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여러 궁전 가운데 조선왕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바로 창덕궁이다. 정궁인 경복궁을 제치고 제일의 궁전이 된 까닭은 뛰어난 자연환경과 건축적인 조형성 때문이었다. 평지에 조성된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은 완만한 구릉에 기대어 터를 잡았다. 경복궁은 동양 궁궐의 제도에 맞추어, 중심축에 일렬로 주요건물들을 배치한 대칭적 구조를 갖는다. 반면 창덕궁은 구릉지의 지형에 맞추어 매우 자유롭고 인간적인 배치를 하고 있다. 정전인 인정전과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대조전이 옆으로 비딱비딱하게 전개되는 구성에서 권위적인 냄새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친근함만이 두드러진다. 특히 창덕궁 뒤의 넓은 구릉에 조성된 – 흔히 비원이라 불리는 – 창덕궁 후원은 자연지형과 형세를 그대로 살리면서 약간의 인공을 가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차원 높게 승화시킨, 한국적 정원의 백미다.
낙선재는 창덕궁 안에서도 자연적인 경사지를 가장 잘 이용한 곳으로 손꼽힌다. 낙선재는 원래 창경궁에 속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창덕궁과 비원 사이의 길에서 접근하도록 되었다. 이곳은 임금인 남편과 사별한 왕후와 후궁들, 다시 말해 ‘거룩한 과부’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이를 입증하는 건물은 행랑 바깥 넓은 터에 높여진 사각정자다. 한칸의 작은 이 정자는 임금의 관을 발인할 때까지 놓아두던 빈전殯殿으로 일반 정자와는 용도가 크게 다르다.
이씨왕조는 비록 일제에 의해 멸망됐지만 그 왕족들은 최근까지 낙선재에 거주했었다. 마지막 왕후, 순종의 부인인 순정효황후 (세칭 윤비)가 1966년 서거할 때까지 거주했었고,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동생 덕혜옹주와 그의 부인인 이방자여사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때까지는 왕족의 사생활 보장을 위해 일반의 출입을 격하게 금지했다가, 1989년 이방자 여사마저 서거한 후 수리공사를 시행하여 비로소 일반관람을 허용한 곳이다.
낙선재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건물군들의 복합체인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건물이 낙선재여서 이 일대의 통칭이 되어버렸다. 가장 서쪽의 낙선재는 헌종 13년 (1847년) 후궁 김씨의 처소로 마련한 곳이며 규모가 제일 큰 살림채다. 그 동쪽의 수강재는 1848년에 건립했다, 가장 동쪽의 수강재는 1785년 건립되었던 것을 낙선재 창건과 더불어 수리하여 헌종의 할머니인 원순왕후의 거처로 사용했다. 세 건물들은 긴 행랑채와 행각들로 감싸져 있고, 다른 건물군과는 서로 차단되어 있지만, 눈에 들어나지 않는 뒤편의 복도들이 이들을 은밀히 연결하기도 한다. 이 건물들의 구성을 보고 있으면, 대왕대비와 왕대비 (왕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후궁들이 각각 하나의 일곽을 차지하고 살면서 서로 반목하고, 때로는 협조하면서 궁궐의 크고작은 일을 논했던, 연속사극의 몇장면들이 떠오른다.
지금 남아있는 행각들 바깥으로 다시 중행각과 외행각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모두 일제 때 철거되고 최소의 건물들만 남은 것이다. 현재 난선재 일곽 남쪽의 넓은 잔디밭에 그 복잡한 행각들이 있었다. 중심되는 세 건물에는 물론 선왕의 왕후들이 거처했으며, 그 외곽을 두르는 긴 행각들은 그녀들을 호위하고 수발하기 위해 궁녀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세 건물들의 공간적 분위기는 서로 다르다. 낙선재는 루마루가 돌출된 ㄱ자 건물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를 보는 것 같이 위풍이 당당한 건물이다. 반면 석복헌은 양반집의 안채와 같이 정숙하고 아늑한 안마당의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수강재는 一자 대청마루가 길게 놓여진 매우 독특한 공간을 연출한다. 세 건물 모두 비슷한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자칫하면 세 건물을 획일적으로 처리하기 쉽지만, 여기서는 사대부 주택의 구성을 모티브로 삼아 서로가 다르면서도 질서가 잡히도록 설계한 안목이 뛰어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낙선재 일곽의 절정은 후원지역이다. 경사지에 여러 개의 작은 축대를 쌓아 계단식 정원, 이른바 화계花階를 만들어 작은 정원으로 꾸몄다. 앞부분의 살림채와 뒤쪽 높은 정원지대 사이에는 화계와 연이은 뒷마당들이 마련되었다. 급작스러운 공간적 변화를 완화하려는 장치들이다. 화계에는 꽃나무 뿐 아니라, 진귀한 수석들을 놓아 후원부분을 더욱 장식적으로 꾸미고 있다. 계단식 정원 군데군데에 세워진 굴뚝들은 마치 설치미술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다. 온돌방에 꼭 필요한 난방설비인 굴뚝마저도 정원의 한 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살림집 영역이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듯이, 후원지역도 세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육각정 (평면이 육각형으로 생긴 정자)인 상량정은 낙선재 건물에 딸려있는 정자와 정원이다. 2층으로 높게 만들어진 상량정에 앉으면 낙선재 전 영역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복헌 뒤에는 사각형의 단정한 정자 한정당이 있는데, 독서를 하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수강재 뒤에는 더욱 작은 사각형의 정자인 취운정이 있다. 취운정의 네벽에 모두 둘려진 퇴마루는 사방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축요소다.
상량전은 다시 서쪽의 묘한 건물군인 승화루 일곽과 통하게 되는데, 그 사이를 아름다운 원형문이 연결하고 있다. 그 형태도 특이하지만, 문 주위에 전돌로 조각된 여러 문양들이 더없이 섬세하다. 눈을 돌려 낙선재의 건물벽과 담장들에 새겨진 무늬들을 보라. 가히 한국의 문양들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들이다. 또 팔작지붕들의 합각면에 새겨진 문양들도 대단한 작품들이다. 낙선재의 건축과 아울러 담장과 벽의 아름다운 무늬들을 함께 감상한다면, 과연 한국건축의 멋이 무엇인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화려하되 소박하고, 변화무쌍하되 통일감 있는 한국 조형예술의 진한 맛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또한 겹겹이 둘러싸이고 비밀스러운 공간들을 엿보면서 엄격하면서도 낭만적이었던 과거 왕족들의 생활상을 상상한다면 더없이 즐거운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