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벽두의 건축 건설 이슈는 제2의 중동 붐이다. UAE(아랍에미레이트 연합)으로부터 40조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성사시킨 국가 홍보성 뉴스가 언론을 장식했다. 그 투자의 핵심 내용이 원자력발전과 고속도로 등 인프라 건설 등이어서 건설업계는 반색하고 있다. 작년 말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가 내한하여 최고의 국빈 대우를 받았다. 대통령 면담은 물론이고 국내 8대 재벌 총수와 집단 면담을 가질 정도로 파격적인 대접이었다. 사우디가 발표한 총 700조 원 규모의 우주적 계획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네옴시티 프로젝트. 한국의 새해 국가 총예산이 638,727,600,000,000원이니, 일개 건설 프로젝트가 우리의 1년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천문학적 규모다. 2022년 한국의 총수출액이 7조 5000억 원 정도여서 네옴시티의 3%라도 한국이 차지한다면 수출액을 3배 넘게 늘릴 수 있으니,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건설업 역사의 두 디딤돌
1960년대 최빈국 그룹이었으나 불과 6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의 기적은 세계적이고도 세기적인 경이로운 사건이다. 그 동인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지만, 1960년대의 베트남 파병과 70년대 중동 건설 붐은 빠지지 않는 요인들이다. 60년대 북한의 군사적 경제적 역량은 남한을 월등히 앞선 상황이었고, 미국의 군비 축소로 주한 미군 철군 등 심각한 안보적 위협에 직면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파병은 복잡한 한미 안보동맹을 굳건하게 하는 군사 외교적 목적에서 강행한 결정이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총 30만 명의 국군 장병들이 참전해 50,000여 사상자를 냈으나, 직간접적 경제적 부수 효과는 5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안보 목적으로 파병했으나 부수적인 경제효과가 오히려 경제개발과 근대화의 막강한 씨앗이 되었다.
1973년 중동 산유국들의 카르텔은 원유가를 4배나 올려 전 세계를 오일쇼크의 늪에 빠지게 했다. 원유수입국인 한국 경제도 심각한 외환위기와 100%가 넘는 인플레이션에 휘청거렸다. 베트남에서 경험을 쌓은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중동에 진출해 오일 달러를 역으로 벌어들이는 데 눈을 돌렸다. 중동 건설 붐의 절정기인 1981년 해외 건설 수주액은 137억 달러에 달했고, 한해 20만 명에 육박하는 건설 인력이 해외에 파견되었다. 오일 달러는 건설업을 비롯한 한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한국 사회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 한국의 경제를 주도하는 분야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첨단 산업 분야지만, 그 최대 기반을 조성한 것은 건설업임을 부인할 수 없다.
베트남과 중동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건축역사와 이론을 전공하는 필자는 이 역사적 두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베트남과 중동의 건축 역사와 문화에 대한 부족한 지식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베트남은 그나마 건축 투어를 통해 북부 하노이 지역과 남부 호치민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크게 다르다는 정도, 중부 후에 지역의 건축적 친연성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는 방문할 기회도 없었고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적도 없다. 그저 이 나라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이니 대표적인 모스크 건물 몇 개 정도를 서적을 통해 아는 정도에 그친다.
일반인에게 베트남에 대한 이미지는 기후가 온화하고 비용이 싼 리조트 관광지 정도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압도적 1위를 차치한다고 해서 ‘경기도 다낭시’로 부르는 다낭이나 푸꾸옥, 하롱베이 등 유명관광지를 보유한 국가, 동남아시아 중에는 그래도 성실한 인력이 있어 해외 진출이 용이한 기업환경 정도로 여기고 있다. 반세기 전 남의 나라의 의미 없는 전쟁에 참전하여 서로 막대한 피해를 주고받은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에 참전했지만 이 나라에 대한 인문학 연구자는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수백 개의 기업이 베트남 현장에서 외화를 벌어들였지만 베트남 건축과 문화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지식조차 갖추지 못했다. 건축학계의 베트남 인식도 별다르지 않다. 베트남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건축 연구자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한 것이 대한민국 건축계의 현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도는 더욱 처참하다. 중동지역의 오일 달러에만 관심이 있을 뿐,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에 대해 기초적 이해는 막론하고 편견과 왜곡으로 점철된 허위 지식이 대부분이다. 폭력적 종교라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함께 이들 국가를 여성 억압과 테러범 양산국으로 단정하고 비하한다. 수십만의 건설 인력과 건축 전문가들이 10년 가까이 상주하면서도 이슬람 건축과 문화 연구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철저한 외부인으로 현지에서 격리된 현장 사정이나 도로나 항만 등 비문화적 부분만 담당했다고 변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수십만이 관여했고 수백억 달러를 벌었던 지역에 대해 역사적 문화적 관심과 연구가 없었다는 것은 일천한 한국 지식계와 천박한 건설계의 모습을 드러내는 증거다.
신기루를 좇지 않으려면
역사학은 과거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학문이다. 또다시 중동의 역사지리적 연구와 이슬람 문화에 대한 핵심적 이해 없이 2차 중동붐을 기대하려는가? 도로 항만의 인프라건설이나 기술적인 플랜트 건설 참여는 가능할지 모르나, 문화 종교시설이나 주거지 설계 등 핵심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의 참여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인문 사회학적 이해 없이 지속적인 관계 맺기 역시 무책임하고 불가능하다. 중동의 오일달러를 탐하는 기업이라면 인문학적 연구를 후원해야 하고, 학계는 전문 연구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건축계 역시 아랍 문화와 이슬람 건축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한두 명이라도 출현해야 하지 않는가?
역사학과 이론의 임무는 현재의 문제를 조명하는 것이다. ‘네옴시티’라는 신기루 같은 프로젝트의 실상을 반추하고 그 허구를 드러내야 한다. 네옴시티는 주거용 도시 ‘더 라인’과 해상 산업단지 ‘옥사곤’, 그리고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건설로 이루어졌다. 사막과 바다와 험산에 첨단 기술 기반의 완전 인공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적인 계획이다. 핵심 프로젝트인 ‘더 라인’은 높이 500m의 유리 터널을 170km 길이로 건설하여 200만 인구가 거주하는 선형도시를 세우겠다는 내용이다. 123층 롯데타워(550m) 높이의 도시를 서울~강릉 간 거리만큼 사막 한가운데 가로지르겠다는 엄청난 규모다. 2030년 최종 완공이고 총예산 5,000억 달러. 초단기 건설기간도 의심스럽지만, 천문학적 예산마저 이 신기루 프로젝트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태양광, 풍력, 그린 수소 등 첨단 에너지를 도입해 탄소 제로의 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과연 지구 기후적 사회적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제가 없는지 연구하고 평가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제 한국은 세계적 경제 대국이고, 한류가 전 인류의 핫 이슈가 된 문화 강국이다. 그 위상에 합당하는 품격을 갖추고 의무를 책임져야 한다. 기후 변화가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라면, 경제적 양극화와 디지털 기술격차는 전 지구적인 사회문제다. 네옴시티 건설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이 문제들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건축적 이론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슬람 건축과 문화에 대한 초보적 지식과 이해라도 선행해야 한다. 건축 역사와 이론의 범주가 한반도와 유럽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역사는 과거를 성찰해 현재를 조명하는 작업이며, 우리를 알기 위한 이론의 역할은 타인의 이해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