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특정한 장소인 땅 위에, 특정한 기능을 구현하도록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다. 지구상의 무한한 지점 가운데 특정한 장소는 단 한 곳뿐이지만, 공간은 역사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제도화되고 규범화되어 왔다. 따라서 장소는 건축을 특수하게 만들고, 공간은 보편적으로 만든다. 장소와 공간이 선험적으로 부여받은 건축의 숙명이라면, 이를 구상하고 실행하는 건축가의 사유는 좀 더 주체적이고 가변적이다. 건축에 투영된 건축가의 사유들이 독창적이면 건축을 개별화시키고, 그 사유들이 인습적이라면 건축을 집단화시킨다. 하나의 건축물을 개별적인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문화적 역사적 양식의 한 사례라고 보느냐는 시각은 장소와 공간, 그리고 사유 간의 관계망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달려있다.
흔히 한국건축은 생소하다고 한다.
장소 – 자연의 기를 감응하는 건축의 터
한반도는 국토의 70%가 산지이지만 산악 국가는 아니다. 산들은 높되 가파르지 않고, 골짜기는 깊으나 험하지 않다. 인간의 접근을 불허하는 신성한 산들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거주를 가능하게 하는 경사지들이다. 한반도의 산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립된 거대한 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산들의 주름 사이에는 골짜기가 생기며, 골짜기를 흐르는 물들 또한 서로 하나로 합쳐진다.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말은 70%가 골짜기라는 말도 된다. 한반도는 산과 골의 나라, 산곡국山谷國이다.
하나의 높은 주봉에서 발원한 여러 산들은 산맥을 이루고, 하나의 산맥은 좀 더 작은 다른 산맥을 만들어내면서 동네 뒷산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산들의 족보를 ‘산경山經’이라 하여, 백두대간이니 한북정맥이니 이름을 붙여왔다. 산들의 짜임은 그 사이에 있는 계곡, 골짜기 역시 서로 짜이도록 했다. 골골을 흐르는 작은 개울들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시내들이 만나 강을 이루었다. 산의 짜임을 산경이라 한다면, 물의 짜임은 ‘수위水緯’라 할까? 전 국토는 산들의 날줄과 물들의 씨줄로 짜인 비단 천과 같아, 그야말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다. 산들은 갈라지고 물은 모인다. 갈라짐과 모임의 접점에 인간들은 집을 짓고 삶을 살아왔다.
순천 선암사에 보관된 <대각국사중창건도大覺國師重創建圖>는 선암사를 둘러싼 산과 물의 짜임새를 잘 보여준다. 7겹이 넘는 첩첩이 둘러싼 산들 속 너른 터에 선암사가 자리 잡았다. 좋은 터란, 이처럼 산맥으로 겹겹이 둘러 싸여 보호를 받는 곳이며, 자연 환경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첩첩 산들 사이로 12구비로 휘어진 물길이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보호받되 고립되지 않고, 연결은 되지만 개방된 곳은 아니다.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움직이며 변화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이 분명해서, 식물들의 생장과 휴지를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산들로 에워싸인 하늘에는 늘 바람이 불고, 골마다 흐르는 물은 쉴 새 없이 대지를 적신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소출들을 먹고 의지하며 인간은 살아간다. 자연은 생기生氣 충만한 거대한 생명체이며 잘 짜인 아름다운 유기체로 믿어왔다. 하늘에는 천기天氣가 있고, 땅에는 지기地氣가 있다. 이 자연의 기운은 무한할 뿐 아니라 항상 움직이며, 천기가 지기로, 지기가 천기로 바뀌기도 한다.
풍수지리설의 원리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천기와 지기가 움직이고 변화하는 통로를 장악하면, 거대한 자연의 기를 인간에게 감응시킬 수 있다. 그 장악의 도구가 바로 건축이다. 좋은 터에 지은 집은 자연의 생기를 담는 곳간이며, 인간은 건축물에 저장된 생기를 받아 몸의 기로 바꾸면 된다. 그러나 좋은 터란 정해진 곳이 아니다. 산의 모양새가 모두 다르고, 흐르는 물의 굽이가 다르며, 여기에 집을 짓는 사람의 성정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장소의 성격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곳에 사는 인간의 관계 속에서 독자적으로 생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건축이 처한 장소적 제약은 심각했다. 경사지가 대부분인 국토를 건축적 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지를 다루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다. 지형을 최대한 보존해야 자연의 기를 온전히 얻을 수 있기에, 경사지를 최소한으로 깎고 메워서 평지를 만들었다. 여러 개의 단으로 나누어 축대를 쌓아 만든 계단식 대지는 이러한 필요에 부합하는 터 닦기의 방법이었다.
