입로가 유도되며, 왼쪽으로는 두 개의 인공연못을 감상한다. 그러다가 밝고 넓은 애양단에 다다른다.
오정(塢庭) / 개울 건너 조성된 꽃 계단과 긴 담장. 꽃 계단 담에는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 라는 명문(銘文)이 붙어있다.
계정(溪庭) / 광풍각(光風閣) 일대와 계곡. 이곳은 소쇄원의 중심공간이다. 개울의 물소리를 들으며 휴식과 독서, 바둑두기, 술 마시기, 노래하기, 거문고 타기, 낮잠자기 등의 온갖 휴양과 유희의 행위가 벌어진다.
후정(後庭) / 제월당(霽月堂) 일대와 뒷산. 제월당은 주인의 독서실이면서 소쇄원의 전경을
감상하는 곳이다.
내정(內庭) / 고암정사(鼓岩精舍)와 부훤당(負暄堂) 일대. 지금은 가장 황량한 장소로 방치되고 있다.
1,400여평의 대지에 조성된 내원은 그다지 크다고는 할 수 없는 규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의 많은 영역으로 구성한 치밀함이 돋보이며, 각 영역들은 단절된 것 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상호 투시적이다. 어느 부분에서도 전체를 인식할 수 있으며 동시에 부분영역의 경관과 행위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석은 소쇄원의 체험 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소쇄원은 지극히 입체적인 정원으로서 수직적 레벨을 절묘하게 이용했다는 점이다. 양산보는 소시적에 노닐던 자연계곡 양쪽을 모두 원림으로 꾸밀 생각을 했다. 또한 ‘기다림’의 주제를 위한 손님용의 동선을 구상했다. 자연히 처음과 끝이 같은 순환적인 동선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울창한 대숲을 통해 들어온 손님은 대봉대에서 영접을 받고 개울을 건너 광풍각으로 안내된다. 광풍각을 나서면 다시 외나무다리를 건너 입구부인 전정으로 나가게 된다.

․상-중-하단의 축조
순환적 구성을 위해 우선 자연계곡에 거의 같은 높이의 석축을 쌓아 현재의 중간단을 만들었다. 이 레벨은 가장 먼저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소쇄원의 각 영역을 연결시키고 통행케 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의 영역이다. 이 레벨은 전정과 원정을 거치는 진입부를 형성하며 오곡문(五曲門)을 지나면 위아래로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나누어지는 중간적 영역이 된다. 또한 계곡의 건너편과 위의 꽃 정원, 아래의 계곡을 끝없이 바라보는 관상로이기도 하다. 이른바 ‘건축적 산책로’인 셈이다. 이 레벨의 중심공간은 대봉대와 초가정자(草亭)다. 초정은 한 간 마루로 온돌방이 없어서 거처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사람들이 머무르는 정자의 역할만 담당하여 기숙이 가능한 광풍각이나 제월당과 구별된다. 초정은 양산보 당시 소쇄원의 유일한 정자였으며 모든 경관이 보여지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다음에 만들어진 레벨은 계곡 쪽으로 내려간 아랫단이다. 진입부 쪽은 진입로를 따라 길게 바로 아래 계곡에 석축을 쌓고 두 개의 사각연못을 만들어 물을 흘렸다. 계곡 건너편에는 중간단에서 돌출되게 높은 석축을 쌓고 광풍각을 앉혔다. 광풍각은 당대의 표현을 빌면 “낭떠러지 같아 얼른 보기에는 위험한 곳에 축대를 쌓아 대청과 방을 마련한” 정자다. 아래단의 레벨은 자연을 가까이 접하여 즐기며, 유희와 휴식을 하는 행위의 레벨이다. 후대에 그린 「소쇄원도(瀟灑園圖)」를 보면 계곡의 물가 바위에는 거문고를 타는 선비, 장기 두는 인물, 혼자 사색하는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고 광풍각에는 여러 명이 앉아 시가를 읊고 있다.
마지막 레벨은 가장 위쪽에 조성된 단이다. 이 영역의 중심인 제월당은 가장 늦은 시기인 양산보 말년에 조성되어 윗단이 최후로 조성된 레벨임을 알 수 있다. 높은 곳에서는 경치를 내려다보며 음미할 수 있다. 심지어는 ‘달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제월당에서는 소쇄원 전체의 경관(panoramic view)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여기는 주인이 거처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다. 아랫단이 동적인 행위의 레벨이라면 윗단은 정적인 관조의 레벨이다. 아래가 물의 공간이라면 위는 꽃과 나무의 공간이다. 그 가운데를 중심 통로가 지나면서 아래위는 수직적으로 분화되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었다. 소쇄원 경관의 입체성, 체험의 중층성은 이렇게 얻어진다.

