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광주비엔날레가 3월 29일 드디어 막을 올렸다. 베니스 비엔날레 정도를 어렴풋이 알고 있던 국내에 광주비엔날레가 과감하게 처음 개최된 때는 1995년이다. 개최를 확정할 당시 국내 문화계에서는, 이미 실패로 끝난 대전엑스포를 상기하며, 또 하나의 무모한 전시용 행사가 치뤄지는구나 의구심이 많았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3류 작가들이나 초청하는 집안 잔치로 끝날거라 예상하기도 했고, 그렇게 되길 기대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치뤄지는 국제적 행사들이 잘 마무리된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 5월 시민항쟁에 대한 보상적 성격이 짙은 행사였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을 거두어가고 있다. 물론, 집행과정에서의 실수와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4회 행사까지 끌고 왔다는 면에서 일단 성공이라 할 수 있다. 1회 160만, 2회 90만, 3회 61만이라는 관객의 통계를 보며, 점차 비엔날레의 효과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오히려 적정관객을 확보해가는 정상화의 과정에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더 사실에 가깝다. 1회 때는 처음 열리는 비엔날레여서 호기심도 높았고, 강제 동원된 관객들도 많아 마치 유명한 관광지와 같은 분위기였고, 초청된 작품들도 어설픈 것들이 눈에 많이 띄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미술전시회로서의 분위기를 찾아나갔고, 세계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질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성공한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선정된 주제의 중요성과, 예전에는 없었던 건축가들의 대거 참여라는 두가지 면에서 기대를 걸게 된다. 전체 주제는 <멈_춤, P_A_U_S_E, -止>다. 속도와 변화와 새것에 대해 맹목적 가치를 부여해 왔던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 속에서, 일단 지나온 과정을 유보하고 속도를 제어해 가면서 앞날의 새 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전체 주제 아래서 4개의 프로젝트가 준비 중인데, 제1 프로젝트는 ‘멈_춤’, 제2는 ‘저기: 이산의 땅’, 제3 ‘집행유예’, 그리고 제4 프로젝트는 ‘접속’이다. 3, 4 프로젝트는 전시회장을 떠나 상무대 신도시와 옛 남광주역에서 개최되는 파격적 형식도 선보인다.
특히 제4 프로젝트의 큐레이터는 건축가 정기용으로, 그는 도심 지역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폐 철도부지를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전시장소도 남광주역 구내에 9동의 비닐하우스를 가설하여 새로운 전시공간과 전시내용을 조직했다. 이 작업에는 9명의 국내외 건축가와 다수의 미술가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주제 해석과 작품들을 선보인다. 국내의 이종호 김종규 서혜림 김영준 이민과 네덜란드의 아드리안 훼즈, 영국의 알레한드로 자에로 폴로, 스페인의 올가 테라소, 중국의 장영호가 개인 건축가로 참여한다. 그리고, 광주지역 4개 대학의 학생들과, 서울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학교 대학원 학생들의 작품도 전시된다. 학생전시회 역시 새로운 포맷으로, 장기간에 걸친 광주 폐선부지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바탕이 된 신선한 고민들이 표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철도는 지방과 지방을 이어주는 연결로이기도 하지만, 정작 철도가 지나가는 지역을 두쪽으로 가르는 단절과 분단의 장벽이기도 하다. 특히 도심지의 철도는 도시를 둘로 분할하고, 양단의 소통을 막아버리는,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된다. 그러나 철도를 철거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폭 10m, 길이 10.8km라는 기괴한 비례를 가진 도심 옥외공간이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은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폐선부지는 도로로 전용되지만, 그 도로의 역할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또한 단절되었던 두 지역을 연결시키는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그 도시적 ‘접속’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단 ‘멈_춤’ 상태에서 생각하고 찾아보려는 시도라고 보여진다. 그것이 실현 가능한 대안이든, 상상만으로 끝나는 종이 작업이든,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잠재력만 발견하는 연구작업이든 관계가 없다. 구체적인 대지를 통해서 모든 종류의 단절된 것들의 접속과 만남을 추구하는 추상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건축과 미술이 전시관의 오브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체험되고, 일상 속에 잠재돼 온 기억들을 회복시키며, 전문 영역의 폐쇄된 구각을 깨고 사회와 도시에 접속될 수 있다.
대권 경쟁의 추잡한 뉴스들을, 집 값 폭등이라는 불가항력적 걱정을, 5년제 건축교육이라는 강압적 모색을, 그리고 온갖 종류의 허위적 바쁨을 일단 ‘멈추고’, 광주에 가서 젊은 건축가들의 희망에 ‘접속’해 보자. 얼마나 아름다운 봄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