영주 부석사는 급한 경사지에 9개의 크고 작은 석단을 쌓아 계단식 평지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들을 앉혔다. 아래 위의 석단들은 크고 작은 계단으로 연결되는데, 단 차이가 많이 나는 지점에는 누각을 세워 두 단의 터를 통합하기도 한다. 부석사의 범종각이나 안양루는 2층 건물로, 아래층을 비워 계단이 있는 통로로 활용한다. 어두운 누각 아래 통로를 오르면 홀연히 다음 장면이 밝아진다. 이른바 ‘누하진입’ 방법으로 얻어지는 드라마틱한 한국 건축의 명장면이다.
합천 해인사는 좀 더 커다란 계단식 터로 이루어 졌고, 각 단의 높이 차이를 연결하는 방법은 더욱 다양하다. 일주문과 천왕문의 높이 차는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어 연결했는데, 통로 양 옆으로 높은 측백나무를 줄지어 심은 나무 벽을 만들어 통로의 방향성을 강조했다.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는 높은 계단으로, 다음 단은 구광루를 세워 누하진입 방법으로 연결했다. (현재는 구광루 옆의 대문을 세워 통로의 방식을 바꾸었다.)
자연의 지형에 축대를 쌓고 터를 닦는 행위는 최초의 건축적 행위이다. 따라서 터의 생김새는 곧 최초의 건축적 생각들 -지형 분석과 토지 이용에 대한 생각들이 응축된 실체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고려시대 건축의 폐허에서 잘 읽을 수 있다. 개성의 고려궁궐인 만월대, 진도의 용장산성, 강화의 선원사지, 그리고 최근 발굴된 파주 혜음원지들이 대표적인 고려의 건축적 터들이다. 이들은 목조건축은 일절 남지 않은 철저한 폐허이다. 남아있는 것은 여러 단의 석축들과 그 위에 나뒹구는 몇 개의 기단이나 초석뿐이다. 그럼에도 이 폐허들의 남은 석축들은 그 자체로 건축적 공간들을 이루고 있다. 지형의 변화는 그대로 석축들의 높낮이로 반영되어 공간적 운율을 이루며, 장소의 잠재력이 건축적 공간으로 형태화된 곳이다.
가장 형식적인 궁궐 건축마저도 자연의 교감을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서울의 창덕궁은 조선조 500년간 가장 오랜 기간 정궁으로 쓰인 대표적인 궁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의 건물들은 매우 비정형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정문은 궁궐의 가장 서쪽 구석에 위치하며, 정전으로 이르는 통로는 2번을 꺾어 들어가야 하는 미로와 같다. 중요한 여러 건물들은 서로 불규칙한 건축적 관계를 이룬다. 그럼에도 실제 접하는 공간들은 규칙적이고 자연스럽게 느낀다. 완만한 능선에 터를 잡은 창덕궁은 지형의 흐름에 맞추어 건물을 앉히고 마당을 만든 결과, 불규칙한 건축적 배열을 가지게 된 것이다. 불규칙하게 보이는 창덕궁 배치는 지형에 따른 건축적 결과로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국의 도시는 읍성과 산성을 함께 운용하는 이성제(二城制)를 채택해왔다. 읍성은 평소의 일상생활을 위한 곳이며, 산성은 유사시 방어를 위한 곳이다. 그러나 유사시 산성으로 피난하여 방어하는 것은 결국 읍성의 파괴와 주민 재산의 약탈을 야기한다. 18세기 실학자들은 읍성 자체를 보호해야한다는 ‘읍성 방어론’을 주장하였고, 그 결과로 건설한 곳이 수원의 화성이다. 화성은 일상과 방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산지와 평지가 만나는 곳에 터를 잡았다. 화성의 서쪽 부분은 마치 산성과 같고, 동쪽 부분은 평지의 읍성과 같다. 이 복합적인 성곽은 도심을 둘러싸며, 평지에 자리 잡은 도심은 잘 계획된 도시구조를 이루었다.
