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최대 궁궐이었던 창덕궁과 비원이 있고, 아직도 고색창연한 기와집들이 밀집된 종로구 가회동과 원서동 일대는 예전부터 ‘북촌’이라 불리던 서울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랜 유서깊은 곳이다. 그러나 이 일대는 덩치만 크고 무표정한 현대그룹 사옥을 비롯해 크게는 헌법재판소 등 위압적인 건물들이, 작게는 3-4층의 탐욕스런 다세대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가장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가장 강하게 간직하고 있던 이 작은 동네 하나 보존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 서울의 도시건축적 역량이라는 역설적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이 동네에 흔치않는 새 건물이 들어섰다. 현대사옥과 비원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인 공간사옥의 신관이다. 건축설계사무소 공간사의 사옥은 거대한 ‘현대’와 유서깊은 ‘비원’ 사이에서 25년된 옛사옥과, 작년에 완공된 신사옥,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옥외 마당으로 자리 잡았다. 구사옥 역시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20년전에 증축한 두 개의 건물이니, 이제 모두 3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콤플렉스라고 해야겠다. 얼핏 들으면 대단히 큰 회사의 사옥군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모두 합해야 채 150평이 안되는 매우 좁은 땅이며, 높아야 기껏 5층 밖에 되지 않는, 서울 도심에서는 난쟁이에 속하는 건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사옥은 한국의 현대건축사상 기념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이 작은 건축군은 서울에서 몇 안되는 보석들이다. 김수근은 60년대 자유센타와 워커힐 프로젝트로 이 나라의 선두 건축가가 된 이래, 70년대의 미술회관과 경동교회등 이른바 ‘붉은 벽돌집’을 서울에 유행시키면서 한시대를 구가한 대건축가였다. 그의 정력적인 건축활동이 바로 ‘검은 벽돌집’인 공간 구사옥을 무대로 이루어졌다. 85년 50대 중반의 한창 나이로 요절(?)한 뒤 공간사의 전통은 그의 후계자인 장세양에 의해 승계됐다. 장세양의 노력으로 공간사는 발전했고 규모도 확대되어 옆에 남은 50평 남짓한 땅에다 신사옥을 증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장세양 역시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급서하고 만다. 그가 죽은 후 1년만에 공간 신사옥이 완공됐으니, 장세양 최후의 유작이 되고만 셈이다.
공간 사옥은 말 그대로 ‘공간’ 밖에는 없다. 이 건물의 외부는 ‘형태’가 없다. 구사옥은 얇은 판벽 두 개를 세워놓은 것 같으며 외부로는 작은 세 개의 돌출창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건물 외벽 전부를 뒤덮은 아이비 덩굴에 파묻혀 전혀 형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일견 매우 단순해 보이는 구사옥의 내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이 건물이 보통 건물이었다면 4층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간 구사옥의 내부 바닥은 높이가 다른 14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순진하게 이 건물의 층수를 매긴다면 14층이라 해야할 것이다. 또 이 건물 내부의 방과 방 사이에는 문짝이 없다. 바닥과 천장의 높이가 변하면 ‘내부공간’이 생기고, 다양하게 변하는 내부공간 사이에는 문짝과 같은 인위적인 경계를 두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방과 방 사이는 낮은 벽돌벽이나 두세단의 계단, 아니면 꺽여진 모퉁이에 의해 구획되고 연결된다. 말 그대로 ‘공간’만이 있는 검은 벽돌집이다.
장세양은 스승인 김수근이 지어놓은 공간 구사옥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건물을 증축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안았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은 구사옥의 재료와 모양을 따라 검정 벽돌집으로 증축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가장 적다. 스승의 작품을 헤쳤다는 욕을 먹을 까닭도 없게된다. 그러나 구사옥은 70년대의 건축이며 김수근 자신의 어휘였다. 장세양을 포함한 공간사의 후예들은 새로운 건축, 그러면서도 공간의 정신을 구현한 해결책이 필요했고, 신사옥에 유감없이 발현됐다.
신사옥은 무색 투명한 ‘유리상자’다. 투명하기 때문에 조작된 형태가 없고, 구사옥과 비원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는다. 너무나 위대한 두 건축물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존재를 무화시키는 것이 정당한 해결이라 믿었다. 신사옥 역시 ‘형태’는 없고 ‘공간’만 살아있는 건축이 됐다. 내부는 고스란히 사무공간으로 쓰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사옥의 ‘공간’과는 다른 개념의 ‘공간’이다. 구사옥이 폐쇄적이며 육중하고 아늑하다면, 신사옥은 개방적이며 가볍고 눈부시게 밝다. 구사옥이 종교적이고 수공예적인 공간이라면, 신사옥은 일상적이고 하이테크적인 공간이다.
옛집과 새집 사이는 이처럼 대조적이고 극단적인 면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집은 서로 상통하는 정신과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도시와 환경에 대한 배려, 그리고 ‘공간’만으로 구현되는 건축. 이 두 집 사이에는 재료와 형태가 빚는 극단적인 대비보다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는 건축적 정신의 계승이 더욱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두 집은 다르면서도 같다. 스승과 제자, 옛 것과 새 것 사이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와도 같이.
김 봉 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