․광풍각과 제월당
좁은 의미로 본다면 소쇄원의 건축물은 광풍각과 제월당 두 동뿐이다. 이 두 건물은 아랫단과 윗단의 중심지이며 지붕이 덮인 두 개의 공간이다. 송나라의 명필 황정견(黃庭堅)이 주무숙(朱茂叔)의 인물됨을 말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밝음이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 같고 비 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고 평한 것에서 유래한 건물의 이름이다. 그 유래를 모른다 해도 건물의 이미지와 매우 잘 어울리는 시적인 명칭이다. 사방이 터져 날렵한 광풍각에는 마치 바람이 일 것 같고 단정한 외관의 제월당에는 달빛이 은은히 스며들 것 같다. 행위의 레벨인 아랫단의 광풍각은 역동적이며 관조의 레벨인 윗단의 제월당은 정적이다.
당대의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풍각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옷깃을 열어 젖히는’ 곳이며 제월당은 ‘달빛에 저절로 밝아지는 방’이라 했다. 광풍각은 계곡과 큰 나무들 사이에 있어 그늘져 시원한 곳이며, 제월당은 가장 높은 양지에 서서 항상 밝은 곳이다. 건물의 기능도 광풍각이 손님을 맞아 시가와 주흥을 즐기는 유희적인 곳이라면 제월당은 주인의 학문과 사색을 위한 곳이다. 광풍각은 ‘계곡가 글방(枕溪文房)’ 이라 하여 항상 커다란 물소리가 들리는 곳이며 제월당은 조용한 곳이다. 움직임과 정지함, 소리와 정적, 그늘과 양지…… 이처럼 대조적인 건물들이 불과 10m도 못 되는 거리에 있다. 그럼에도 두 건물의 영역은 또한 독자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보이기는 하되 연결되지는 않는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가려면, 낮은 담장에 뚫린 협문을 통해 일단 외부로 나갔다가 다시 담장을 끼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두 건물 사이를 구획하도록 네 번이나 꺾인 담장의 절묘한 역할이다. 극단적인 두 개의 건물을 하나의 경관 속에 통합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들을 분리하는 담장의 솜씨는 더욱 놀랍다.
대립적인 요소들의 통합과 부분의 독립성. 한국 건축이 성취한 가장 높은 경지의 경관을 소쇄원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건물의 모습도 대조적이다. 광풍각은 3×3간 규모로 가운데 1간 온돌방을 두고 사방에 마루를 개방했다. 뒷면에는 석자 높이의 함실 아궁이를 두어 나머지 삼면과 구별한다. 앞과 옆, 세 면으로 터진 계곡의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반면 제월당은 3×1간의 구성으로 남쪽에 한 간은 방, 북쪽 두 간은 마루다. 방에는 마루 쪽으로만 개구부를 두어 외부와 단절시킨다. 마루는 계곡 쪽과 매대 쪽으로만 열려 있어서 이방향성(二方向性)을 갖는다. 또 마루의 면은 광풍각에 비해 한 자 더 높다. 오르내리기에 불편할 정도다. 높은 지대에 다시 높은 마루를 건 이유는 역시 원림 전체를 관조하기 위함이다. 광풍각 내부에서 원림을 향하는 시선이 수평적이라면 제월당에서는 항상 아래를 내려다보도록 되어 있다. 원림의 영역적 구성뿐 아니라 작은 건물까지도 경관 구조와 의도에 맞도록 계획된 것이다.