산이 날줄이 되고 물이 씨줄이 되어 짜인 한국의 자연, 그 속에 인간은 건축적 장소를 발견하고 집을 짓는다. 그 곳에 위치한 집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경관은 가장 큰 정원이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물이 산을 만나 휘어지는 곳을 ‘곡(曲)’이라 했고, 산과 물이 이루는 특정한 장면을 ‘경(景)’이라 했다. 한반도의 선비들은 하나의 물줄기에 있는 여러 개의 곡을 골라 ‘무흘구곡’ ‘도산십이곡’ 등을 경영했고, 한 고을에 있는 여러 경을 골라 ‘단양팔경’ 등을 정했다. 곡과 경은 한반도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의 경치에 인간적 의미를 부여한 거대한 건축이었다.
담양의 소쇄원은 별뫼[星山]와 자미탄이 어우러져 만든 ‘소쇄구곡’ 중 제5곡에 터를 잡은 별서정원이다. 소쇄원 내부가 자연을 인공화한 정원이라면, 외부 여덟 곳의 장소는 자연에 의미를 부여한 정원이다. 소쇄원은 자연적인 계곡에 약간의 인공을 가해 만든 정원이다. 자연 지형을 더욱 극대화하고 물의 흐름을 증폭하여 만든, 자연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최대화시킨 정원이라 할 수 있다.
하이데거(M. Heidegger)는 “인간은 구체적인 장소와 시대 속에 던져져 있는 존재”라 했다. 또한 거주의 환경은 하늘과 땅, 인간, 그리고 신의 네 요소를 바탕으로 구성된다고 했다. 서구의 현상학적 깨달음과 유사하게, 중국문화권에서는 자연과 인간은 서로 감응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당연하게 여겨왔다. <<주역周易>>은 말한다, “정신과 생기가 모여 사물을 이룬다.” 세계 각 문화권의 고유한 건축들은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을 가장 중요한 건축적 가치로 삼았고, 특히 한국건축은 자연의 생기를 인간에게 감응시키는 도구로 쓰였다.
땅을 고르고 터를 정하는 것, 그리고 대지를 구획하고 터를 만드는 것은 가장 최초의 건축이다. 특히나 여러 제약이 많은 한반도에서 특정한 장소를 발견하고, 장소의 잠재력을 깨닫는 일, 그리고 그 깨달음을 터로 형태화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한국 건축의 시작이다.
공간과 형태 – 집합적 구조의 이해
건축은 인간이 살고 이용하기 위한 실용적인 구축 행위이다. 삶과 행위를 담는 공간은 건축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으며, 건축술의 가장 큰 목표는 좀 더 편리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특정한 공간은 특정한 형태를 만들며, 공간과 형태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세계 여러 문화권은 건축 공간을 만드는 고유한 방법을 갖고 있었고, 개성 있는 건축 형태를 계승해 왔다. 공간과 형태에 대한 고유한 방법을 우리는 건축 문화라 부르고, 건축적 전통으로 이해한다.
4개의 기둥으로 에워싸인 공간을 ‘칸[間]’이라 부르며, 칸은 동아시아 목조 건축물의 기본 공간단위가 된다. 칸은 중성적인 공간 단위일 뿐이며, 내부를 건축화해야 비로소 문화적 성질을 갖는다. 한국 건축의 칸은 바닥의 재료에 따라 흙바닥인 온돌과 나무인 마루로 이루어지는데, 온돌 칸과 마루 칸은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갖는다. 온돌은 추위를 대비해 난방을 하는 공간이고, 마루는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공간이다. 온돌은 바닥을 낮추어 지면에 붙을수록, 마루는 바닥을 높여 지면에서 멀어질수록 효율적이다.
