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기에서 곱하기로
문과와 이과를 엄격하게 구분했던 시절, 2년 동안 고등학교 이과에서 공부하고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공학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학위의 내용과 연구 분야는 종교 사상과 건축 역사였으니 지극히 인문학적 분야였다. 20년 넘게 예술종합학교의 교수이며 총장이 되었으니 이제는 예술계 인사로 분류된다. 필자의 이력이다. 얼핏 보면 공학과 인문학, 예술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인간인 것 같지만, 실상은 어느 한 분야에도 정통하지 못한 경계인이기도 하다.
문과, 이과, 예체능계열로 나누고, 다시 음미대로 나누고, 또 회화와 조각, 한국화와 서양화로… 나누고 또 나누는 데 익숙한 우리 아카데미즘의 체계 때문에 필자와 같이 애매한 경계의 분야는 적지 않게 손해를 봤다. 예컨대 연구비. 인문학 코리아도, 노벨상 프로젝트에도, 첨단 기술 개발지원금도, 심지어 예술 창작 기금도 받을 수 없다. 몇 년 전 ‘옛절에서 만나는 건축과 역사’라는 저서를 출간했는데, 서점에 따라 건축공학, 인문학, 여행서, 심지어 수필로 분류되어 제각기 꽂혀있었다. 이쯤 되니 고등학교 때 목메어 외웠던 화학 주기율표나 대학 공업수학의 함수론 등을 응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오히려 개인적 흥미로 읽었던 예술론이나 역사책들이 전공과 생활에 더 도움을 준다. 대학 이후에 전공은 교양이 되었고, 교양이 전공이 된 꼴이다.
현재의 직장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부임해서 그러한 전도된 경험과 삶은 더욱 커졌다. 전국의 모든 건축과가 공과대학에 소속된 현실에서 유일하게 미술원(대학)에 속한 건축과는 과연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새로 학과를 설립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기에도 벅찼는데, 다른 분야의 교수들과 부딪히고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었다. 논리적인 룰이나 제도화된 행동보다, 감성적인 판단과 돌출적인 아이디어를 우선하는 분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입시제도는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목적인데, 그 ‘우수하다’는 기준이 서로 달랐다. 고교 성적이나 수학능력을 우선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일부 교수들은 그런 제도적 기준은 모두 무시하고 ‘끼’있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독창적인 예술가로 키우자는 주장이었다. 커리큘럼, 강의시수, 졸업자격 등 거의 모든 교육제도에서 일반 대학은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 많았고, 많은 부분을 수용했다. 대학 제도의 틀에 익숙했던 내 우려와는 달리, 20여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성공에 가까웠다.
나누어진 분과가 뚜렷하지 못한 내 배경이 한예종에 오히려 적합한 것 같았다. 교수 대부분이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고, 모두 130여명의 비교적 적은 집단이어서 예술가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교류가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자처하는 전문가들이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지극히 높았고, 그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특징이 있었다. 부임 후 줄곧 학교 보직을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공대를 나왔으니 그래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는 이상한 선입견 때문이었다. 나 자신도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곱하기에 익숙해갔다.
용감한 학생들
한예종의 입시제도는 독특하다. 수능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학과별로 본고사를 치른다. 그것도 2차례에 걸쳐, 필기와 실기 시험은 물론이고, 심층면접과 공개 오디션을 본다. 일부 학과는 4일에 걸쳐 워크샵을 열어 그 과정을 평가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드는 제도이다. 무엇보다 이 까다로운 제도를 마다않고 응시할 지원자들이 있을까, 시행 초기에 우려도 높았다. 그래도 평균 15: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용감한 청소년들이 많다.
학생들의 배경은 정말 다양하다. 예술 중고교를 다녀 일찍부터 잘 훈려된 학생들도 있지만, 오히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취미로 미술이나 음악을 했던 학생들의 비율이 더 높다. 입학 후 더욱 빛을 발하는 학생들은 주로 다른 진로를 갔다가 뒤늦게 입학한 이들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영화 전공에 뛰어든 학생, 유수 대학의 대학원까지 나와 건축과에 신입생으로 들어온 학생, 심지어 삼성전자 등 직장에 다니다 입학한 사회인까지. 영재입학제도가 있어서 15세에 입학한 앳된 발레리나부터 30대 중반의 아저씨까지 연령층도 정말 다양하다. 그래도 서로 동기라고 아끼고 학창생활을 하는 이들을 보면 신기한 집단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도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배워나간다. 학교 안에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작은 사회가 있고, 학생들은 학창 시절에 이미 축소된 사회를 경험한다.
