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4.03.04.
출처
한국일보
분류
건축론
원문 링크

이달 말 문을 여는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논란이다. “서울의 새로운 세계적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찬사가 있는 반면, “일대의 역사 환경을 무시한 괴물 우주선”이라는 혹평도 있다. 어쨌든 전 서울시장이 그처럼 원했던 랜드마크가 되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랜드마크에 대한 건축적 열망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에펠탑이 파리를 케케묵은 역사도시에서 당대의 첨단도시로 끌어올렸고, 인공 구름 같은 미술관 하나가 낙후된 변방도시 빌바오를 국제화시킨 성공담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하나의 건축물이 랜드마크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거대한 규모를 가져야 한다. 단순 사각뿔인 이집트 피라미드는 146m의 높이로 황량한 대지를 압도했다. 또 다른 조건은 상상을 초월하는 독특한 형태를 가져야 한다. 에펠탑이나 빌바오 미술관은 기존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태와 구조들이었다. DDP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8만6,000㎡의 거대한 면적에 완벽하게 곡선과 곡면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비정형건축물’이라는 비공식 타이틀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선뜻 수긍하기보다 오히려 외계 우주선이라는 표현이 와 닿는 까닭은 무엇일까?

외계인을 대하는 태도들은 다양하다. 19세기의 공상과학소설 이후 외계인을 문어 모양의 괴물로 인식하였다가,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와 같이 잔인한 흉물로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외계인이 등장했으니, 최근 종방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다. 아마 전 세계에서 창조된 외계인 중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잘 생긴 외계인이 아닐까. 문어 괴물이든 도민준이든 외계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인류보다 훨씬 지적이어서 상상도 못할 과학문명을 이루었고, 불을 내뿜는다든가 하늘을 나는 등 인간의 기준으로는 초능력까지 가진 존재들이다. 심지어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이동하는, 그야말로 신적 능력까지 갖춘 존재이다. 따라서 외계인이 선한 의지만 갖는다면 그들의 첨단 문명과 초능력으로 인류와 지구를 구원할 수도 있다.

외계인의 이미지는 공포와 외경, 이 두 극단의 감정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짠 직물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거대한 능력을 가졌기에 동경하지만, 그 능력 때문에 큰 재앙을 내릴 수 있는 두려운 존재. DDP를 둘러 싼 논란을 접할 때마다 외계 우주선을 떠 올리게 되는 근본적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DDP의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는 20대 중반에 ‘홍콩 피크’ 현상안을 작성하여 20세기 후반을 휩쓴 해체주의 건축의 효시가 되었다. 30년 후에야 올 컴퓨터 디자인시대를 예견하듯, 직선과 평면을 부정하는 비정형건축만 일생 설계했으니 외계인이 아니라면 그의 초능력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외계인은 지구의 환경이나 토착민의 생활에는 관심이 없다. 그 자리가 한양도성이 지나가던 역사적 장소였거나, 그 주변에 숨어있는 수 천 개의 점포들이 아시아의 패션시장을 이끌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 원래 2,000억 원이었던 공사 예산이 5,000억으로 늘어나도 이 위대한 우주선의 착륙 비용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우주선은 우주에 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지상에 착륙하려면 그 앉을 자리를 살폈어야 했다. 도민준이 지구 정착에 성공한 이유는 이 땅의 환경에 적응하려 400년이나 노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땅의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DDP는 아직 내려야할 자리를 잘못 찾은 불시착한 우주선이다. 불시착을 목격한 현지민은 추락한 외계인을 구조하고, 우주선에 동력을 공급해 다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어쩜 이렇게 흔한 공상과학영화의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을까? 타인의 재산으로 공공의 건물을 만드는 건축가는 일종의 외계인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별에서 온 그대’여야 한다. 환경에 적응하도록 우주선을 안착시켜야만 진정한 랜드마크를 창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