흔히 한옥을 “한 지붕 아래 온돌과 마루를 동시에 갖는 집”으로 규정한다. 온돌을 한옥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중국 동북지방에도 부분적인 온돌이 분포하고,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서도 유사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집들에 마루는 없다. 일본의 집에는 마루만 존재한다. 온돌과 마루의 결합은 한옥의 기능적 특징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공간의 성격이기도 하다. 한국의 온돌방에는 늘 마루 칸이 부가된다. 한국적 공간의 기본 단위는 온돌 칸과 마루 칸이 집합된 한 쌍의 공간이다. 온돌 칸은 벽을 쳐서 폐쇄된 공간을 이루며, 마루 칸은 벽이 없는 개방된 공간을 이룬다. 폐쇄와 개방, 흙과 나무, 따뜻함과 서늘함 등 서로 상반된 성질은 모든 환경적 장애를 극복하도록 서로 도와준다. 동양 사상의 음양적 원리와 같이, 온돌-마루의 집합적 공간은 상호 보완적이다. 온돌이 양이라면 마루는 음이다.
칸들의 관계를 맺는 음-양 공간의 집합적 구조는 건물들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구례에 있는 지주층의 주택, 운조루雲鳥樓의 구성을 묘사한 <전라구례오미동가도 全羅求禮五美洞家圖>는 이러한 중층적인 집합 구조를 잘 보여준다. 칸들이 모여 건물을 이루며, 각 건물은 온돌방과 마루칸의 반복적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영역을 형성하는데, 건물들은 가운데 마당을 에워싸며 서로의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그림 왼쪽 아래에는 사랑마당이 그려지고, 3채의 건물의 정면이 이 마당을 향해 감싸도록 묘사되었다. 물질체인 건물들이 양이라면, 비어있는 마당이 음이다. 한국의 건축은 음-양 구조의 건물군의 집합체이며, 마당이 중심인 건축이다.
여러 개의 건물군, 다시 말해 여러 개의 마당이 모여야 건축이 완성된다. 운조루에는 큰 사랑마당, 작은 사랑마당, 안마당, 사당마당, 책방마당, 반빗간 마당 등 6개의 마당이 집합된다. 이 마당들, 다시 말해 건물군들의 집합 방법에 따라 건축적 성격을 갖게 된다. 운조루의 경우, 남자들의 건물군은 병렬적으로 펼쳐져 있으며, 여성들의 건물군은 그 뒷 열에 숨겨져 있다. 이 집 그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의 앞뒤로 산과 강을 그려서, 더 크게는 이 집과 자연이 또 다른 차원의 집합적 관계를 맺는 것을 암시한다.
한국적 공간의 집합적 구조는 건물- 건물군 -건축 -자연 등 4개 차원에 걸쳐 중층적으로 나타난다. 이 중층적 집합구조야 말로 한국적 공간의 문화적 성격이며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중국건축은 건물 내부의 집합적 관계가 약하고, 자연과의 집합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건축은 건물들 간의 집합성이 약하며, 중심이 되는 마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집합적 차이는 곧 각 나라 건축의 차이가 된다.
경주 양동마을은 각 집들의 집합 방법, 다시 말해서 마을을 구성하는 건축적 방법이 독특하다. 마을은 4개의 능선과 그 사이 3개의 골짜기에 터를 잡았다. 각 능선 위에는 상류층의 주택이, 골짜기 아래엔 서민층의 주택이 위치한다. 사회적 계층에 따라 상하 고저차를 갖는 집합의 방법이다. 각 능선에는 특정 성씨의 종가들이 위치한다. 가문의 차별은 곧 능선의 분점으로 집합된다. 양동마을의 중요한 집들은 마당의 집합 방법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 관가정은 하나의 중정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집합되며, 향단은 두 개의 중정으로 집합된다. 서백당은 하나의 중정과 또 하나의 개방된 마당을 갖으며, 무첨당은 분산된 여러 마당으로 구성된 집합체이다.
수십 동의 건물들을 갖는 사찰들에서 그 집합적 방법은 더욱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순천 선암사는 크게 4개의 건물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각 영역의 집합적 방법은 서로 다르다. 대웅전 영역은 4동 중정형의 구성, 원통각 영역은 통로들의 집합으로, 응진전 영역은 점진적 건물군의 배열, 각황전 영역은 작은 중정형 구성이다. 이 건축영역들은 독특한 집합 방법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사찰로 일체화한다. 길을 사이에 두고 병렬되기도 하고, 어떤 영역은 길의 정점에 놓이기도 한다. 그래서 선암사는 마치 하나의 마을과 같이 도시적 집합체의 성격을 갖는다.