개교 당시에 통합적인 학과를 만들고 융합교과를 구성하려 했다. 예를 들어, 일반 미대는 회화과, 조각과, 공예과 등으로 세분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추구하지만, 이 모든 장르를 조형과라는 한 그릇에 담았다. 반면 어떤 장르는 단과대학 수준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일반 예술대의 무용과나 무용전공으로 있던 것을 무용원으로 독립하여 실기, 창작, 이론으로 나누었다. 배우를 양성하는 연기과는 연극원에 있고, 감독을 만드는 영화과는 영상원에 있다. 영상원 학생이 영화를 제작하면 연극원 학생들이 배우로 참여하고, 미술원 학생들이 스텝이 된다. 학생들의 참여는 모두 학점으로 인정한다. 학창시절이란 물론 자신의 전공을 학습하고 연마하는 기간이지만, 협업과 분업을 통해 타 분야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회적 경험 또한 중요한 성과이다.
학생들의 최대 고민은 역시 취업과 진로이다. 취업률이 대학 평가의 최우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립 예술가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이유도,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국정감사 –국립대학이기에 국회에 출석하여 증인이 되는 연례행사-에서 한 의원이 한예종의 낮은 취업률 (52%정도) 대책을 질의했는데, 예술학교는 취업하지 않는 독립 예술가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란 답변을 한 적이 있다. 자칫하면 괘씸죄에 걸릴 답변이었는데, 그 의원이 잘 이해해줘서 다행이었다.
졸업생들의 진로는 유형화가 어려울 정도로 제각각이다. 건축과만 예를 들자. A는 어려서 익힌 영어 구사 능력이 탁월했다. 여러 직장을 경험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다양한 체험을 했다. 현재는 국내외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나 발표회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일을 한다. 학창시절의 교류와 졸업 후 방황(?)에서 맺어진 인맥이 큰 자산이다. B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대학원까지 마치더니 서울 변두리에서 작은 사무소를 열었다. 이름하여 ‘모든 디자인 사무소’. 건축 설계 뿐 아니라 인쇄물 디자인, 그릇 등 소품디자인까지 마다 않는다. 특히 주말에는 동네 모임이나 활동에 사무실을 빌려주어, 주민들도 돕고 운영비를 충당하는 묘수까지 부린다. 물론 C나 D와 같이 유럽과 미국의 대학원에 진학하여 스펙을 쌓고 타 대학의 교수가 되거나 이름난 건축가가 된 정형화된 사례도 있다.
재능이냐 노력이냐
예술 교육의 핵심적인 목표는 창의성이다. 현대 예술은 숙련된 장인이 아니라 브랜드화 된 창작자를 요구한다. 한예종의 모든 전공 역시 창의성을 개발하고 개별화된 창작을 목표로 삼는다. 남과 달라야 살아남는다. 창의성이란 예술가로서의 성공, 예술적 성취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가에 달려있다. 학생들 역시 자신이 선택한 길이 맞는 것인가, 그리고 과연 예술적 재능이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앞선다. 교수들 또한, 창의성이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학습과 훈련에 의해 개발되는 것인지 의견이 엇갈린다.
물론 대부분은 창의성과 재능이 후천적 환경과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 믿음의 학술적 배경에는 20세기 후반 주류 교육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특수 영역에 재능을 가진 자가 그 영역에 종사할 때 창의성을 극대화하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서 음악 영재는 과학 연구나 회사 경영에는 재능이 희박하며, 음악분야에서 발굴하여 잘 교육을 시켜야 성공한다는 연구 결과이다. 또한 존 헤이스는 창의적 업적을 남긴 고전 작곡가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이 명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시기는 적어도 10년 이상을 작곡활동에 몰두한 이후였다고 증거를 제시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격언을 믿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 학설을 충격적으로 뒤집는다. 잭 햄브릭 교수의 연구팀은 여러 연구를 통해, 예술 분야에서 실력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높아야 2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재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노력은 낭비라고 경고한다. 하루 3시간씩 10년, 총 1만 시간을 전공에 투자하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된다는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학설이다. 살리에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모차르트는 넘사벽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었던 역사적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어느 학설에 따르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타고난 천재라도 학습과 노력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추사 김정희는 젊은 시절 그저 재주 있는 신동에 불과했지만, 그의 고백대로 벼루 열 개에 밑창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든 끝에 추사체를 완성하고 대가가 되었다. 우리 학교의 교수들이 연습에 지친 제자들에게 이르는 격언이 있다.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알고, 삼일 안하면 선생이 알고, 일주일 안하면 관객이 알고, 한 달 안하면 세상이 안다.” 재능이 뛰어나든 모자라든, 노력이 없으면 성취도 창의성도 없다.