소쇄원의 구성요소-담장과 물길

․독립면으로서의 담장
소쇄원의 영역들을 수직적으로 구성하는 요소가 석축이라면 수평적인 구성요소는 담장이다. 담과 단에 의해 소쇄원의 6개 영역들은 구획되며 동시에 연속된다. 그러나 여기에 설치된 담장은 두 개 뿐이다. 단 두 개의 담장이 때로는 곧게 뻗고, 때로는 꺾어지면서 다양한 효과를 성취한 예는 흔치 않다. 담장이란 외부의 도난이나 침입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는 건물의 일부가 되어 내부공간을 이루는 구조적 요소로도 쓰인다. 그러나 소쇄원의 담장은 그런 통상적인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북쪽과 남쪽의 경계를 이루도록 설치되어 있지만 폐쇄된 것이 아니라 양끝이 개방되어 있다. 또한 이들은 구조적인 요소나 건물의 부속요소가 아니라 독립된 요소다. 추상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곳의 담장은 원림의 면들을 나누는 개방적인 단면들이다. 북쪽의 담장은 두 번 꺾여 동-북-서쪽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각각 진입유도부, 애양단부, 매대(梅臺) 꽃 계단의 스크린을 이룬다.
소쇄원의 건축 요소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진입유도부의 백척(33m)짜리 담장이다. 넓은 길 가운데에 길게 뻗어서 왼쪽으로 가면 소쇄원의 내부, 오른쪽으로 가면 외부 마을로 빠지게 된다. 안과 밖을 하나의 벽체로 간단히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담장은 끝이 개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폐쇄성이 매우 강렬하게 느껴진다.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고, 그 가운데를 경계짓는 벽면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애양단의 스크린이 되는 북쪽 담장은 차라리 하나의 건물이다. 밝은 애양단 뒤에 서서 뒤의 깊은 산들과 중첩되는 경관, 여기에는 수구문(水口門)과 오곡문(五曲門)이 있다. 상류에서 흘러오는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담장을 들어올린 채 개울 위로 지나보냈다. 개울은 자칫 담장의 연속성을 차단할 수 있지만, 담장은 담장대로 물은 물대로 연속성을 유지한 탁월한 발상이다. 그러나 절묘한 담장의 연속성은 바로 옆에서 분절되고 만다. 뒤쪽 마을로 향하는 길이 담장을 자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일각대문(一角大門)이 있었지만 현재는 대문 구조물이 없어졌다. 담장이 끊어진 빈 부분을 그냥 ‘오곡문’으로 부른다. 문이란 문틀과 문짝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적 차원에서 문이란 ‘경계와 통로가 만나는 부분’이다. 현재의 모습이 비록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오곡문은 그래서 더욱 건축적이다. 또한 통로만큼 끊어진 담장은 더욱 연속적이다.

․위상수학적(位相數學的) 담장
남쪽 경계를 이루는 담장은 애초에는 부훤당과 고암정사가 있는 내정을 경계짓는 요소였다. 그러나 두 건물이 없어진 지금은 제월당과 광풍각 영역을 구획하는 요소로 역할한다. 이 네 번 꺾인 담장을 좇아 가보면 도대체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구분이 어려워진다. 제월당에서 협문을 나가면 밖이 되지만 삼면의 담으로 둘러싸인 이 작은 오목공간은 그 자체로 내부적이다. 여기에 한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오브제(object)로 서 있어서 더욱 독립된 내부와 같아진다. 그러나 광풍각 쪽으로 담장을 좇아가면 다시 외부임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광풍각으로 들어가려면 잘린 담장의 단면을 끼고 돌기만 하면 된다. 이 담장의 서쪽 끝도 그러하다. 매듭진 요소없이 잘려진 단면이 끝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면을 나누는 개방된 단면’으로서의 담장을 볼 수 있다.
소쇄원의 담장들은 스크린과 오브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특히 담장에 써 있는 명문(銘文)들은 담장의 오브제적 성격을 더욱 부각시킨다. 진입부의 긴 담장에는 하서 김인후의 <瀟灑園四十八詠(소쇄원사십팔영)>이 쓰인 나무판을 박아 두었었다. 애양단부의 담장에는 <愛陽壇(애양단)>과 <五曲門(오곡문)>이라 쓴 명문이 박혀 있다. 특히 오곡문의 명문은 힘과 기교에 넘치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글씨 자체가 다섯 구비로 휘어 흐르는 물과 같다. 매대 뒤쪽의 벽에는 ‘소쇄원의 처사 양씨의 조촐한 집’이란 뜻의 <瀟灑處士梁公之廬>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역시 송시열의 글씨로 일종의 문패인 셈이다. 이 원림의 주도적인 건축요소는 광풍각과 제월당이 아니다. 그것들은 점에 불과하다. 전체의 영역을 나누고 연속시키며 외부의 다양한 공간들을 만드는 것은 ‘자율적인 벽면’들이다. 소쇄원은 담의 건축, 벽면의 건축이다.