양산의 통도사는 이른바 ‘3노전제’로 운영되었다. 노전제란 사찰 운영의 단위를 의미하지만, 건축적 영역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세 개의 영역은 각기 다른 특징적인 집합 방법을 갖는다. 하로전은 4동의 전각이 에워싸는 ‘4동 중정형’의 집합체이며, 중로전은 3동의 전각이 앞뒤 일렬을 이루는 축 선 상의 집합체이다. 반면, 통도사 신앙의 핵심인 금강계단이 있는 상로전 영역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4방에 마당이 존재하는 회전형 집합체이다. 이 3개의 영역은 하나의 동서 통로로 다시 통합되어 통도사 특유의 공간을 구성한다.
한국 건축은 건물 내부의 공간보다 건물 사이의 공간, 다시 말해서 마당과 같은 외부공간의 집합 방법이 더 발달해 왔다. 주택과 사찰의 차이, 궁궐과 민가의 차이는 그 외부공간의 규모와 집합적 차이에서 나타난다. 불교 사찰이라도 불국사와 해인사, 통도사와 선암사의 개별성은 다름 아닌 각 사찰이 가진 집합적 건축의 차이이다. 경복궁과 창덕궁이 다른 것 역시, 그 외부공간의 집합적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건축은 기본적으로 목구조이며, 수많은 부재들을 이음과 맞춤이라는 공법을 통해 집합한 구조물이다. 이 집합적 구조체로 내부 공간을 만들며, 건물의 형태를 이룬다. 중국계 목조건물은 대지와 기단으로 만나고, 하늘과 지붕으로 만나며, 그 사이에 기둥을 세운 벽면이 있다. 고대 중국의 건축서 <목경木經>은 “가옥에는 삼분三分이 있다. 들보 이상은 상분, 기단은 하분, 그 사이가 중분이다”고 했다. 동양적 우주관에 의하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天圓地方]” 따라서 하분인 기단은 직선이며, 상분인 지붕은 곡선이다. 지붕의 곡선을 만들기 위해 귀솟음과 안쏠림과 같은 목구조적 기법들이 발달했다.
같은 중국계 건물도 형태적 차이가 있다. 중국건물은 지역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하분이 약하며, 일본 건물은 상분이 비대하다. 반면, 한국건물은 중분이 비대한 편이다. 개별 건물의 형태보다 더 뚜렷하게 집합적 형태에서 차이가 난다. 중국이나 일본의 건축은 개별건물이 독자적인 규모와 형태를 갖기 때문에 개별적 형태가 중요하다. 반면, 한국 건축은 경주 불국사와 같이 집합적 형태가 발달해 있다. 불국사 정면은 청운백운교와 연화칠보교, 종루와 경루, 안양문과 자하문, 그리고 행랑등 여러 건물과 요소들이 복합 중첩되어 있다. 이러한 집합적 형태는 대웅전 영역과 극락전 영역을 병렬로 구성한 공간 집합의 결과이다.
집합적 공간이 집합적 형태를 이루며, 집합적 방법의 차이는 건축의 차이를 가져온다. 거시적으로 한 문화권의 집합적 전통은 곧 그 건축문화의 실체이며, 집합의 차이가 곧 각 나라 건축의 차이이다. 한국 건축의 역사는 유구한 시간 동안 발전해 왔지만, 그 발전은 개별 건물의 발전이 아니다. 개별건물의 재료와 형태, 그리고 내부 공간의 모습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건축은 크게 달라졌으니, 바로 집합적 구성의 방법이 변화하고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집합은 곧 건축 공간과 형태의 실체이다.
건축적 사유들 – 장엄과 예제
건축의 전통은 인간의 생각들을 집단적으로 모으고 굳혀서, 오랜 시간 세대를 더해가며 인습적으로 전승한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사유들은 흔히 민족 공동체의 신앙이나 세계관으로 나타난다. 한국적 사유의 전개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한민족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토착 신앙에서 출발하여, 샤머니즘과 도교와 결합하고, 불교를 수입하여 거의 민족 종교화 시켰으며, 유교와 성리학을 수입하여 사회 제도와 생활의 규범으로 삼았다. 19세기 후반부터 서구의 종교와 근대적 사상을 수입하여 근대화와 국제화의 길을 걷는 중이다.
