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2.10.01.
출처
이상건축
분류
건축론

금년은 건축전시회의 해라고 부를 만하다. 올 봄의 광주비엔날레 건축분야에서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미술계의 주목을 받더니 9월달에는 굵직한 3개의 건축전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전 (국립현대미술관 8.28-10.27)과 헤이리 건축전 (성곡미술관 9.10-10.27), 그리고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한국관의 전시회는 그 규모 뿐 아니라 내용과 형식면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건축작품 전시회는 미술전시회와는 다른 메카니즘을 갖는다. 미술관을 찾는 이유가 복제된 책자에서는 불가능한, 전시된 진품만의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다. 그러나 건축전시회에 보여지는 것은 진품이 아니라 건축물을 축소한 모형이나 영상, 그리고 기호화된 도면 뿐이다. 진품은 전시장 바깥의 거리나 자연 속에 떨어져 있으며 재현물 만이 전시장을 지킬 뿐이다. 화가는 미술품을 판매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지만, 건축가의 전시회에는 판매할 작품이 없다. 건축전이란 막대한 전시비용만 소요되는 소모적인 이벤트일 뿐이어서, 미술관측에서도 건축가 측에서도 외면하는 대상이었다. 승효상전에서는 건축가가 수억원의 전시비용을 모두 손해로 처리하고 있으며, 헤이리나 베니스에 출품한 작가들도 수천만원의 적자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건축전시회의 대차대조표다. 우선 재정적인 희생만으로도 건축전 개최는 갸륵한 일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올해부터 건축비엔날레를 매 2년마다 개최하기로 하였고, 그만큼 건축비엔날레의 위상도 높아졌다. 지난 비엔날레에는 커미셔너가 자신을 참여건축가로 추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올해는 우규승 조성룡 민현식 김종규 이종호 김영준 박헬렌 등 30대부터 60대까지 고른 연령층의 건축가들을 참여시켰다. 그러나 전체 주제인 ‘다음NEXT’에 걸맞는 통일된 기획이 없어 드림팀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개성있는 주제의식을 표출하지는 못했다고 보인다.
헤이리 건축전은 파주 법흥리 통일동산 일대에 계획되고 있는 ‘헤이리 문화예술촌’의 전체적인 마스터플랜과 1차적으로 계획된 40여 개의 설계작품들을 담고 있다. 이 작업은 작년말 전시되었던 파주 출판도시전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파주가 5-60대의 중진건축가들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헤이리는 김종규 김준성 등 주로 3-40대 소장 건축가 30여명이 참여하여 차세대 국내 건축계의 활력과 의욕을 예견케 한다. 각각 작품들의 개성에 맞게 여러 가지 입체적인 전시방법을 택하면서도 하나의 공간 안에 밀집되어 있어서 헤이리 현장을 강렬하게 재현한다.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자리 매김된 승효상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의해 ‘2001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고, 그 기념 건축전을 열게되었다. 그의 명성은 아시아권에도 널리 알려져,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 초청 출품되었고, 작품상을 수상한 중국팀 작업에도 일부 참여하였다.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도시공간으로 설정해 16개의 블럭으로 나누고 각 블럭에 자신의 대표작 한 작품씩을 전시하고 있다. 관객들은 골목이나 광장과 같이 남겨진 여백에서 우연치 않게 마주치고 부대끼면서 건축과 도시를 체험하게 되는, 어느 설치미술전보다도 훨씬 현장성이 강하다.
헤이리에 전시된 40여개의 작품들이 하나의 마스터플랜을 구축하고 있다면, 승효상전의 16개 프로젝트는 한 건축가의 생각이 전개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집단과 개인이라는 차이와 같이, 헤이리전은 수십개의 이질적인 작품들을 한 공간으로 통합하고, 승효상전은 같은 작가의 프로젝트들을 16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있는 전시방법의 비교도 흥미롭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메시지들이다.
세 전시회에 출품된 작업들이 공통으로 선언하고 있는 명제는 이제 건축은 건물이라는 좁고 폐쇄적인 경계를 넘어 도시 또는 자연환경과 강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효상은 웰콤시티에서 잘 표현하듯이 건축물을 도시적 경관을 수용하고 만드는 그릇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헤이리에서는 전 마을 지표면의 모양과 패턴을 디자인하여 건축적 하부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건물들이 올라설 지형의 구조이며, 건물들의 집합적 경관이다. 하나하나 건물의 형태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윤리적 규범은 물론이고 미학적 가치도 갖지 못한다. 좋은 도시란 멋진 건물들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남겨진 도로와 마당, 빈터들이 풍부하게 디자인된 장소이다. 기능, 동선, 내부공간, 형태 등의 익숙한 개념들 대신에 도시적 여백, 랜드스케이프, 지형 디자인 등의 확장된 개념들이 자리잡고 있다.
세 전시회는 확실히 건축의 영역을 경관과 도시로 확장하고, 건축의 범주를 작품과 예술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러나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하고 있는 건축가를 포함하여, 동시 진행중인 전시회의 건축가들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조성룡 민현식 승효상 이종호 김종규 김영준 등 10여명 내외가 이 모든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파주 출판도시나 광주 비엔날레도 마찬가지였다. 베니스에 초청된 9인 가운데 6인이 특정학교의 설계교수라는 우연도 목격했다. 건축의 영역과 범주는 확실히 확장되고 있지만, 이 넓혀진 영역 속에서 활동할 건축가의 인적 자원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다. 이들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들 외에 어떤 움직임이나 주장들이 표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건축계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을 반대하든, 찬성하든, 아니면 제3의 길을 주장하든 더 다양한 활동과 흐름이 있어야되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