․자연의 물과 인공의 물길
담장이 인공적인 중심요소라면 물은 자연적인 중심요소다. 물은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소리로 들리는 청각적인 요소다. 특히 소쇄원의 물은 소리로 듣는 물이다. 졸졸 흐르는 물줄기, 콸콸 쏟아지는 폭포,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 중간단의 통로를 걸어가 보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오히려 소리로서 각 부분 물의 형상을 그리게 된다. 그래서 소쇄원은 ‘청각적인 정원’이다.
이러한 청각 효과를 얻기 위해 소쇄원의 물길은 지극히 인공적으로 가공되어 있다. 바위를 깎아 물길을 돌리고 낙차를 크게 하고 소리를 증폭시킨다. 그것도 모자라서 인공수로를 만들고 인공폭포를 만들었다. 한술 더 떠 인공수로 사이에 물레방아를 달아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물소리를 즐겼다.
소쇄원의 물줄기는 크게 두 갈래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계곡 바위 사이를 가로지르는 원래의 물줄기다. 이 물줄기의 시작은 오곡문 아래의 다섯 구비(五曲流)다. 이 시작부부터 인공적으로 암반을 다듬어 다섯 구비를 만들었다. 오곡류는 곧이어 낙차 큰 바위면을 타고 마치 절구와 같이 움푹 패인 못(槽潭)으로 떨어진다. 폭포를 이루어 조담에 떨어진 물은 S자형으로 유연히 계곡으로 타고 흘러내린다.
또 하나의 물길은 지극히 인공적이다. 오곡류가 끝나는 부분에 대나무 홈통을 만들어 대봉대 바로 밑을 흐르게 한다. 이 물길은 대봉대 옆의 위 연못 과 아래 연못에 물을 대기 위한 목적이다. 진입로 바로 아래에 두 개의 사각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웠다. 기록에 의하면 대봉대에서 낚시한 물고기를 회로 쳐서 술안주로 삼았다니 일면 잔인한 취미였다. 조선판 실내 낚시터라고 할까. 두 연못 사이는 좁고 긴 수로로 연결되는데 다른 부분에 비해 지극히 단조롭고 인위적이다. 그러나 원래는 이 수로 중간에 작은 물레방아를 설치해 아래 계곡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레방아는 연속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수차에 어느 정도 물이 차야 돌아간다. 따라서 폭포수는 불연속적, 주기적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인공 음향효과인 것이다.
두 연못의 생김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 연못은 정사각형으로 대봉대 초정의 면적과 비슷하다. 아래 연못은 직사각형으로 맞은편 광풍각의 평면형이나 크기와 비슷하다.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그럴 듯 하다. 조사과정의 대학원생이 발견한 내용인데, 그녀는 또 다른 발견을 조심스럽게 말한다. 소쇄원의 통로를 지나다 보면 물소리의 강약을 뚜렷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리가 커지는 지점이 네 군데 있다는 것인데 오곡문 앞과 조담 위, 대봉대 앞과 광풍각 앞이다. 특히 애양단에 서면 오곡류의 졸졸 소리와 조담의 폭포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려서 가장 청각적인 장소라는 것이다. 꽤 산뜻한 발견이었다.

