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2.12.19.
출처
미확인
분류
건축론

서울의 동쪽에서 이제 막 준공하려는 동대문디자인프라자 (DDP)의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디컨스트럭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건축가로 분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서울시는 하디드라는 브랜드를 산 것이지, 이즘이나 스타일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애벌레를 연상케 하는 유기적 형태는 이른바 컴퓨터시대의 비정형 건축의 트렌드를, 반짝이는 금속 표면과 복잡한 공법은 첨단시대의 하이테크한 감각을, 그러면서도 옥상의 풀밭 산책로는 에코페미니즘을 포괄한 결과이다. 이러한 결합들은 필연적인 조합이나 결정론적인 선택이 아니라, 하디드라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요 포장재들이다. 하디드 브랜드는 오랜 기간 구매자가 없는 명품들을 전시회와 잡지에만 소개하다가, 드디어 신시내티, 인스부르크, 라이프치히를 거쳐 서울에 프래그 샾을 열게된 것이다.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의 서울시 행정의 화두는 ‘디자인 수도’였다. 한강 르네상스로 대표된 디자인 사업의 핵심적인 가치관은 ‘명품화’였다. DDP가 수입 명품브랜드의 예였다면, 새 서울시청사는 국산품의 명품화를 유도한 결과였다.
국산 명품은 역시 한국적인 맛을 풍겨야한다는 소박한 주문 조건을 내걸었다. 결과는 항아리 형태에 태극 문양을 새긴 조잡한 관광 기념품이었고, 게다가 그 앞엔 일제 강점기 때 산물인 구 시청사가 연결되어 있었다. 시청 옆 덕수궁의 품격을 훼손한다는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도 심했지만, 누가 봐도 명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러 차례 곡절 끝에 드디어 현재와 같은 명품을 만들 수 있었다. 현 시청사의 건축가인 유걸은 아직 자신의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개척하지는 않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충분히 통할 정도의 유명세와 수준을 갖추었다.
신청사는 명품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파도를 연상케 하는 비정형 형태, 반짝이는 곡면의 하이테크한 감각, 그리고 태양열 전지판과 실내의 수직 조경은 생태적 가치까지 골고루 갖추었다. 실내가 답답하고, 사무공간이 좁은 정도는 명품 사용자의 불편한 특권이라 할 수 있다.
건축의 브랜드화 과정과 명품 시장의 논리에서 무시되는 것은 구매자의 경제적 능력과 문화적 환경이다. 당초 1,500억 원 정도로 예상했던 DDP의 건설비는 5,000억 원으로 부풀려졌고, 한양 성곽의 흔적이나 동대문운동장의 추억도 사라졌다. 세계적 명품의 가격이라 해도 너무나 비싼 구매행위를 한 것이다. 건축에도 지름신이 오신 것이다.
국산 명품 제작에는 더욱 큰 대가를 치렀다. 수 차례의 설계 변경과 지연된 시간은 모두 막대한 매몰 비용으로 처리되었다. 앞쪽의 구 시청사와 뒤쪽의 오피스 빌딩들은 모두 석재 표면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거대한 유리 쓰나미가 끼어들어 그 도시적 맥락을 끊고 있다. 신 시청사의 그로테스크한 모습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한 동의 건물이 시청과 덕수궁 일대의 도시 환경을 왜곡시켰다는 점이다.
건축물의 기본은 기능적 요구와 땅의 조건을 우선적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아무리 명품핸드백이라도 쓰기에 편하고 견고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형태와 재료는 그 다음의 조건일 뿐이다. DDP는 아직도 내부 프로그램을 확정하지 못했고, 신 시청사는 전체 소요면적의 40% 밖에는 소화하지 못했다. 확실한 기능의 설정 없이 우선 껍데기만 설계했다는 말이 된다. 어디에 쓸 것인가? 보다는 ‘우선 사고보자’는 명품 구입의 패턴을 그대로 따른 것일까?
서울 성곽의 맥을 끊어버린 DDP는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되었다. 신 시청사는 여론에 밀려 구 시청사 일부를 마지못해 남겨두었지만, 두 건물 사이는 조화를 이루기보다 서로 등을 돌린 콩가루 부자지간 같다. DDP나 신 시청사는 역사도시 서울의 한 가운데 착륙한 UFO와 같다. 땅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건축은 그 제작지가 어디이던 간에 외계인의 솜씨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명품 탄생의 조건은 두 가지이다. 우선 디자인의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기능적 요구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를 포함하는 땅의 조건들을 충족하고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또 한 조건은 구매자의 안목과 수준이다. 명품이란 생산과 소비라는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