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3.03.03.
출처
한겨레
분류
건축론

100가족의 면회, 2박3일의 면회 일정. 이 정도의 사실만으로도 면회소의 규모는 건축학적으로 쉽게 계산할 수 있다. 전체가 만날 수 있는 면회장, 며칠동안 지낼 수 있는 가족단위 숙소, 공용 식당, 그리고 지원 인력들의 사무실과 숙소는 필수적이다. 위로행사를 열 수 있는 공연장, 연로한 면회인들의 건강을 위한 응급병원시설 역시 없어서는 안될 시설들이다. 최소로 계산한다면 순면적 5,400여평, 복도 계단 등을 포함한 총면적 7,000평 정도의 규모가 된다.
그러나 적정규모란 시설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서로 합의를 보지 못하는 것은 건축적 크기가 아니라, 그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는 서로의 계산들이다. ‘22,000평, 특급호텔 수준’이라는 북측의 요구는 면회소를 빙자하여 금강산을 개발을 위한 컨벤션과 호텔시설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 ‘2,300평, 일반 콘도 수준’이라는 남측의 주장은 기존 군대 면회소에나 적합할 규모로 임시 가설건물 수준에 그칠 수 있다.
반(反)자본주의로 체제를 유지해 온 북측에서는 상업적 계산을, 거대한 물량 개발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남측에서는 축소지향을 주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이산 가족들의 상봉 환경에 대한 배려도, 면회소 건축이 가져야할 역사적 의미에 대한 논의도 찾아볼 수 없다.
면회소는 체제와 계층을 떠난 가장 인간적인 만남의 장소이다. 따라서 불완전한 시설이나 짜증날 정도로 협소한 면적 때문에 상봉 자체의 집중도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한다. 또한, 이 장소가 일반 관광이나 통일 연수와 같은 다른 용도를 염두에 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목적용이란 뒤집어보면 어느 한 목적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적정규모는 7,000평에서 9,000평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이산의 시간이 50년을 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70세 노인의 경우, 같이 살았던 시간보다 3배 가까운 세월을 강제로 떨어져 산 셈이다. 어렸을 때 공유한 삶의 기억은 잠깐이고, 만남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다른 처지와 생각 때문에 갈등이 싹트게된다. 며칠 동안 같이 어울려 생활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이다. 따라서 이질적인 혈육들이 서로 익숙해질 수 있는 결합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공식적인 면회장이나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자유롭게 함께 거닐 수 있고 마주볼 수 있는 건축적 장소들이 필요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손을 잡아 부축하고, 건물 사이의 골목에서, 마당에서, 풀밭에서 예기치 못한 접촉과 대화가 발생할 수 있는 건축이어야 한다. 군대 막사 같은 획일적 건물이나, 최고급 호텔 같이 화려한 공간에서는 이런 자발적이고도 개별적인 만남은 기대할 수 없다.
익숙함이란 우선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남북 어느 한 쪽에 친숙한 건축 환경은 상대방에게는 불편하고 생소한 감정을 유발할 것이다. 헤어지기 이전에 같이 겪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공동의 감수성을 회복하는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잃어버린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는 건축이 필요하다.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나 휘어진 마을길의 추억을 가진 건축, 연못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같은 아련함과 감동을 연출할 수 있는 건축이면 좋겠다.
면회소는 마지막 분단국가의 재회라는 세계사적 상징성을 갖는 시설이다. 또한 금강산 뿐 아니라 제2, 제3의 면회소가 설치되는 시점, 더 나아가 통일 이후의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계 여러 지역의 분쟁을 해결할 평화회담장이나 국제기구의 행사장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물론 가깝지 않은 장래의 일이고 여러 부대시설도 추가해야겠지만, 우선 역사적 상징성에 걸맞는 건축적 개성과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 규모나 공사비 문제의 대립으로 시간을 소모하지 말고, 하루 빨리 국제 현상경기를 열어 건축안을 공모하고 실현하자. 그래서 면회소 건축부터 세계사적 사건이 되도록 하고, 남북화해를 세계적 약속으로 정착시키고, 분단 극복의 첫걸음이 되도록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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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000명 규모 면회소의 시설규모 추정
<(100가족 * 6명)+지원인력 400명>

면회장 700석 * 0.7평 = 490평
가족숙소100실 * 20평 = 2,000평
공연장700석 * 1평 = 700평 (무대 포함)
응급병원50병상 * 3평 = 150평
공동식당300석 * 1.5평 = 450평 (주방 포함)
지원인력 숙소400명 * 3평 = 1,200평
사무실 및 기타 40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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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면적 합계5,390평
공유면적 5,390평*0.3 = 1,617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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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면적7,007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