맑고 시원함이 오는 곳

․소리의 庭園
소쇄원을 ‘소리의 정원’이라 부르는 까닭은 물소리뿐 아니라 하늘과 땅과 생물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가 있기 때문이다. 입구의 무성한 대나무 숲에 서면 바람의 움직임을 볼 수 있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나무 잎의 스산한 움직임이 바람의 모습이라면 사각거리는 대잎의 소리는 바람의 소리다. 김인후는 대나무 바람을 이렇게 노래한다. “무정한 바람과 대나무지만/ 밤낮 생황(笙篁)을 분다네.”
대나무의 바람이 잔 바람소리라면 내원 곳곳에 심어진 소나무에 걸려 휭휭거리는 바람은 큰 바람소리다. 바람에도 크고 작은 소리가 구별되어 들린다. 바람은 하늘의 기운, 천기(天氣)의 움직임이다. 이에 대응한 땅의 움직임(地氣)은 물소리다. 어떻게 변화하는 물소리를 얻었는가는 앞에서 말했기 때문에 한 수의 시로 대체한다. “거문고 한 곡이 맑고 깊은 물에 메아리치니/ 마음과 귀가 서로 알게 된다네”
하늘의 바람이 불현듯 땅의 물소리로 전환된다. “쳐다보면 시원한 바람 나부끼고/ 귓가에는 패옥(佩玉) 부딪히는 영롱한 물소리”
소쇄원은 그런 곳이다. 물소리는 다시 살아있는 생명체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골짜기 시냇물이 목멘 듯 울어대니/ 몇 마리 소쩍새도 따라 우누나.”
생명체의 소리는 이 뿐만 아니다. 아침의 닭소리와 한낮의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온갖 새들의 노래 소리가 포함된다. “아이가 늦잠에서 깨워줄 때면 / 처마 끝의 종달새 재잘거리네”
여기에 시객(詩客)들이 부르는 시가(詩歌)의 나즈막하고 창아한 노래 소리들이 합쳐지면 비로소 소쇄원의 소리는 완성된다.
우리 시대의 소쇄원 시인 김준태는 이렇게 읊고 있다.

우리가 너무도 잊고 잃어버린 것들
그러나 끝끝내 찾아야 할 것들이
모두 예 와서 모여 살고 있구나

물소리, 솔바람소리, 대 바람소리
옛 사람들의 하늘과 뜻이.

․그늘과 빛.
소쇄원의 공간 구성 수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늘의 적절한 반복과 조합이다. 그 음영의 효과는 공간의 크기변화에 따라 증폭된다. 어두운 대나무 숲을 지나면 갑자기 밝아지는 원림의 전정에 도달하고 여기서 계곡 건너편을 쳐다보면 그늘에 가려진 광풍각과 양지바른 제월당이 중첩되어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어둠과 밝음, 수축과 확장의 대비적 효과 역시 계획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각 영역의 크기를 대조적으로 조절하고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만큼의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나무들의 그림자는 낮은 곳, 즉 계곡 부분에 집중적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광풍각의 아랫단과 계곡에는 늘 그늘이 드리울 수밖에 없고 제월당의 윗단은 햇빛에 빛나게 된다. 지형의 수직적 효과를 잘 활용한 결과다.
진입부의 긴 담길과 애양단의 공간은 대조적인 외부공간이다. 긴 담길은 좁고 선형이며 애양단은 넓은 면을 이룬다. 겨울날 아침 진입로를 걸어보면 ‘빛을 사랑하는 곳’ 애양단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길 옆의 담장은 긴 담길에 그림자를 떨어뜨려 그늘을 만들지만 애양단은 밝고 따뜻한 햇살로 충만하게 된다. 계곡의 얼음이나 긴 담길의 서리와는 대조적으로 애양단에는 눈이 녹아 있다. 정말로 밝고 따뜻한 곳이다. 불과 높이 2m의 담장이 주는 음영의 효과는 이처럼 대단하다.
소쇄원에서 ‘빛과 그늘’은 계절의 한계를 초월하게 한다. 무더운 여름날 계곡에 떨어지는 큰 나무의 그림자는 그 자체로 맑고 시원함을 이룬다. 대봉대에는 초정을 세워 그늘집을 만들고 초정 위에는 커다란 오동나무로 다시 겹그늘을 만든다. 봉황과 벽오동의 상징적 의미를 떠나서도 대봉대는 귀한 손님이 쉴 수 있는 시원한 장소가 된다. 그리고 밤, “오동나무 그늘에선 달을 맞는다”.
반면 애양단의 따뜻함은 추운 겨울날의 위안이다. “팔 베고 따뜻한 볕 쬐다보면/ 한낮의 닭 울음은 다리까지 들리네.”
보통의 원림들이 겨울에는 개점휴업 상태인 것과는 달리 소쇄원은 명실상부한 사계절용 별서원림이다.

