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대문호, 이규보는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는 문학 속에서 여러 가지 발명품들을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사방에 4개의 바퀴를 달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사륜정(四輪亭)의 아이디어가 상상력의 백미를 이룬다. 이 수레 정자는 <사륜정기>라는 글 속에 등장하는데, 사륜정이라는 정자의 모양도 흥미롭지만, 여러 가지 건물의 형식을 묘사하여 더욱 흥미롭다.
이규보는 여기서 4가지 건물을 언급하고 있다. 누(樓)라는 건물은 지상에서 높이 띄워 지은 이층집을 말하며, 정(亭)은 내부가 탁 트여 텅빈 집이라 했다. 대(臺)는 기단을 차곡차곡 높이 쌓아 올린 집이며, 사(榭)란 난간이 겹겹으로 둘러 쌓인 집이라 했다. 그런데 그가 언급한 누-정-대-사라는 4가지 건물은 먹고 자기 위한 일상적 건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자연 경관이나 정원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지어진 휴식용 건물들이다. 그에 따르면 놀이와 휴식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들의 여러 가지 종류와 격식에 맞추어서 행해야한다는 것이다.
누는 누각이라 부르고, 정은 정자다. 누각은 아래 위층으로 구성된 2층 건물로서, 아래층은 기둥만 세워 틔워 놓고, 위층에는 마루를 깔아 그 위에서 쉬고 놀 수 있는 건물이다. 경복궁 경회루와 같이 큰 누각은 넓이만도 300여 평에 달해, 만약 그 안에서 집회를 갖는다면 1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반면 정자란 누각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은 집이다. 따라서 정자가 주로 개인을 위한 쉼터라면, 누각은 공공적인 쉼터였다.
누각은 궁궐이나 관청 뿐 아니라, 사찰과 서원 향교 성곽 등 웬만한 규모의 건축에는 흔히 사용되었던 형식이지만, 경치를 즐기기 위한 누각들은 주로 궁궐, 객사, 서원에 속한 누각들이다. 이들은 주로 경치가 좋은 강변 언덕이나, 그렇지 않으면 인공적으로 만든 넓은 연못가에 세웠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예를 들어 밀양에 있는 영남루는 굽이쳐 흐르는 밀양강 높은 절벽 위에,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는 인공적으로 만든 부용지라는 넓은 연못 위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의문이 있다. 영남루나 주합루가 세워진 곳은 땅 자체가 높은 언덕인데, 여기에 왜 또 다시 2층으로 건물을 올린 것일까? 건물만 쳐다보면 해답을 얻을 수 없지만, 그 앞의 강물이나 연못과 함께 생각하면 답을 얻을 수 있다.
물을 감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강변에 서서 바라보면 강은 선으로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나 강변선 만이 눈에 뜨일 뿐, 강의 생김새 전모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사람의 눈은 기껏해야 1.6m 정도 높이니, 강의 수면과 크게 차이가 없는 높이다. 물이 선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그러나 언덕이나 절벽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면, 넓은 녹색 도화지 위에 두꺼운 붓으로 그은 듯, 강물의 힘찬 굽이를 볼 수 있다. 눈 높이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누각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그도 모자라서 2층으로 더 높게 솟아오른 까닭은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물의 수평면을 감상하려고 함이다. 강이라는 자연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고, 그를 에워싼 산세도 즐길 수 있다. 더욱 큰 효과는, 수평면이 거울효과를 갖기 때문에 물에 비친 경치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야밤에 보름달이라도 뜨면 더욱 환상적인 경치를 감상하게 된다. 하늘의 달과 함께, 물에 비친 달을 두 배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포대 누각에서 누군가 읊조리지 않았는가? “경포에는 달이 다섯 개라네. 하늘에 떠있는 달이 하나요, 술잔과 호수에 비친 달, 그리고 그대의 두 눈에 비친 달까지.” 경포대 누각이 산마루 높은 곳에 있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싯귀였다.
그러나 2층 건물인 누각을 건설하려면 고도의 건축 기술이 필요하고, 규모도 커서 건설비도 많이 든다. 그리고 유지 관리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누각의 주인들은 개인이기 보다, 대부분 관청이나 서원과 같은 공공 집단이었다. 특히 지방행정 관청들이 소유한 누각들의 명성이 자자하다. 예의 밀양 영남루는 물론, 춘향전의 무대였던 남원 광한루, 연어가 회귀한다는 오십천 절벽 위의 삼척 죽서루, 그리고 논개의 충절이 얽힌 진주의 촉석루……… 이러한 명 누각들은 모두 ‘객사’라는 관아에 소속된 객사누각이었다.
객사란 관찰사와 같이 조정에서 파견된 사신이 오면 묵게 했던 일종의 국립호텔이었다. 관찰사는 지방 수령의 상급자일 뿐 아니라, 지엄한 어명을 받들고 파견된 왕의 분신이었다. 따라서 최고로 융숭한 대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을에서 가장 뛰어난 경승지에 누각을 짓고 잔치를 벌이게 된다. 누각에는 벽을 치지 않는다. 그 좋은 경치를 감상하려면 모든 벽면을 틔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흩날리며 잔치를 벌였다. 벽이 없는 누각이란 이처럼 자연에 공개된 장소였다.
천지의 원리를 토론하고, 시를 읊고, 술을 마신다. 그 고상한 향연들은 공개적으로 벌어졌다. 물론 온갖 산해진미와 기생단을 거느리고 대대적인 놀음을 벌였던, 춘향전의 변학도와 같이 간 큰 수령도 없지 않았지만, 이처럼 온 고을민들이 쳐다볼 수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지나친 놀음을 놀기는 어려웠다. 지금과 같이 음습한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퇴폐적 술자리는 아예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누각이란 이처럼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무리 흥겨운 놀이와 잔치라도 흐트러지거나 호화로울 수 없는 절묘한 건축형식이었다. 일석이조의 지혜랄까?
영남루나 죽서루 위에 오르면, 그 아래 강물은 마치 여러 폭의 병풍을 펼쳐 놓은 것같이 보인다. 여러 개의 누각기둥들 사이로 기다란 강물의 흐름이 분절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냥 강가에 서서 보는 강물과는 전혀 다른 강이 된다. 자연은 자연이로되, 인공적으로 선택되고 조절된 자연이다. 누각을 힘들여 만들고, 그 위에 올라 보아야 하는 이유다. “전에는 이름 없는 꽃에 불과했지만/ 내가 이름을 부르면 너는 의미가 된다”는 시와 같이, 누각에 오르기 전에는 무의미한 강이었지만, 누각에 오르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강과 자연이 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어주는 것이 누각이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맺어준다. 자연을 풍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위대한 건축이다. 남산타워나 전망대와 같이 세울수록 자연을 파괴하고 꼴불견이 되는 현대건축과는 달리, 누각은 진정 위대한 우리의 건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