불교를 수입한 5세기부터 고려조가 멸망한 14세기까지 1,000년간 한국은 불교국가였다. 고대 사회에서 불교의 도입이란, 가장 고등한 철학과 사상을 도입하는 것이었고, 한자 문화와 함께 발달된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도입하는 일이었다. 도입된 선진적인 건축술은 불교 사원 건설을 통해서 국내 건축술의 발전으로 이어져 대규모 건물, 초고층탑과 같은 정밀한 건축술을 발달시켰다. 또한 극락의 세계를 재현하듯, 정교한 조각과 회화 그리고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한 건축은 사찰 뿐 아니라 궁궐이나 관청건축에도 퍼져 한국 건축의 장식적 전통을 형성했다.
초보적인 유교 또는 유학은 삼국시대부터 유입되어 국가의 체제나 사회적 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본격적인 유교문화는 1392년 조선의 건국과 함께 꽃을 피웠다. 유교적 사상을 사회적 철학과 종교적 신앙으로 승격시켰고,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아 성리학의 규범을 사회 전체의 가치관으로 발전시켰다. 물질보다 관념을, 표상보다 본질을 강조했던 성리학적 사유는 건축을 규범화시키고 미학적 욕구를 절제하고 단순화 했다.
불교는 중생의 해탈을 추구하는 대중적 종교이지만 그 교리는 난해하고 복잡하다. 문자를 모르는 중생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달한 것은 회화나 조각, 그리고 건축이었다. 원시 경전의 내용을 묘사한 본생도부터, 부처의 모습을 재현한 불상들, 그리고 화엄이나 밀교의 세계를 상징화한 만다라까지 수없이 많은 조형물을 창조하여 대중 포교의 방편으로 삼았다. 또한 고층 구조물인 불탑을 비롯한 독특한 건축 형식들을 창조해 신앙의 상징과 대상물로 삼아왔다.
신라 황룡사 금당에 솔거가 그린 소나무 벽화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수많은 새들이 날아와 머리를 부닥쳐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상적인 세계를 재현하려는 사실적 조형 의지 때문에 생긴 전설이다.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은 이상적 세계를 재현한 건축공간이다. 중앙의 불상은 수미산을 상징한 연화대좌에 앉았고,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천장을 덮어 부처의 세계를 재현했다. 목조 불전의 내부는 더욱 장식적이다. 불국사 대웅전을 예로 들면, 수미단을 만들고 불상 위에는 천상 세계를 상징하는 닫집을 달았다. 실내에는 봉황이 날고 용들이 꿈틀거리며, 온통 연꽃문양과 구름문양의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통도사 법당들의 벽화는 더욱 사실적이다. 극락전에는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왕생하는 중생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졌고, 영산전 내부 벽에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나란히 앉아 설법하는 법화경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벽화들은 종교적인 설명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용화전 상부 벽에 그린 민화풍의 까치호랑이는 순수 장식의 기능이다.
한국에 정착된 대승불교는 수많은 부처와 보살을 신앙한다. 그들은 각각 자신만의 불국토를 가지며, 우주는 무수한 세계로 이루어진 집합체가 된다. 고대사찰들은 불교 고유의 우주관을 건축으로 상징화했다. 경주 불국사에는 4개의 불전이 현존하는데, 각각의 불전 영역은 회랑과 담장에 의해 독립적으로 구획되어 있다. 각 영역은 하나의 불국토이며 독립된 사찰이다. 불국사는 4개의 사찰, 다시 말해서 4개의 불국토를 집합한 대우주를 의미한다.
유교시대인 조선시대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축소된 형태로나마 지켜졌다. 교파의 구분이 사라진 시대였기에, 하나의 사찰 안에 여러 명의 부처와 보살을 모셨는데, 비록 독립된 신앙 영역을 가질 수는 없어도, 하나의 불전에 한명의 부처를 모시는 전통은 유지했다. 양산 통도사에는 15동의 불전과 법당들이 세워졌고, 이 많은 건물들 사이의 건축적 관계 맺기가 곧 통도사 건축의 핵심적 모습이었다.
