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0.03.01.
출처
RAILROAD
분류
건축역사

“아무리 멋진 청자 주전자라도 주둥이 구멍이 없으면 주전자가 아니듯이, 호반의 그림같은 별장도 출입문이 없으면 더 이상 집이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격언을 바꾸어 본 말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온 국력을 다해 건설한 거대한 피라밋은 내부에 온갖 보물과 아름다운 그림들을 장식했지만 창과 문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무덤이라 부른다. 건축물에 창과 문이 없다면 사람이 살 수 없는 무덤에 불과하며, 입구가 막힌 동굴에 지나지 않는다. 집은 비바람과 추위를 막기 위해 벽과 지붕을 쳐서 내부를 만들지만, 반대로 바깥으로 통할 수 있는 창과 문을 달아야 인간이 살 수 있다. 문과 창은 실내와 바깥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한국건축은 실내 공간이 크지도 복잡하지도 않기 때문에, 창과 문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옥의 집 안이란 바깥의 마당없이 존재할 수 없다. 마당이 없다면 좁은 실내는 더욱 좁게 느껴질 것이고 답답해진다. 안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바깥 마당에서는 가능하다. 그만큼 안과 밖이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는 것이 한국건축의 중요한 전통이다. 그런만큼 옛집의 창과 문은 정성을 다해 만들어야 했다. 시골의 초가삼간 오막살이집은 보통 집주인이나 동네 목수들이 주변의 재료를 모아 얼기설기 만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부품만은 기성제품을 사와야 하는데, 그것은 벽에 설치할 창과 문이다.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창호제작을 아마추어들이 맡으면 곧 바로 찌그러지고 닫히지도 않는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공사과정에는 여러 명의 목수들이 참여하게 된다. 이들을 크게 대목과 소목으로 나누어 부르는데, 대목은 기둥을 깎고 서까래를 다듬어 얹는 장인들이고, 소목은 농이나 반다지 등의 가구를 제작하는 목수들이다. 창호는 바로 소목들이 담당한다. 한치의 어긋남없고 나무결까지 맞추는 정교한 가구짜기 기술이 있어야 창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창호는 보통 세가지 기능을 담는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출입의 기능, 방안의 채광과 환기를 위한 위생적 기능, 그리고 창을 통해 바깥의 경치를 내다보는 경관적 기능이다. 그러나 고급 건축에서는 여기에다 한가지 더 중요한 기능을 부여한다. 창호의 모습을 통해서 건물의 표정을 만들는 일이다. 창호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창살이 필요하고, 창살은 밖으로 창호지는 안으로 향한다. 일본의 경우는 반대로 창살이 집안으로 향하게 된다. 따라서 일본집의 창호를 밖에서 보면 흰 면으로 보이지만, 한국건축의 창호는 선들의 집합체로서 건물의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건물의 표정을 성공적으로 갖춘 우수작이다. 우선 세칸의 정면을 각각 두짝 – 네짝 – 두짝의 창호로 분할했다. 다시 한짝의 창호를 아래 위로 세부분으로 나누어 아래단에는 판자를 끼워 면으로, 중간에는 연꽃 문양의 창살을, 가장 위에는 연잎 줄기 모양의 창살을 짜았다. 중간단은 연꽃이 만개한 모습의 창살들을 90도로 짜맞추었지만, 위단의 것은 60도 각도로 세방향에 만나도록 조각되었다. 중간의 것이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 위단의 것이 더욱 고도의 기술을 요하게 된다. 고도의 수학적 지식과 숙련된 솜씨, 그리고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정체다.
이 창호들의 연꽃은 각 칸이 모두 다른 종류들이다. 초기 불경에 따르면, 연꽃에는 모두 4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홍련 백련 청련 황련으로 내소사 대웅보전에는 네가지 연꽃이 모두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은 혼탁한 사바세계에서 진리를 구하려는 불교의 상징물이 된다. 지금은 단청이 바래 색채가 선명치는 않지만, 원래의 붉고 푸르고 하얀 연꽃의 색채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화려했을까. 그야말로 연꽃들로 둘러싸인 부처의 세계를 만들어 냈으리라.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밝은 날 법당 안에 들어가 마루에 떨어지는 창살의 그림자를 보면, 화려한 연꽃의 실루엣들이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창호에 지나칠 만큼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연꽃을 조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내소사와 같은 절집은 대웅전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건물의 외관이 장중하고 화려해야 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창호를 장식하지만, 검약과 절제를 추구했던 유교건축물들은 전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안동 하회마을 옆에 있는 병산서원의 창호들은 단순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연꽃의 장식은 커녕, 창틀을 유지하고 창호지를 바를 수 있는 최소의 창살만으로 이루어졌다. 겉에서 보기에는 무덤덤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방안에서 창문을 열면 상황이 달라진다. 멀리 아스라한 산들이 열려진 창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어두운 방안에서 작은 들창을 열면, 방안은 갑자기 자연의 일부가 된다. 절집들의 창이 바깥에서 보기 위한 것이라면, 서원의 창들은 방안에서 바깥을 보기 위한 창이다.
아름다운 대자연에 감싸져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집과 창문들은 단순해야 한다. 아무리 화려하고 장중하게 건축을 해봐야 대자연의 감동을 능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건축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비단 서원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인근 하회마을의 양진당 대문을 바깥에서 보면 껑충하게 높아서 담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방에서 대문을 바라보면, 마치 카메라의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것 같이, 대문 안으로 멀리 뾰족한 앞산이 들어온다. 주변의 자연 가운데, 집주인이 좋아하는 지형지물을 선택하고, 그것을 집안으로, 또는 실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문과 창을 사용했던 결과다.
옛 사람들이 생각했던 문과 창은 단순히 통행하고 환기를 위한 물건만은 아니었다. 또한, 우매한 현대건축들이 종종 범하는 실수와 같이, 단지 외관을 멋있게 꾸미고 뽐내기 위한 장식물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모양새가 아니라,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자연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열린 정신적 통로였다. 바로 이러한 숨어있는 생각들을 다시 깨달을 때, 비로소 옛 건축이 가진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화려한 궁궐이라도, 문과 창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노자의 격언은 바로 이러한 건축적 진리를 꿰뚫어본 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