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손 사옥은 근자에 완공된 서울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도시적’인 건축이라 평가된다. ‘도시적’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로 사용된다. 첫째는 건축물의 영향력이 건축경계선을 넘어서 옆 대지와 앞의 도로까지, 더 나아가 그 건물이 서있는 주변 영역까지 관계를 맺을 때, 그 건축을 도시적 건축이라 말한다. 둘째는 길이나 다리, 광장 등 우리가 흔히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와 요소들을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다시 재현할 때, 역시 도시적 건축이라 말해진다.
건축이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법은 다양하다. 흔히 주변의 도시적 환경에 조화될 수 있는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건축의 내부에 도시의 경관을 끌어들여 관계를 맺기도 하다. 그러나 바른손 사옥이 위치하는 방배동의 풍경은 그 어느 가치도 가지지 못한다. 가건물과 같은 도로변의 중고 가구점들과 졸속으로 지어진 진부한 주거지 사이에 건축을 위치시킬 때의 해법이란 건물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바른손 사옥의 세련되고 독창적인 외관은 주변의 너저분한 도시 풍경을 환하게 바꿔준다. 이른바 도시에 보석을 아로새긴다. 그러나 바른손 사옥은 더욱 적극적인 도시적 관계성을 추구한다. 건물의 4면을 각각의 문제와 논리에 따라 부분해를 구하고, 그것을 도시적 경관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건물의 내부에 도시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 경관이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 건물의 건축가는 주어진 상황을 취사선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모두를 수용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그럼으로써 건축이 도시풍경을 구성하는데 일조를 한다거나, 혹은 도시의 경관이 건축에 풍부함을 제공한다거나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도시와 건축이 서로 대화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진정한 상호관계성에 도달하고자 한다. 아마도 바른손 사옥이 거둔 가장 뛰어난 성취는 바로 도시와의 건강한 만남일 것이다. 만남을 위한 구체적인 수법들은 재치가 번득인다. 도시의 경관을 통채로 흡입하기도 하고, 벽면의 틈새로 힐끗 엿보기도 한다. 유려한 벽면의 풍경을 제공하기도 하는가 하면, 형체를 해체하여 건물의 매스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이 건물은 그 자체가 수직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지하부는 도시에 개방된 공공공간들의
집합체이다. 지상부의 저층부는 2개층의 개방된 쇼룸, 중간층은 사무공간, 상층부는 공중정원에 딸린 임원실들이다. 이 4부분의 건축적 원형은 지하는 플라자, 저층부는 전시관, 중간층은 사무소, 상층부는 단독주택이다. 4부분은 기능만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공공플라자 -전시관 -사무소 -주택들은 도시의 주요한 건축적 원형들로서, 4개의 건물군이 수직으로 적층된 집합체다.
도시는 건물과 장소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관련지워주는 통로들의 조직체가 중요하다. 바른손 사옥에는 4개의 건물군을 밀접하게 연관 지워주는 순환동선이 체계화되어 있다. 계단은 단순히 상하를 이어주는 통로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가로로서 기능한다. 통상적인 1층은 지하의 플라자와 지상의 전시관을 위하여 적극적인 계단을 설정하였고, 상층부로 통하는 로비와 아울러 주차탑의 차량 진입로까지 총 4개의 동선을 배분하는 가장 공공적인 장소로 바뀌었다. 1층이 교통광장이라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은 도시의 대로이다. 모든 순환로들은 위와 아래, 안과 밖이 서로 연결되어 점으로 존재하는 건물군들을 위상수학적인 세계로 변환시킨다. 수직도시는 이 순환체계로써 완성된다.
이처럼 외부 도시에 대해 적극적인 관계를 맺으며 내부에 또 하나의 독립된 도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건물의 외관과 구성은 얼핏 복잡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마치 야외극장과 같은 지하의 마당, 구름다리같이 떠 다니는 계단들, 또 다른 장소를 암시하는 커다랗게 휜 철판의 벽……. 등 친숙하고 매혹적인 장소들이 부분부분들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이처럼 복잡하면서도 매력적이지 않는가?
바른손 사옥은 당시 30대 중반의 건축가 이종호를 이시대의 가장 탁월한 건축가의 한사람으로 끌어 올렸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참신하면서도 현실적인 해석이 돋보임은 물론, 신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완숙하고 절제된 기술과 디자인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 봉 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