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9.07.09.
출처
서울신문
분류
건축문화유산
원문 링크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7> 경북 봉화 닭실마을 충재·청암정

권벌 가문 후손들의 주거지가 마을을 이룬 닭실마을 전경.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 중 하나로 봉화 닭실마을을 꼽았다. 권벌이 이곳에 터를 세우고 권동보가 완성하는 등 대를 이어 마을을 발전시켜 왔다. 봉화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권벌 가문 후손들의 주거지가 마을을 이룬 닭실마을 전경.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 중 하나로 봉화 닭실마을을 꼽았다. 권벌이 이곳에 터를 세우고 권동보가 완성하는 등 대를 이어 마을을 발전시켜 왔다.
봉화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안동 권씨를 명문가로 발전시킨 권벌의 닭실마을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라는 마을들을 꼽았는데, 경주 양동, 안동 하회와 내앞, 그리고 봉화의 닭실이다. 특히 닭실(유곡)마을은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마을을 감싸는 앞뒤 산이 닭 모양을 하고, 닭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명당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의 가치를 평가하는 최우선 조건은 그 집이 서 있는 위치, 즉 입지이다. 똑같은 크기와 구조의 아파트가 입지에 따라 수십 배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학군, 상권, 교통 등 인위적인 조건을 최우선으로 꼽지만, 과거에는 산과 강, 들판과 숲으로 이루어지는 자연 조건이 중요했다. 명당은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고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믿었다. 달걀을 품어 금병아리를 부화한다는 믿음대로, 닭실은 이곳에 사는 안동 권씨 가문을 최고의 명문가로 발전시켰다.

이 마을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권벌(1478~1548)에서 시작한다. 그가 지은 종가가 실질적인 권씨 가문의 시작이었으며, 대를 이어 후손들의 주거지가 이 마을을 이루었다. 터만 좋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받들어 효를 실천하고(봉제사), 손님들을 환대해(접빈객) 사회적 관계망을 이뤄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 개개인이 학문을 익히고 인격을 닦아 뛰어난 인물이 돼야 한다.

공중에서 촬영한 경북 봉화 닭실마을의 청암정(왼쪽)과 충재(오른쪽) 전경. 봉화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공중에서 촬영한 경북 봉화 닭실마을의 청암정(왼쪽)과 충재(오른쪽) 전경.
봉화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권벌은 종가 옆에 충재라는 서재를 지어 수양공간으로 삼았고, 청암정을 지어 벗들과 교류하는 정원으로 삼았다. 그의 아들인 권동보는 마을 어귀에 큰 규모의 석천정사를 지어 학문 연마와 교육의 장소로 만들었다. 더 나아가 인근에 부친을 모신 삼계서원을 건립해 가문의 학문과 효를 향촌 공동체의 정규 시설로 승화시켰다. 또한 마을의 뒷산, 재궁골에 충재와 그 선대조상을 모신 선산을 마련하고, 묘 아래에

닭실마을 안동 권씨 가문의 재실인 추원재.  봉화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닭실마을 안동 권씨 가문의 재실인 추원재.
봉화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종가와 별당, 선산과 재실, 정사와 서원까지, 명문가와 명문마을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구비한 것이다. 닭실은 권벌이 터를 세우고 권동보가 완성한, 부자가 대를 이어 발전시킨 마을이다.

닭실마을의 원래 입구는 석천정사가 있는 석천계곡이다. 절경을 이루는 경치와 아늑한 분위기를 가진 환상적인 장소다. 계곡 입구 너럭바위에 한자 초서로 ‘청하동천’이라는 네 글자가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권벌의 5대손 권두응의 글씨다. ‘청하’란 해지기 직전 반짝 나타나는 맑고 찬란한 푸른 노을을 뜻한다. ‘동천’이란 신선들이 영생을 사는 도교의 이상향이다. “순간의 찬란함을 영원히 지속하는 곳.” 청하동천의 깊은 뜻이기도 하고, 닭실마을의 꿈같은 바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