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7.10.01.
출처
선경 사내지
분류
건축역사

진주난봉가는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년만에 ……..”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울담이 없는 집이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을 의미한다. 웬만큼 살만한 집이라면 자기 영토에 담을 쌓아 “여기는 내집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를 하게된다. 이때 담은 경계만 표시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견고하고 높게 쌓을 필요가 없었다. 나뭇가지 따위를 엮어 ‘울, 울타리’라 불리우는 엉성한 담을 만들어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담이 단순히 경계를 표시하던 기능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궁궐과 같이 육중한 담을 쌓아 내부를 보호하기도 했고, 담에 붙여서 집을 만든 후 지붕을 씌우기도 했다. 담이 건물의 벽으로 활용된 예로 이런 집을 ‘담집’이라 부른다.
담장은 건축적 형태요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옥의 곡선미를 자랑하는 단아한 지붕들은 수평적으로 둘러진 담장들이 배경을 이루어 집합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사직단과 같이 건물은 없고 담장들로만 이루어진 건축이 만들어질 정도다. 우리의 담장은 건물과 더불어 집의 공간을 이루는 2대요소였던 것이다.
담을 만드는 재료와 기법은 너무나 다양했다. 생나무를 조밀하게 열지어 심은 생울, 나뭇가지들을 가로 세로로 엮은 바자울은 초보적인 담장의 모습이다. 더 견고한 방법으로는 흙 석회 지푸라기를 섞어 다진 토담, 돌맹이로만 쌓은 돌각담, 돌과 흙을 섞어 쌓은 맞담 등이 있다. 맞담 중간중간에 장식용 돌을 넣은 곡담, 갖가지 무늬의 장식을 한 꽃담 등은 최고급의 장식용 담장이었다.
어떤 재료를 어떤 방법으로 쌓던지 간에, 아직도 시골마을에 가면 나지막한 담에 둘러싸인 농가들이 많이 남아있다. 굳이 집안을 들여보고 싶으면 제자리 뛰기만해도 들여다볼 수 있는 정도로 낮은 담들이다. 쓸데없이 들여다 보기에는 불편하지만, 굳이 넘겨볼려면 볼 수 있는 담들. 바로 그런 높이는 사람 키보다 한뼘 정도 위면 충분하다. 또 담장과 담장 사이로 난 긴 골목길들은 한국 마을 특유의 인간적인 장소를 만들어준다. 높이가 두길을 넘고 그도 모자라 도난경보용 감지선까지 담장위에 설치하는 요즘, 예전의 인간적인 담들은 얼마든지 쌓아도 좋을 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