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환경> 94년 9월호에 9명의 건축가에 대한 평을 기고한 적이 불과 두달전이다. 물론 스튜디오 메타도 포함하여, 간략하지만 그러나 중요한 요점은 이미 다 이야기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메타의 작업에 대한 비평을 의뢰받고 처음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할 내용이 없어 사양했었지만, 이들 작업의 중요성 특히 바른손 사옥의 완성도에 끌려 수락을 하고 말았다. 그 뒤 작가와 대화도 가졌고, 현장을 다녀왔고, 많은 자료도 제공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번의 간략한 평을 중언부언해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필자의 능력때문이기도 하고, 메타의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너무나 중요하고 선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도시에 대한 건축적 해법과 가능한 테크놀로지의 표현이다.
도시적 집합
건축이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법은 다양하다. 흔히 도시적 컨텍스트를 따라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건축의 내부에 도시의 경관을 끌어들여 관계를 맺기도 하다. 전자가 외향적인 것이라면 후자는 내향적이다. 도시의 유형학이나 도시풍경론에서 추구하는 방법론들은 기존의 환경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었거나 혹은 어느 정도의 질을 가지고 있을 때에 가능하다. 그러나 바른손 사옥이 위치하는 방배동의 풍경은 그 어느 가치도 가지지 못한다. 가건물과 같은 도로변의 중고 가구점들과 졸속으로 지어진 진부한 주거지 사이에 건축을 위치시킬 때의 해법이란 건물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독창적인 형태, 매우 세련된 외관으로 이른바 도시에 보석을 아로새긴다. 그러나 바른손 사옥은 더욱 적극적인 도시적 관계성을 추구한다. 건물의 4면을 각각의 문제와 논리에 따라 부분해를 구하고, 그것을 도시적 경관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건물의 내부에 도시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 경관이 아름답거나 감동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메타의 건축가들은 주어진 상황을 취사선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그럼으로써 건축이 도시풍경을 구성하는데 일조를 한다거나, 혹은 도시의 경관이 건축에 풍부함을 제공한다거나 하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도시와 건축이 서로 대화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진정한 상호관계성에 도달하고자 한다. 아마도 바른손 사옥이 거둔 가장 뛰어난 성취는 바로 도시와의 건강한 만남일 것이다. 만남을 위한 구체적인 수법들은 재치가 번득인다. 도시의 경관을 통채로 흡입하기도 하고, 벽면의 틈새로 힐끗 엿보기도 한다. 유려한 벽면의 풍경을 제공하기도 하는가 하면, 형체를 해체하여 건물의 매스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이 건물은 그 자체가 수직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지하부는 도시에 개방된 공공공간들의
집합체이다. 지상부의 저층부는 2개층의 개방된 쇼룸, 중간층은 사무공간, 상층부는 공중정원에 딸린 임원실들이다. 이 4부분의 건축적 원형은 지하는 플라자, 저층부는 전시관, 중간층은 사무소, 상층부는 단독주택이다. 4부분은 기능만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공공플라자 -전시관 -사무소 -주택들은 도시의 주요한 건축적 원형들로서, 4개의 건물군이 수직으로 적층된 집합체다. 도시는 건물과 장소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관련지워주는 통로들의 조직체이다. 바른손 사옥에는 4개의 건물군을 밀접하게 연관 지워주는 순환동선이 체계화되어 있다. 계단은 단순히 상하를 이어주는 통로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가로로서 기능한다. 통상적인 1층은 지하의 플라자와 지상의 전시관을 위하여 적극적인 계단을 설정하였고, 상층부로 통하는 로비와 아울러 주차탑의 차량 진입로까지 총 4개의 동선을 배분하는 가장 공공적인 장소로 바뀌었다. 1층이 교통광장이라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은 도시의 대로이다. 모든 순환로들은 위와 아래, 안과 밖이 서로 연결되어 점으로 존재하는 건물군들을 위상수학적인 세계로 변환시킨다. 수직도시는 이 순환체계로써 완성된다.
