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이상한 분야다. 인접 분야라 할 수 있는 미술계는 화가와 이론가의 구분이 뚜렷하고, 중요한 이론서들은 학자들의 독점물이다. 그러나 건축의 흐름을 바꿀만한 강력한 이론서의 저자들 -알베르티, 팔라디오, 꼬르뷔제 등은 모두 뛰어난 건축가였다. 이쯤 되면 건축학자의 용도폐기론이 등장할 만하지만, 반대로 위대한 건축작품을 남긴 이들은 모두 뛰어난 이론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건축은 이론과 실천, 이론가와 건축가의 불가분의 관계가 요구되는 분야이다.
알도 로시는 20세기 후반, 탁월한 이론가이며 세계적인 건축가였다. 그의 이론서 <도시의 건축>이 출간된 1966년은 바로 근대건축과 현대건축,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구획하는 임계점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을 통해 전개된 로시의 건축이론은 기존의 교의들을 여지없이 전복시킨 혁명적 이론이며, 현대건축의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그가 이 책에서 ‘건축’의 대용어로 사용한 ‘도시형성물’이란 건물 뿐 아니라 도로와 광장, 특정한 도시구역 등을 포괄한다. 다시 말해서 건축이란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이며, 건축의 모습은 도시적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의 정교한 이론은 대부분 역사적 사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실험하고 수정했던 역사적 축적물이기 때문에, 역사적 탐구야말로 가장 과학적인 방법론이 된다.
그의 도시적이고 역사적인 태도는 ‘건물 완결주의’와 ‘새로움 콤플렉스’에 중독되었던 모더니즘의 허위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모더니즘의 핵심적 근거인 기능주의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 프랑스 아를르에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이 남아있는데, 고대에 극장 용도로 지어진 구조물이 중세에는 원형 집합주택의 벽체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역사적 관광지로 이용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우선론의 모순을 드러내는 예이다.
따라서 형태가 가장 중요한 건축의 측면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면 형태는 무엇이 결정하는가? 형태 이전에 존재하고 형태를 성립시키는 논리적 원칙을 로시는 ‘유형’이라고 생각했다. 신전과 교회와 불당은 모두 다른 종교의 건물이지만 유형적으로 ‘중심형 공간’이라는 같은 유형이 된다. 그가 말하는 유형이란 불변하는 건축의 본질이며, 문화적 요소이고, 역사적 축적물이다.
<도시의 건축>에 담겨있는 명쾌하고도 중요한 내용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고 이해하기에 쉽지 않다. 19세기 프랑스 이론가 드 캥시부터 시작되는 건축이론에 대한 섭렵, 부르고뉴 지방의 13세기 중세주택을 위시한 유럽의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너무나 전문적이다. 트리카르의 사회지리학, 알바슈의 도시경제학, 포에트의 지속성 이론 등 배경이 되는 인문학적 지식 역시, 너무 폭이 넓고 생소하기 때문에 어렵다.
따라서 이 책을 소화하기 위해 몇 가지 보조안경을 제안하고 싶다. 우선 저자의 통합적 사고와 시도들을 따라가자. 도시와 건축, 전체와 요소, 인문학과 기술, 개별성과 집단 등, 대척적인 것들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려는 강력한 도구로 ‘유형’을 등장시키고 있다. 둘째로, 저자의 역사적 탐구법을 이해하는 일이다. 도시는 집단적 기억의 결과이며, 그 표상적 건축이 기념물이고, 건축의 장소성이나 형태가 중요하다는 논지들은 역사적 선례들을 이해한다면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그랬듯이, 텍스트 속에서 우리 현실에 바탕을 둔 상상력을 펼쳐보자. 비엔나의 칼 맑스 아파트의 예가 나왔다면, 서울의 세운상가를 유추해보고, 알함브라 궁전을 분석한다면 경복궁을 비교해보자. 그러면 로시의 이론은 비단 40년 전 유럽의 이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절실한 한국의 이론임을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