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될 반찬이 바로 김치다. 채소를 구할 수 없는 한겨울에 귀중한 비타민을 공급해주는 유일한 음식이기도 한 김치는 밑반찬 뿐 아니라 김치찌개, 김치밥, 김치전 등 다양한 음식재료로 쓰이기도 하는 다목적 식품이다. 오죽하면 ‘김치라면’까지 나왔을까. 사시사철 배추가 나와 수시로 김치를 담을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십여년전만 해도 겨울이 다가오면 배추와 무를 한접 (100포기) 또는 그 이상 구해서 대대적인 김장을 하는 것이 최우선의 월동대책이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갖은 양념을 하여 정성스레 김장을 하고 나면, 그 다음은 저장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보통 11월초에 담겨진 김치들은 푸성귀가 나오는 이듬해 3월까지, 적어도 네달 이상을 보관해야 했다. 그것도 시어지지 않도록 가급적 원상태로 갈무리할 수 있어야 했다. 김치가 시어지는 발효현상은 온도 변화가 심할 때 더 활발히 일어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섭씨5도 정도의 온도가 변하지 않는 상태다. 대형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 바로 그런 곳은 땅속이었다.
햇빛이 잘 들지않는 응달의 땅 표면을 1m쯤 파고 내려가 큰 독을 묻고 김치를 저장한다. 그러나 거의 매끼마다 뚜껑을 열고 김치를 퍼내야하기 때문에 땅 위의 먼지나 흙이 들어갈 우려가 있다. 눈보라라도 치면 더욱 문제가 있다. 또 지표면에 가까운 윗부분이 얼게되는 문제도 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김장독이 묻혀있는 땅 위에 집을 만드는 수가 최고다. 상부에 집을 만들면 내부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고, 비바람도 막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물을 ‘김치광’ 또는 지방에 따라 ‘김치각(깡)’ ‘김치움’이라고도 부른다. 우선 위치를 잘 잡아야 한다. 들락거리기에 편하도록 부엌 뒤편에, 그리고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한다. 자주 드나들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충분히 큰 규모여야 했다. 따라서 임시 가설의 움이 아니라 정식의 구조가 설치된 집이어야 했다.
상부 구조물은 원추형 또는 군용 A자형텐트 모양이 된다. 원추형 김치광의 경우, 세 개의 뼈대 서까래를 세모뿔 처럼 맞대어 세운 다음, 거기에 작은 서까래들을 걸쳐 묶고 짚으로 엮은 이엉을 얹는다. 마치 작은 인디언 텐트 같아진다. 출입구는 찬바람이 부는 방향을 피해서 내며, 작을수록 좋기 보온에 좋기 때문에 밖에서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민 듯이 만들어진다. 이 낭만적인 김치광은 이제는 볼 수 없다. 김장독도 사라졌고, 김치 대용식들이 즐비하며, 무엇보다도 독을 묻을 땅 한평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