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일대의 저밀도 아파트 -쉽게 말해서 5층 이하의 저층아파트-의 집주인들은 재산 증식의 단꿈에 부풀어있다. 서울시가 저밀도 아파트 지구의 용적율 상한선을 285%로 완화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잠실지구의 경우 현재의 용적율이 100% 내외이기 때문에 계산상으로는 3배 가깝게 면적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15평 서민아파트가 45평의 중산층 아파트로 바뀐다니, 그것도 거의 거저로 생기고, 재건축 중에 다른 곳으로 옮길 이주비용까지 대준다니 그 누가 마다할까? 재건축 사업을 염두에 두고 이미 잠실과 반포 등지의 저층아파트 가격은 오를대로 올라있고, 몇 년을 질질 끌던 결정이 내려졌으니 꿈에 그리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왜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 행복한 시민들의 소원을 비판하고 제동을 거는가. 한정된 땅에 3배의 면적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층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의 5층 아파트들은 최소한 15층 이상으로, 적정하게는 25층 정도의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게된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고밀도화, 고층화 정책을 문제삼고 나왔다. 서울이 자꾸 고층화되고 빽빽해 지는 것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정치권의 우려는 조금 각도가 다르다. 총 1만여 세대에 이르는 대규모 단지들이 동시에 개발된다면 건설시장에 닥칠 자재와 인력 파동, 연쇄적인 집값 상승, 또한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순차적 개발이라든가, 건설시장의 계획적인 개입, 제도적 투기억제책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고층 고밀도화 자체가 갖는 결과적인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은 아니다. 고밀화는 당연히 인구의 집중을 유발하고, 교통문제와 환경문제를 유발한다. 미학적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도시 경관의 황폐화라는 치명적 문제를 야기한다. 시민 개인의 주거환경이 좋아지는데 무슨 고상한 걱정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피해를 입어야한다는 점이 바로 고밀화 재건축 문제의 핵심이다. 재건축 과정 중에 발생할 문제들은 정책적 제도로서 조절할 수 있고, 교통 혼잡이나 공해문제는 고도의 테크놀로지로 해결할 가능성이 있지만, 한번 파괴된 도시의 경관과 환경은 무슨 수를 써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숨막힐 듯 조밀하다고 해서 아파트 한두동을 뽑아내거나 층수를 깍아낼 도리가 없다.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을 하게되는 이유는 크게 보아서 두가지다. 첫째는 낙산 시민아파트와 같이 부실공사와 노후화로 붕괴의 위험에 직면한 경우다. 이 때는 재건축 여부와 관계없이 신속한 철거가 우선돼야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재건축 과정을 통해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 또는 재산의 증식을 꾀하려는 경우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강남의 단지들은 경제적 목적이 대부분이다. 잠실의 경우 설비와 구조가 노후화되기는 했지만, 부분적인 수리와 교체를 통해서 계속 생활할 수 있는 단지다. 중산층용 아파트로 계획된 반포의 경우는 설비와 구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지은지 오래돼서 낡았다는 이유, 그러나 정확히는 좁은 집을 넓게 지어 재산을 증식하려는 이유 뿐이다. 그러나 재건축은 개별 가구로서는 이익임에 틀림없지만, 나라 전체로 본다면 커다란 국가적 자원의 손실일 뿐이다. 주택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4백만 아파트들이 모두 재건축을 할 경우 자원의 손실은 9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국가 총예산의 두배에 달하는 막대한 액수다.
저층 아파트 재건축 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이익은 국가와 공공의 손실이요, 도시환경을 엄청나게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 도시계획이란 개별적인 자본과 정치력 사이의 파워게임이라는 표현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만 세대의 경제적 권리를 지원할 것인가, 서울의 쾌적한 도시환경을 가꾸어 나갈 것인가. 서울시가 봉착하고 있는 재건축 문제의 핵심이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인가, 건강하고 인간다운 도시인가. 서울시민들의 선택은 여기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