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0.11.28.
출처
미확인
분류
건축론

살다보면 우울한 소식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는 헤이리의 소식이나, 출판인들의 도시가 만들어진다는 파주 출판도시의 활기를 대하면, 그래도 한국은 살 맛이 나는 희망의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상만 높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현대 도시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며, 익명성의 편리함을 향유하는 곳이다. 도시의 건강보다는 내 집의 행복이 우선하며, 서로 모르고 지내는 가운데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 그런데 헤이리의 사람들은 이 두 가지 근본적인 현대도시의 원칙을 무시하려 한다. 전체 도시의 아름다움을 우선으로 하며, 서로 서로 친근한 이웃의 공동체를 유지하려 한다. 그렇다고 내 집이 도시를 위해 희생되기를 원치는 않으리라. 편리하고 멋진 나의 집이 전체 도시와도 조화되는 길을 찾는 작업. 현대도시의 비정함에, 현대건축의 이기주의에 익숙한 주민이나 건축가들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필자에게 주문하는 것은 이러한 이상을 과거 한국건축에서 찾아봐 달라는 요구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공동체의 모범을 과거에서 찾기는 어렵다. 과거의 공동체들은 사회 구조나 가족 제도, 신앙적 강제성으로 이루어진 예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하나의 훌륭한 건축물이 모여서 더 위대한 마을과 도시를 이룬 예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비록 공동체의 사회적 구조는 다르지만, 부분이 전체를 위하고, 전체가 부분을 보장해주는 공동체적 건축의 방법론을 몇 가지 발견해보기로 하자.
전남 순천에 있는 선암사는 4개의 작은 절이 모인 큰 사찰이다. 과거 전성기 때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행 생활을 했던 한국적 수도원이기도 하다. 이 절에는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해인사 장경판전과 같이 유명한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개의 건물보다는 여러 건물들이 모여서 하나의 절을 이루고, 다시 4개의 작은 절들이 모여 커다란 전체를 이루는 집합적 과정이 훌륭하다. 더구나 4개의 작은 절들은 모두 서로 다른 모습의 독창적인 형태와 공간을 이룬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선암사의 건물들은 나무이며, 선암사는 큰 산과 같다. 나무들이 모여서 하나의 숲을 이루지만, 나무는 단순히 숲의 부속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완결된 생명체이다. 선암사의 뛰어난 승방들 역시 자체적인 생활이 가능한 완결체이면서 동시에 한 절의 부분이 된다. 숲들이 모이면 산이 된다. 숲 하나 하나도 완전한 생태계지만, 그것들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산은 더욱 복합적인 생명계가 된다. 선암사의 작은 4개의 절들이 숲이라면, 전체 선암사는 거대한 산이다.
이러한 위대한 집합적 관계는 어떻게 구현된 것인가? 다른 절과는 달리 선암사는 그 자체로서 자족적인 도시를 이루기 때문이다. 수많은 승려들이 먹고 자고 수행하는 일상생활을 담기에 적합한 건축적 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일반 신도들이 방문하고 감동할 수 있는 다양하면서도 공공적인 공간과 장소들을 가지고 있다.
경북 경주시 외곽의 양동마을은 또 다른 공동체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 마을은 하회마을과 함께 가장 뛰어난 양반마을로 알려져 있고, 지금도 100여호의 주택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공동체다. 일반적인 양반마을은 한 성씨 가문이 주인이지만, 양동마을의 주인은 월성 손씨와 여주 이씨, 두 가문이다. 원래 서로 사돈 관계였던 두 가문이 400년 이상 같은 마을에 터전을 이루면서 묘한 양상이 벌어져 왔다.
두 가문은 대외적으로는 같은 마을민으로서 협동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은근하면서도 치열한 경쟁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를 헐뜯고 피해를 입히는 소모적 경쟁이 아니라, 학문과 문화적인 생산적 경쟁이었다. 서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급제자를 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으며, 지금도 명문대학에 어느 집안 자손이 더 많이 합격했는가가 입시철의 화제가 된다.
더욱 주목할 것은 두 집안의 경쟁의식이 누가 더 좋은 집을 짓는가하는 건축적 경쟁으로 승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손씨 가문에서 서백당이라는 훌륭한 종가를 지으면, 이를 본받아 이씨들은 향단과 독락당이라는 독창적인 종가를 완성했다. 서백당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고, 그에 덧붙여 그 집만의 독특한 특색을 가미한 주택이다. 손씨가에서 안락정이라는 정자를 지으면, 이씨가에서는 더 화려한 심수정이라는 정자을 지었다. 그러나 최고의 명문가들 답게 한가문의 건축이 다른 가문을 침해하고 위협하지 않는 규범을 잘 지키는 예의도 갖추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양동마을의 개별 건축물들은 가장 뛰어난 주택과 정자들로 가득하게 되었고, 마을 전체의 통일성과 다양성도 갖추게 되었다. 사실, 자연 경관은 하회마을이 대단하지만, 건축과 마을의 구성은 양동을 따라올 곳이 없다.
헤이리의 한집 한집이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작품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들이 서로 자신을 뽐내고 옆집과 도시의 공공 공간을 협박하는 폭력적 건축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분도 살고 도시라는 전체도 사는, 자족적이면서 유기적인 건축과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끝))

사진설명
1. 선암사의 길과 건축 : 마치 어떤 마을의 안길을 걷는 듯하다가 불전들이 등장한다.
2. 선암사 각황전 : 큰 승방에 둘러 싸인 작은 수도원 불전
3. 양동마을의 전경 : 초가집과 기와집, 작은 집과 큰 집들이 넓은 공동체를 형성한다.
4. 양동마을 향단 : 안대청에서 보면 푸른 하늘과 행랑채의 지붕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