수많은 불전들은 하나의 부분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불국토라는 전체이기도 하다. “부분이 곧 전체”라는 건축적 원리에 따르면, 건물 한 동은 독립된 완결체이며, 창문 하나, 문고리 하나도 완결된 완성품이어야 한다. 이로서 장식적 욕구, 공예적 기술, 오브제로서의 건축물의 성격 등이 ‘부분완결성’이라는 명제로 통합하게 된다.
유교의 이상 세계는 상하의 위계질서가 명확한 ‘종법적 세계’이다. 종법적 질서는 ‘예(禮)’라는 이성적 판단과 ‘제(制)’라는 사회적 규약에 의해 지켜지고 발전하게 된다. 건축 역시 예제적 규범을 따라야하는 하나의 제도였다. 예를 들어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규범은 궁궐과 같은 공공건축의 앞쪽에 정전이나 사당과 같은 의례적 건축을 두고, 뒤쪽에 생활영역을 두라는 예제였다. 경복궁과 창덕궁도 공통적으로 이 예제를 지키고 있다. 경복궁은 명확한 중심 축선 상에 이 규범을 실현한 반면, 창덕궁은 동서로 분산된 상태로 이 규범을 실현한 건축적 차이를 가질 뿐이다.
역대 임금들의 신위를 모신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에 총 39위를 모시고 있다. 문제는 역대의 신위를 어떤 순서로 모시는가 하는 제도였다. 정전은 서쪽부터 선대의 신위를 모시는 이른바 ‘서상西上’의 예제를 따랐고, 영녕전은 중앙에 선대를 모시고 좌우로 번갈아 후대를 모시는 ‘소목昭穆’ 제도를 택했다. 따라서 정전은 19칸 모두 하나의 지붕을 갖지만, 영녕전은 가운데 4칸이 높고 좌우가 낮은 형태를 갖게 되었다. 예제가 건축의 형태를 만든 사례이다.
유학자들은 표상과 진리의 세계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졌고, 눈에 보이는 표상의 세계는 허위이며, 그 속에 감추어진 진리의 세계야 말로 도달해야할 이상이었다고 믿었다. 따라서 세상만사를 ‘중요한 것 [본本]과 지엽적인 것 [말末]’로 구분했다. 이 본말론에 의하면 건축의 쓰임새가 ‘본’이고, 건물의 생김새는 ‘말’이다. 장식이나 색채나 현란한 재료 등은 말초적인 것으로, 본질을 흐리는 장애물이다. 건축은 일절 장식과 색채를 절제하고 최소의 재료와 공간만 필요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완성자인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을 모체로 확장한 건축군이다. 도산서당 건물은 퇴계의 최소주의적 건축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 부엌-온돌-마루의 3칸으로 구성한 최소의 건물이며, 일절 장식과 색채를 배제한 절제된 건물이다. 담장의 중간을 끊어 외부로 통하는 ‘문짝 없는 문’을 조성했다.
성리학의 이상적 인간은 깨달음을 얻은 군자君子로서, 세계와 우주의 중심이 되는 인간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는 군자에 의해 재조직되는 주체적 영역이며, 건축물은 세계와 군자 사이의 경계물이다. 항상 건물의 내부에 있는 군자에게 밖에서 보는 건물의 외형이나 장식, 색채는 의미가 없다. 오로지 안에서 바깥의 경치를 선택하고 바라보는 구조이다.
도산서당의 작은 창을 통해 내다보는 도산12곡의 경치도 일품이지만, 병산서원이나 도동서원의 누각에서 보는 경관은 이 서원들의 존재 의의를 깨닫게 해 준다. 텅 비어있는 누각은 자연 경관을 담는 액자와 같아서,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통합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럼으로써 자연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인간 중심의 자연으로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세계관을 건축으로 실현하게 된다.
서원의 누각이 공공적이고 집단적인 도구라면, 소쇄원의 예와 같이, 정자건축은 더욱 개인화된 도구이다. 광풍각의 온돌방은 사방 6자 정도의 작은 공간으로 이른바 군자 홀로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러나 바깥 원림의 풍경은 물론, 바람 소리와 물소리도 들을 수 있는 총체적 천인합일의 공간이다. 작고 단순한 구조물이지만 그것이 담는 경관과 정신은 광대하고 심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