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9.01.26.
출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본다
분류
서평

건축은 쉽다’고 저자는 책 가장 첫줄에 쓰고 있다. 그러나 건축은 어렵다. 건축은 흔히 생각하듯이 기술이나 공학만이 아니고, 격을 높여 말하듯이 예술만도 아니다. 바꿔 말하면 기술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하고, 더 크게 말한다면 문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전문가들에게 건축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건축은 건축이다’로 대답하고 만다. 그만큼 건축은 다른 무엇과 비교하여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과감하게 ‘건축을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려고’ 한다. 음악을 듣듯이 미술을 보듯이 편안하게 건축을 이해하고 감상해 보자는 취지다. 건축이 어려운 이유는 좁은 건축 써클 안에서만 논의되고 주장되고 이해되기 때문이며, 전문가들의 생각이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고, 대중들의 고민과 요구가 전문가들에게 수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위치에서 이 책을 본다면 전혀 새로울 것도 배울 것도 없다. 그만큼 전문 집단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며, 초보적인 개념들이다. 그러나 극히 초보적이고 쉬운 내용들을 어느 누구도 일반인에게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커다란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피상적이고 대중 기호적인 내용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제법 깊숙한 건축적 생각과 최근의 이론적 담론까지를 저자 자신의 생각 속에서 걸러 다루고 있다. 현대가 요구하는 글쓰기란 ‘내용은 무겁고 표현은 가볍게’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책의 최대 미덕은 바로 무거운 내용과 가벼운 형식을 모두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중에 유행하는 대중적인 저작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일반 독자들은 눈치채기 어렵지만, 이 책의 내용을 전문적 용어로 번안해 보면 다음과 같다. 건축의 범주와 차원, 요소와 형태 비례, 건축의 매스와 형태, 공간과 비례, 스케일, 재료와 구조, 행태와 기능, 이미지, 빛과 형태, 건축의 역사성, 외부공간과 단지계획, 도시의 구조, 건축의 철학과 이념 등 웬만한 건축론을 뛰어넘는 중요한 주제들을 평이하게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가득하다. 순간 순간 이슈를 따라 쓴 것이 아니라, 교과서적인 구성과 치밀한 전략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내용 뿐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보인다. 여기에는 몇가지 형식적 전략이 작용하고 있다. 이 책은 오랜 시간을 기획하고 전략화하고 노력을 기울여 나온 결과로 보인다. 우선 치밀한 기획력은 신진답지 않은 성숙한 모습이다.
또한 이 책에 등장하는 건물과 장소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의 모습이며 국내에 서있는 건축물들이다. 건축 전문서에 등장하는 건축예들은 거의가 외국의 것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건축관을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구체적 건축물들에서 풀어나가고 있다. 매우 현실적이고 대중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쉽고 일상적인 글들로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의 최고 가치는 모든 내용이 철저하게 저자화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이해하고 깨닫고 확신을 가진 내용들 만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침이 없다. 자신 가득하기 때문에. 또한 독자층을 정확하게 겨누고 있고, 그에 맞는 눈높이로 시종일관 하려는 자세도 돋보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건축계의 전문서적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고 재편집해서 출간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온전히 저자 개인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책의 마지막에서 4개의 구체적 건물을 소개하고 이들을 감상하는 방법까지를 제안하고 있다. 우선 선정한 4개의 건물, 올림픽 역도경기장, 현대미술관, 포스코 센터, 부석사 들인데, 이 가운데 역도경기장과 포스코 센터가 한국 건축의 고전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의견이 다르다. 예를 들어 포스코 센타의 로비와 공간구성이 탁월하기는 하지만, 엄청난 에너지 소비와 도시적 환경과의 무관심하다는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 아마도 가장 먼저 철거해야할 건물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 내용의 실체와 서술의 순서 등은 하는 수 없이 교과서적으로 구성되어 건축의 많은 영역을 건드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저자 자신의 건축관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그다지 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을 위한 건축 입문서로는 더 없이 적합한 책이다.

김 봉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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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저서 <한국의 건축>, <서원건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