․문학적 건축
이 글을 쓰기 위해 소쇄원을 다녀온 지 며칠 안되어 국내선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우연히 들춰본 기내지에는 정말 우연하게도 문병란 시인이 소쇄원을 평한 글이 실려 있었다. 대학시절, 문시인의 ‘죽순밭에서’는 서정과 이념이 결합된 우리들의 애송시였다. 반가움과는 달리 사보류에 실린 유명인사들의 글들이 대개 그렇듯이, 시인의 소쇄원 기사는 여기저기 안내서와 연구서들을 짜집기한, 적어도 건축을 전공한 내게는 평범한 설명문이었다. 오직 한 줄의 문장만이 문시인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잡다한 설명을 제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줄의 문장. 그 문장을 쓸 수 있고 힘을 실을 수 있는 작가를 시인이라 하나 보다. “소쇄원은 건물로 조형한 일종의 시다”.
소쇄원에는 수많은 시들이 남겨져 있다. 물론 주인의 친절에 답하기 위한 의례적인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소쇄원의 공간과 경관이 주는 감흥을 발산한 것들이다. 그만큼 소쇄원은 문학적 상상력과 시적 표현력을 자극하는 장소다. 또 모든 건축요소들이 논리적이기 보다는 시적으로 구성되었다는 말도 된다.
창평 일대 원림들은 독자적인 문학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른바 ‘면앙정 가단’ ‘식영정 가단’ ‘환벽당 가단’으로 불리던 그들은 내부적인 교류와 창작생활은 물론 가단 사이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실력을 겨루기도 했다. 그림으로 전하는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柳濯熱圖)> 는 유월 복날 식영정 가단 과 환벽당 가단의 선비들이 만나서 시가를 겨루며 계곡에서 더위를 씻는 모습을 묘사한다. 소쇄원 가단은 전속멤버를 두지 않고 개방적으로 운영했던 것 같다. 양산보 자신이 일체의 구속과 세속적 명리를 싫어한 아나키스트적 성향이 짙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집단을 이루지는 않았다. 그러나 양산보는 「애일가(愛日歌)」를 지어 가사문학의 효시를 이루었다고 하며 그가 지은 「효부(孝賦)」가 전할만큼 문학적인 인간이었다. 그가 만든 시적인 건축, 소쇄원을 해석하는 데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꼭 필요하다. 빈약한 문학적 소양 때문에 선인들이 남겨놓은 몇 편의 작품들을 짜깁기함으로써 못다 표현한 소쇄원의 모습을 그려보려 한다. 문병란 시인은 건축잡서들을 조합했지만, 건축인인 필자는 문학작품들을 조합함으로써 건축적 설명을 대신한다.

대밭을 통해 오솔길을 거닐고 개울물이 흘러내리다 잠시 쉬어 멈춰 있는 곳에는 연못을 이루고 있으며 가마솥에서 나는 연기는 산봉우리에 병풍을 둘러친 듯 길게 뻗어 있으니 한 폭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여름날의 오동잎은 푸른 양산을 펴놓은 듯 바람에 떨고 있고 드문드문 대나무 그림자는 잔잔한 가을 석양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다.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는 거문고를 퉁기는 소리처럼 들리고 조담 위로는 노송이 걸쳐 있어서 마치 덮개를 덮어놓은 것 같다.

소나무에 걸린 바람이 신기한 피리 소리 내면 달빛 아래 대나무는 맑은 그늘을 띄우네.

소쇄원은 공덕장(功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그 맑고 깨끗함은 어디서 오는가? 이 원림의 바람과 물소리들에서, 그늘을 더욱 그늘답게 만드는 밝은 빛 속에서, 그리고 청각과 시각이 어우러진 시적 감흥과 문학적 감수성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