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건축을 전공한다고 하면 “우리 개집이라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종종 받았다. 아직도 사회에서는 건축가를 ‘집 만드는 기술자’로 취급한다. 물론 그런 건축가도 많다. 동네 미장원 아줌마같이 손님이 ‘원하는 대로’ 집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번화가 ‘헤어스튜디오’의 ‘스타일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창조해낸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에 자신의 해석대로 피어오르는 금속 구름모양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다. 스페인의 문화적 환경이나 바스크족의 전통과는 무관했다. 그러한 그는 최고의 현대예술가로 대접받는다.
개인적 욕심을 버리다
건축예술가는 남의 땅에 남의 돈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한다. 게다가 막대한 금액의 설계비까지 챙기니, 하나도 손해볼 게 없는 더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동네 건축가 아저씨든 우아한 건축예술가든, 집짓기를 주문한 집주인이나 땅주인에게 봉사하는 서비스맨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집주인이나 건축가 자신의 이익에 관심을 가질 뿐, 그 밖의 시민들의 이익에는 관심을 가질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파주출판도시와 헤이리 아트밸리를 설계한 건축가들은 그들 스스로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했고, 그 목표를 위해서는 각 건물주들에게 어떤 요구를 할 것인가 주문했다. 건축가라기보다 건축주의 역할에 가깝다. 그 다음은 수백개로 나눠진 땅 주인들의 이기심을 제어하고, 그 땅 위에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을 조절했다. “왜 내 땅 내 맘대로 못하게 하느냐?”는 땅 주인들의 불만과 “건방지게 나같이 위대한 건축가에게 간섭하느냐?”는 동료 건축가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 힘겨운 과정을 굳이 감수하는 이유는 바로 공동의 선과 이익을 위해서, 설득과 조절자의 임무를 자청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사회적 조정자’(Social Coordinator)가 된 것이다.
그래서 파주와 헤이리의 마스터플랜을 담당한 건축가들을 코디네이터라 부른다. 공동자산인 도시와 개인 소유물인 건물 사이의 갈등, 환경보존과 공간개발 사이의 대립, 옆집과 앞집 사이의 반목을 판정하고 조정하며, 때로는 규제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도하기도 한다.
사회적 조정자가 되려면 건축예술가로서 개인적 욕심은 버려야 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라는 렘 쿨하스가 프랑스 지방도시 릴의 활성화 계획을 맡았을 때, 그는 기본적인 마스터플랜과 문화회관 한 건물의 설계만 담당했다. 나머지 백화점·호텔·역 청사 등 돈 되고 탐나는 건물들의 설계권은 초청된 다른 건축가들에게 넘겨주었다. 심지어는 그의 강력한 라이벌인 쟝 누벨에게 중심지의 백화점 설계를 맡겼다. 렘 쿨하스가 계획한 보이지 않는 원칙 속에서, 여기에 모인 유럽 최고의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절제하면서 조화를 이루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의 전북 익산쯤 되는 이 작은 도시는 세계적 명소로 떠올랐다.
파주나 헤이리의 수많은 건물들은 코디네이터들이 추천한 30여명의 건축가 풀에게 맡겨졌다. 코디네이터들이 설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코디네이터 민현식·승효상·김영준·김준성·김종규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이다. 코디네이터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 헤이리 초기 계획단계에 한 대학 교수가 40여동 건물들의 설계를 혼자서 맡을 뻔한 적이 있다. 만약 그 과욕이 실현되었다면, 헤이리는 지금쯤 또 하나의 집합 전원 건축단지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대표적인 코디네이터 건축가로 정기용씨를 꼽는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가난한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의 건축분야 대표, 언론을 통한 사회적 비판 활동, 건축계 혁신운동의 주동자를 도맡는다. 모두 돈 안 되고 귀찮고 심지어 일신상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하는 역할들이다. 그래서 최근 그의 대표작은 전북 무주군에 펼쳐진 30여점의 작업들이다. 대단한 물량인 것 같지만 40평짜리 마을회관, 6평짜리 천문대, 공설운동장의 덮개, 재래시장 재계획 등 오히려 ‘돈을 쓰는’ 작품들이다. 인구 3만의 이 산골동네에서 그는 코디네이터 건축가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코디네이터 건축가는 누구인가? 도시와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계획자요,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을 추천하는 경영자이며, 공익을 위해 갈등을 조절하는 민간정부다. 무엇보다 사회적 역할을 자원하는 지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