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8.02.18.
출처
한경에세이
분류
기타

정말 오랜만에 베네치아를 다시 갔다. 27년 전 이 도시를 한해 3번이나 방문했고, 모두해서 한 달 가량 머물렀다. 샅샅이 살펴보아 이 도시를 정복했다고 믿었다. 베네치아는 세계 어느 곳보다 매력적이었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 주민들의 일상적 삶을 만나기 어렵다는 흠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관광객이 가장 적은 겨울 비수기를 택했다. 그러나 세계 10대 축제 중 하나라는 가면 카니발 기간에 겹쳤고, 그 보름 기간에 300만 명이 방문한다니 여행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다. 모두 118개의 섬과 150개의 운하로 이루어졌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다 남은 물길이 운하이며, 이 도시의 유일한 교통로다. 베네치아는 상업과 경제의 도시다. 십자군 전쟁 때 동서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 유럽의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의 시골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을 쓸 정도였다. 베네치아는 예술의 도시다. 티치아노와 같은 베네치아 화가들은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를 꽃 피웠다. 현재도 베니스 비엔날레와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의 경연장이다.
베네치아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책이 있다. 이태리의 거장 소설가인 이탈로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소설의 내용은 단순하다. 마르코 폴로가 그가 본 여러 도시들을 쿠빌라이 칸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얇은 소설은 총 11장으로 이루어지는 데, 기억, 욕망, 기호 등 도시에 부여한 특성들이 그 소제목이다. 총 55개의 상상 속의 다른 도시들을 강렬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들의 설명은 결국 하나의 도시를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바로 마르코 폴로의 고향인 베네치아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억, 십자군과 카사노바의 욕망, 건물과 다리들의 섬세함, 수많은 인물과 장소의 이름들, 그리고 기호들 …… 역사가 깊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일수록 한 도시 안에 수많은 다른 도시들이 숨어있다. 이들이 칼비노가 말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고, 이들을 많이 가진 도시가 곧 위대한 도시다.
역기능도 있다. 상주인구 5만5천에 불과한 이곳에 한해 3000만의 관광객이 몰려온다. CNN이 “가보지 않아도 될 12도시”에 꼽을 정도로 관광공해를 앓고 있다. 무엇을 보러 올까? 처음엔 운하와 성당과 광장의 보이는 도시를 보러온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 도시의 기억과 기호와 욕망과 섬세함과 숨겨진 것들을 찾으러온다. 나 역시 이번엔 ‘카니발 베네치아’라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 매료되었다. 우리의 도시는 보이지 않은 것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