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쌓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군사용 성곽이나 궁궐의 담과 같이 담안에 있는 시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이런 담은 외적이나 도둑을 막을 수 있도록 튼튼하고 높이 쌓아야 한다. 보통 살림집에서는 소유자나 이용자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담을 만들었다. 나뭇가지 따위를 엮어 만든 엉성한 담을 ‘울, 울타리’라 부르는데, 이 정도는 마음먹기 따라 얼마든지 뛰어넘거나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울타리는 단지 “여기는 내 땅이라는 걸 알고 들어오시오”라는 표시에 불과하다. 이 때 담은 높을 필요도 튼튼할 필요도 없다. 그저 경계만 표시하면 될 뿐이다. 농업생산력이 늘어서 중소지주 집들에도 재물이 쌓이기 시작한 조선시대 말이 되면 일반 살림집의 담도 높아지고 튼튼해진다. 나라 형편이 어지러워져 창궐한 도적떼 또는 의병들의 일차 공격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의 재산과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이 쌓았다. 높은 담은 잘사는 집의 상징이었다.
아직도 시골 마을에 가면 나지막한 담에 둘러싸인 농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 집안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제자리 뛰기 한번만 해도 넘겨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이런 담들은 영역의 표시 외에도 바깥의 시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너무 높게 쌓으면 집안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가 없다. 바깥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내다볼 수 있는 높이. 바로 그런 높이는 사람 키보다 한뼘 정도 위면 충분하다. 한국 집의 아름다움은 불필요한 부분이나 크기를 갖지 않는 절제성에 있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적당한 높이와 크기로 만들어진 집 – 이런 살림 공간을 이른바 인간적 스케일의 공간이라 부르며, 모든 건축이 추구하는 이상인 것이다.
경복궁의 자경전은 순조의 부인인 조대비의 거처용으로 지은 건물이다.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후원자였으며 조대비 덕분에 고종이 즉위할 수 있었으니,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가장 정성을 들인 곳이 자경전 일대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권부의 처소에도 담장은 역시 나즈막하다. 국가 최고의 왕족이든 산골의 범부이든 간에 필요한 만큼의 구조물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대신, 자경전의 담장은 매우 정성스레 꾸며졌다. 담장 전체에 장수와 수복을 비는 기하학적 문양을 깔았다. 주황색 전벽돌로 쌓은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만이 아니라, 문양 자체가 담장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적 효과를 고려해 설계된 것이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구조적 안전함을 동시에 추구한 놀랄만한 솜씨다. 정교한 문양들 사이에는 점토로 구운 화초모양들을 삽입해 두었다. 매화, 하늘 복숭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붙인 위에 여백을 흰 회칠로 마감하여 마치 8폭의 병풍을 보는 느낌이다. 자경전은 궁궐 최고의 여성구역이다. 최고 어른인 조대비 뿐 아니라, 수많은 상궁들과 궁녀들이 기거하던 이 구역은 담장부터 아름다움과 여성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자경전 뒷담은 더욱 경탄스럽다. 담장 가운데 돌출된 벽면에 임금을 상징하는 용과, 신하인 학들이 주인공이 되어 십장생의 낙원 안에서 소요하고 있는 형상을 조각해 두었다. 이제는 장식의 차원을 넘어선 상징과 의미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벽면은 자경전의 온돌을 덥히기 위한 굴뚝이다. 벽면 위를 보면 10개의 집모양의 검은 구조물이 놓여있다. 이들은 모두 10개의 아궁이에 연결된 굴뚝들이다. 가장 소홀히 다루기 쉬운 설비시설까지도 훌륭한 예술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치밀한 솜씨와 아름다움은 접어 두고라도,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실용적인 예술정신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