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찔러 구멍을 내는 건물”이라는 뜻의 ‘마천루(摩天樓)’는 ‘skyscraper’의 훌륭한 번역어지만, 건설 기술자들은 ‘초고층 건축물’이라는 가치중립적 용어를 쓴다. 마천루라는 단어는 현대 문명의 총아라는 희망적인 유토피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류의 탐욕과 환경 파괴를 비판하는 디스토피아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서울 삼성동의 한전부지에 115층, 높이 571m의 초고층 사옥을 짓겠다는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시공 중인 123층, 555m 높이의 잠실 롯데타워보다 층수는 낮지만 높이는 훌쩍 뛰어넘어 국내 최고를 자랑할 예정이다. 현행 건축법은 초고층 건물을 높이 200m, 50층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초로 이 기준을 넘어선 여의도 63빌딩을 비롯하여 국내에 89개동의 초고층 건물이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버즈두바이 빌딩도 국내 건설업체의 작품이니 한국의 초고층 기술은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마천루에 대한 논쟁은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환경의 문제이다.
낙관적인 주장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론에 따르면,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초고층은 문명 발전의 상징이며 도시의 발전을 주도한다고 한다. 높은 인공물을 세워 하늘에 닿고 싶은 욕망은 고대부터의 갈망이었다. 구약성경의 바벨탑은 그 욕망의 헛됨을 일깨웠지만, 이집트의 피라밋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세유럽의 고딕 첨탑이나, 신라의 황룡사 목탑까지 초고층 건물은 모든 문명의 꿈이었다. 또한, 당대의 기술과 미학이 집중된 최고의 랜드마크를 세우면 그 일대의 경제적 가치를 선도하는 효과를 거둔다. 도쿄의 롯본기힐 프로젝트와 같이, 침체된 지역의 획기적인 개발 전략으로 최선의 선택이다. 인천 송도나 부산 해운대지구에 유독 초고층이 많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땅값이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간척지에 값비싼 마천루를 세움으로써 그만큼 지가를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도이치 뱅크가 분석 결과 내 놓은 ‘마천루의 저주’설은 매우 비관적이다. 천문학적인 건설비가 드는 초고층 건설은 일반적으로 돈줄이 풀리는 양적 완화시기에 시작하지만, 완공 시점엔 경기가 정점에 달하고 버블 붕괴로 불황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1931년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완공과 함께 경제 대공황이 시작했고, 1999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와 더불어 금융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한국도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던 10년 전만 해도 수도권 일대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 계획이 10여건에 달했다. 용산역 재개발지에 세워질 이른바 ‘랜드마크 빌딩’도 그랬지만, 잠실 롯데타워만 제외하고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뉴욕 발 금융위기의 영향 때문이었다.
초고층을 단지 투자 대비 효율로만 따지자면 비경제적인 건물이다. 일반적으로 60층이 넘으면 단위면적당 건설비가 2배, 100층이 넘으면 3배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당연히 초고층의 임대비는 2~3배에 달하는데, 임차인의 경우 그만한 임대비를 내고 꼭 초고층 사무실을 얻어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기 사옥인 경우 임대료 걱정할 필요도 없고, 기업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으니 초고층 계획을 단순히 비경제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런 경우 ‘랜드마크’가 아니라 ‘오너마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 땅에는 수많은 초고층들이 들어서고, 더 높은 건물들이 나타날 예정이니 찬성이나 반대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초고층이 들어서야할 필연성은 있어야 한다. 한정된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이든,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획기적 기술을 실험하기 위함이든 실질적인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단지 과시나 오너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저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