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기둥의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영주 부석사에 가서 무량수전 앞에 서서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나는 최순우 선생의 글이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완벽한 아름다움은 바로 비례와 조화, 윤리적인 기능과 구조의 구성에 있음을 간파하고 있다. 무량수전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좌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기둥의 크기와 모양새다. 기둥은 무거운 지붕의 하중을 기초로 전달하여 건물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구조재다. 건축의 본성이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내부공간을 만드는 것이라 할 때, 필연적으로 지붕을 덮어야 하며, 그 지붕을 가능하게 하고 무게를 지지할 수 있는 것이 기둥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건물들에서도 기둥의 형태는 매우 강건하고 아름답게 나타난다. 기둥에 전달되는 구조적 힘이 형태로 바뀌어 나타난기 때문이다.
무량수전의 기둥은 구조역학적인 필요 이상으로 안정감 있는 형태를 가졌다. 정면 양 끝 두 개의 기둥이 다른 것보다 약간 더 높아서, 기둥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수평부재들이 양끝으로 치켜 올라가 있다. 이는 ‘귀솟음’이라는 매우 고급의 기술이다. 또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양끝 기둥은 수직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기둥머리가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를 ‘안쏠림‘이라 부른다. 귀솟음은 양끝 부분의 지붕 하중이 가운데 보다 커서 기둥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원래부터 높게 만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휘어져 올라간 처마선과 잘 어울려서, 구조적 안정감 뿐 아니라 시각적 안정감도 만들어낸다. 지붕의 하중이 기둥에 전달되면, 양끝 기둥의 윗부분이 바깥 쪽으로 벌어지게 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안쏠림의 기법을 사용했다. 이 두 기법은 구조적 필요인 동시에 시각적 안정성을 얻기 위한 다목적의 기술이다.
또 모든 기둥들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이를 배흘림이라 한다. 그리이스 건축의 엔타시스에 해당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그리이스의 엔타시스는 기다란 기둥의 가운데가 오목해 보이는 착시를 교정하기 위해 고안된 기법이지만, 한국의 배흘림은 착시교정용이 아니다.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배가 들어가지 않는다. 배흘림 기둥은 애초부터 기둥의 단면이 변하지 않는 원통이기를 포기한 기둥이다. 이 기둥은 휘어지고 비틀려도 배흘림인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법들에는 정해진 수치적 기준이 없다. 얼만큼 기울일 것인지, 높일 것인지, 휠 것인지 정해진 기준이 없다. 모두가 장인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엿가락 치는 것이 엿장수 마음이듯이, 흘림과 솟음과 쏠림의 정도는 목수 마음인 것이다.
배흘림 기둥은 아래부터 1/3되는 지점이 가장 배가 부르고, 배부른 정도는 직경의 1/10이라고 한다. 그러나 배흘림 기둥을 마름하는 현장을 본 사람이면 이러한 통계적 공식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배흘림의 곡선은 목수가 먹줄 튕기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기둥 아래 위 두점에 먹줄을 고정해 놓고 중간점을 손으로 집어서 비스듬히 들었다가 놓으면 먹줄은 활처럼 휘어지면서 나무에 곡선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이때 1/3 지점을 잡아 들어올리면 그 지점이 가장 배가 부르게 되지만, 궤팍한 목수가 2/5 지점을 잡는다면 배부른 위치가 바뀌게 된다. 또 기분에 따라 힘을 주는 강도나 비스듬한 각도를 달리하면 다른 곡률의 곡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옥의 선은 그야말로 목수들 마음이다. 그러나 훈련된 장인들이라면 그 마음들의 편차가 그다지 크지 않고, 그들을 명장名匠이라 부른다. 한옥의 선을 이해하려면 목수들의 마음과 장인정신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