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역사는 어쩐지 공업도시 울산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다음 주 개최될 처용문화제의 목표가 문화와 공업의 조화라지만, 울산의 문화는 항상 개발과 산업에 밀려 말라죽기 직전이다. 경상일보 연재기획의 울산 고가 취재에 동행하면서 이러한 상실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88년 울산 일대의 전통가옥을 일제 조사한 지 7년만에 다시 찾은 한옥들은 한마디로 무참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보존이 되었으면 울산 최고의 문화재가 되었을 송정동 박씨 고가의 안채는 철거지고 덩그라한 콘크리트 2층집이 들어섰다. 연못과 별당은 보존되었지만 결국 절름발이 집이 되고 말았다. 등억리의 김씨 고가는 田자형으로 구성된 사랑채가 가치있었는데, 바로 몇년전 철거되고 말았다. 박씨 고가의 경우, 보존을 위해 몇차례 시당국에 문화재 지정과 예산지원을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어서 할 수 없이 새집을 지었다는 집주인의 하소연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수된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명촌리의 김씨 고가 사랑채는 이른바 익공계 구조형식 (기둥위 구조와 장식을 위해 결합한 목재 이름) 으로 역사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최근 보수 때 익공을 없애버리고 기둥 위에 바로 도리를 걸어 평범한 집으로 바뀌어졌다. 몇해전 발굴되었다가 파괴된 검단리 주거지의 경우는 더욱 끔직하다. 울산 컨트리클럽 공사 중에 발견된 이 유적은 남한 최대의 집단 원시주거지였는데, 긴급 발굴만하고 불도저에 밀려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등억 온천 개발의 와중에서 초라하게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간월사지나 쓰러진 채로 방치된 청량사지 탑 등도 처량한 신세다.
작년 극심한 가뭄과 물부족으로 사연댐 수위를 높이자는 제안은 한국 최고의 원시 암각화를 가진 반구대 유적에게는 공식적인 파괴 선언이었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서는 송정동 박의사 생가복원과 자리도 잃어버린 태화루 신축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은 남은 것이라도 지켜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