기술의 재구성
바른손 사옥에는 여러 재료가 세련되게 사용되었지만, 이른바 ‘하이테크 건축’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건축의 테크놀로지란 생산의 과정이 아니라 구축법의 선택을 뜻한다. 소위 하이테크라 이름지워진 건축의 부재가 지극히 수공업적으로 제작되어 결구되기 때문에 하이테크란 표현의 방법일 뿐이다. 어쩌면 건축은 하이테크의 스타일은 존재할 수 있지만, 영원히 로우테크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테크놀로지의 중요함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건축은 기술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하이테크’만이 기술이라 여기는 매우 중대한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메타의 건축가들의 말을 빌리면 “테크놀로지란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의 합리적인 선택이며 정제된 조합”이다. 매우 정확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널려있는 기술들을 소화하기에도 건축은 부족한 그릇이다.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진입할 수록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의 끊임없는 발명이 아니라, 개발된 기술들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건축가의 판단이다. 수도 없이 널려있는 기술은 흩어진 진주일 뿐이다. 그것을 꿰고 디자인하는 것은 결국 건축가의 정신적인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의 하이테크란 첨단을 가는 선택과 조합의 기술이라고 재정의해야한다. 그렇다면 바른손 사옥은 하이테크 건축일 것이다. 없는 것을 발명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조합하는 작업은 더욱 어렵다. 기술과 산업의 현장에서 무엇이 일어나는 지를, 어떠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는 지를 끊임없이 주시하고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만 가능하고, 진실로 전문가들만이 이룰 수 있다. 페이퍼 아키텍트들을 가능성만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에 관한 한 아마츄어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기술만큼 국적을 가진 분야도 드물다. 오히려 정신적인 차원은 이제 범세계적인 공유가 가능하다. 국적을 초월한 사상과 건축의 이론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기술의 차원에서 그 나라가 갖지 못한 것을 현실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유하지 못한 기술은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기술의 수입이란 지식의 수입보다 훨씬 까다로운 현실적 장애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바른손 사옥에 쓰여진 테크놀로지들은 순수한 국산품의 조합이다. 국산품이라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기술의 선택과 조합이라는 본연의 의미에서 높이 평가해야할 것이다. 그 실체는 익숙한 재료들을 낯설게 사용하는 데에 잇다. 콘크리트 철판 나무들. 평범한 재료의 잠재력을 투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건축의 기술적 차원이다. 바른손 사옥이 추구하고 있는 기술의 차원이기도 하다.
논리를 넘어서
바른손 사옥은 모더니즘의 도그마로 본다면 지극히 이단적인 존재이다. 4면이 모두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으며, 지하부 -지층부 -기준층 -상층부의 구성이 서로 다른, 다시 말하면 기준층의 개념이 없는 오피스빌딩으로, 수직적 복합체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매우 치밀한 필연적인 부분해들의 집합이고, 그 부분해들은 아주 세련되게 정제되어 전체를 구성한다. 예컨대 오피스 빌딩의 일반적인 해법과는 반대로 전면을 폐쇄하고 측면을 개방한 발상도 다른 건물과 차별화 전략이 아니라, 인접 대지들의 개발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한 후에 내려진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것이다. 가로면의 휘어진 벽면은 형태적인 유희가 아니라 가로의 변곡에 대한 대응이다. 또 진입부의 비틀어진 벽면 역시 위와 아래로 동선을 배분하고 유도하기 위한 장치물이다. 모든 부분부분이 모두 이유를 갖고 있고, 합리적으로 설정되었다. 그것들은 차라리 발명에 가깝고, 정교하게 서로가 서로를 맞물고 있다.
정교한 건축은 흔히 차겁게 느껴지기 쉽다. 뛰어난 천재들에게 범접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이러한 위험성까지도 계산하고 있다. 4개의 기능군마다 주조를 이루는 극적인 공간을 삽입한다. 기준층 마저도 엘리베이터 홀에 서면 시원하게 터진 창을 통해 도시의 경관을 마음껏 흡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고, 반대쪽에는 옥외 테라스를 돌려서 능동적으로 도시와 만날 수 있다. 상층부의 정원은 옥상정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9층과 10층 2개층에 걸쳐 정원을 설치하고 옥외 간이계단으로 두층을 하나로 묶었다. 또 전면벽에 사각구멍을 뚫어 가로면에서 내부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이 두개층은 아랫부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이루게 된다. 기준층부가 도시를 흡입하는 곳이라면, 상층부는 반대로 도시에 내부의 경관을 제공하는 곳이다. 지하의 계단식 플라자는 이 건물의 대표적인 공간으로 설정되었다. 엄정한 벽면 사이로 점감하는 계단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자연스런운 그러나 낯선 나목 裸木의 바닥에서 체험을 종결시킨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콘크리트의 브리지와 철제 계단이 대비를 이루며 하늘의 경관을 구성한다.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초기부터 깔아놓은 복선이다.
합리적인 해법들과 그들의 정교한 결합, 그리고 계산된 감성들. 그러나 전체성이 없다.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부분이 너무 강조되어 전체성을 느끼지 못한다. 건축적 감동이란 전체성에서 온다. 정교한 부분들은 놀람을 불러 일으키며, 완벽하게 논리적인 구성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감동을 강요하고 있다. 그 정교함과 논리의 결과로 지하 플라자의 무리한 스케일, 철제 계단의 작위성들이 노출된다. 이러한 지적은 ‘옥의 티’다. 메타의 작업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 – 아니 더욱 바라는 것은 합리적 해결과 논리적 구성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이다. 하나의 건축에 영원한 생명성을 부여하는 궁극적인 그 무엇. 그것에 가장 근사하게 요구되는 것이 전체성의 구현이라 생각한다. 모든 개별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부분해보다는 하나의 건축 전체를 감싸는 주제, 그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