높아지는 벽들
한예종은 국내 예술교육으로 세계적 수준의 예술가를 양성하자는 국가적 목표로 설립된 국립대학이다. 그래서 개교 초기에는 예술계의 KAIST나, 예술계의 태능선수촌, 또는 예술사관학교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제 한 해 200여명의 학생들이 국제 콩쿨에 입상하고, 예술 전 분야에 우수한 인적 자원들을 배출했다. 국내외 관현악단이나 무용단은 물론, 영화계나 연극계도 한예종 졸업생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다.
이러한 성취는 각 전공이 혹독할 정도의 교육을 통해 달성된 부분이 크다. 그러나 성취 지향적 몰입의 결과, 각 전공은 각자의 깊은 우물을 파고 들어가 서로 통하지 않는 동굴들에 갇혀버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일정 부분 도제식 교육의 구조를 갖는 한예종의 특성상, 지도교수는 제자들을 자식같이 여기며 소유하게 되고, 제자들은 스승을 상사로 모시는 봉건적 조직의 폐해도 나타난다. 동굴의 내부에서는 이러한 교육제도와 사제관계가 오늘의 성취를 이룬 동력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초기 목표인 국가 대표급 전문예술인 양성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예술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경쟁적인 높이가 아니라, 절대적 깨달음이라는 깊이에 있다. 그 깊이와 창의성이 더해져 작품을 만들고 사회는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수용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 그 가운데 작품은 고전이 되고 예술의 전거가 되는 선순환 과정을 형성한다. 이제는 학교의 미션을 “내일의 고전을 창작하는 산실”로 차원을 바꾸자는 논의가 대두했다. 다시 말해서 교육 중심에서 창작 중심으로 목표는 한 차원 높이자는 주장이다. 예술의 근원인 창작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창작을 작품으로만 생각한다면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베토벤이 작곡한 소나타는 창작이고,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은 재현인가? 이리 본다면 작곡과 안무를 제외한 모든 음악과 무용은 창작이 아니라 재현 기술에 불과하다. 한때, 이러한 이분법으로 인해 학내 구성원 간의 심각한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재해석을 동반하는 모든 연주는 창작이며 작품이다. 그렇다면 어떤 창작이든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시대에 맞지 않는 진부한 창작도 있으며, 그렇고 그런 평범한 창작도 부지기수다. 시대를 읽고 독창적이며 새로운 창작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여러 장르와 영역을 넘나드는 이른바 융합 작업을 통해 그러한 창작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미술과 음악이 만나는 장르 간의 융합, 예술과 인문학이, 예술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영역 간의 융합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예기치 못한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 예술은 깊이 뿐 아니라 넓이도 필요하게 된다.
장르간의 전공간의 벽을 허물지 않으면 새로운 창작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말이 쉽지, 각 파트의 대가를 자처하는 교수들은 벽을 더 높게 쌓으려한다.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결과도 보장 안 되는 새로운 시도가 뭐 필요 있어?” 하는 매너리즘을 타파해야 한다. 학생들은 잘 섞이고 협업하고 융합하는데, 교수들의 영토주의가 오히려 창작과 창의성 교육의 장애물이 되기 쉽다. 나누기의 셈법을 다시 버리고 곱하기로 돌아와야 한다.
높은 산에 올라 다 왔다 싶으면, 늘 그 뒤에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 산에 올라 뒤돌아 아래 경치를 쳐다보며 자족할까, 아니면 더 앞에 버티고 있는 더 높은 산을 바라보며 새롭게 도전할 것인가? 한예종의 흐뭇한 성취와 높아지는 벽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장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