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천년간 인류의 환경은 전원에서 도시로 밀집화되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거대한 변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건축은 곧 개발을 의미했고, 산업화의 수단인 동시에 상징이기도 했다. 또한 한편으로 막대한 자원을 사용하면서 전원을 파괴하고 도시문제를 유발시켰으며, 전통적인 지역문화를 궤멸시키고 전 지구를 획일화된 환경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했다.
다음 세기의 건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우선 자원의 고갈과 환경 파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주요 건축재료인 콘크리트의 폐기과정에서 나오는 거대한 산업 쓰레기의 발생,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공해의 유발, 화석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자원의 고갈은 과거 천년간의 개발 위주의 건축적 관행을 중지하고 새로운 건축의 방법론을 모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원의 소모를 극소로 줄이면서 재활용할 수 있으며 공해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환경친화적 건축의 패러다임을 찾아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 과정은 다음 세기에도 행진을 멈추지 않을 추세다. 인류의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도시에 몸담고 살아야하는 숙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건축은 도시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이었다. 혼잡하고 밀집된 도시환경을 저주하면서 건물들은 길이나 광장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바깥이야 얼마나 추악하고 혼란스럽든지 관계없이 나만 잘나고 깨끗하면 된다는 이기적 건축물들이 도시를 메움으로써 도시환경은 더욱 열악해져 왔다. 아무리 잘난 건물을 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변은 온통 쓰레기장이고 교통체증으로 건물에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이제는 도시화된 건축, 건축적인 도시로 거듭나야 하는 개방과 화해의 단계를 요구받고 있다.
한국만이 맞고 있는 특별한 위기가 있다. 세계화된 건축시장 속에서 한국적, 또는 지역적 건축의 특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적 건축을 실현하는 것은 민족적 감성과 국가적 자부심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문화 수출과 시장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미 다품종 소량생산의 거대한 세계 시장 속에서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건축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세계건축의 유행을 좇아가며 보편적 건축에만 집착한다면 항상 문화 수입국, 이류 건축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적인 건축만을 고집한다면 세계 건축계에서 외면받는 왕따가 될 것이다. 한국성과 세계성의 화해와 융합이라는 우리만의 과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국건축의 미래는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기술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건축적 정신과 윤리의 정립이다. 기술이 부족해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한국의 건설기술은 중동과 동남아에 수출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그 발달된 기술을 통제하고 점검할 윤리의식이나 건축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할 철학적 정신의 수준은 세계 최악이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기술적으로 취약한 시대의 건축은 겸손하고 조심스러워 적어도 해악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업주의에 윤리를 팔아넘기고 정신이 황폐한 시대의 건축은 수많은 불량품과 쓰레기들만을 양산할 뿐이다.
건축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좋은 환경을 만듦으로써 인간의 삶은 좀더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다. 지난 천년간 살기 편하고 크고 넓으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 세기의 행복이란 전체적이고 문화적이며 심리적인 부분이 더 강조될 것이다. 건축은 환경에 대해, 도시에 대해, 지역성과 세계성에 대해 열려지고 화해해야 한다. 이러한 열린 건축만이 다음 세기의 문제를 정면으로 껴안으며 극복할 수 있다. 건축은 이제 단순히 기술이나 예술의 한 분야만은 아니다. 복합적인 사회환경이며, 건축을 한다는 것은 총체적인 문화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열려져야할 환경이다. 열린 건축은 고도의 지성과 사회적 윤리와 철학적 정신을 필요로 한다. 한국건축이 나가야할 진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 도시적 건축을 실현하기 위한 도시관의 정립. 그 모두가 정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