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불쑥 정기용 선생의 끌림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무주에 내려간 적이 있다. 무주가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것은 그만큼 산골이라는 것을 입증이나 하려는 듯, 굽루거리는 산길의 연속이었다. 도착한 곳은 무주읍도 아니고 진도리라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스무 집이나 남아있을까, 산수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젊음은 이미 떠나버려 쇠락해가는, 흔히 볼 수 있는 한반도의 농촌마을이었다. 이 마을 입구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른바 디자인된 2층 건물이 꼴을 갖춰가고 있었다. 바로 건축가 정기용이 설계한 진도리 마을회관. 무주에서의 첫 프로젝트였다. 당시 정선생은 흙건축의 가능성에 심취했을 때였고, 마을회관 역시 흙건축의 귀중한 실험작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후 그가 무주에 쏟아 부을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좌절과 성취의 시작이었다.
정기용은 건축적 의미로만 보기 드문 지식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중한 부분을 채워 주고 있는 사회적 의미의 지식인이다. 프랑스에서 갈고 닦은 화려한 이력과 인맥만 활용해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출세가도를 달렸을 그였지만, 그는 늘 가난하고 허기지다. 건축과 사회적 불의를 비판하며 바른 사회를 실현하는데 온갖 노력을 쏟으니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공부한 건축가도 없지만, 늘 새로운 지식과 영역을 탐구하니 허기질 수밖에 없다. 무주에 집착하는 건축가 정기용의 모습에서 그만이 가능한 지식인으로서 참여와 발언을 듣는다.
학생들을 함께 가르치면서 그는 무건축촌 이야기를 종종한다. 어느 건축가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래서 건축적으로 소외되고 형편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나라에 수없이 많이 버려져 있는 군단위, 면단위 지방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훈련된 학생들을 군대 대신 무건축촌에 보내서 의무적으로 건축적 봉사를 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현 불가능한 낭만적인 주장이지만, 몸소 무건축촌 봉사를 실현하고 있는 그로써는 충분히 가능한 대안이 된다.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는 그가 믿고 있는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 실현이다.
그러나 무주 프로젝트는 지식인 정기용의 일방적인 봉사활동은 아니다. 경제적 육체적 희생을 제외한다면, 무주에 펼쳐진 10여 개의 프로젝트들은 건축가로서 만나기 어려운 행운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는 건축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를 레벨업 시키는 동시에, 그가 가진 건축에 대한 신념을 실험하고 개척하는 중이다.
무건축촌의 선교사와 같이 희생정신의 화신과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는 대단히 큰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련의 무주 프로젝트는 작은 규모의 개별 건축을 통해 광대한 지역을 개조하려는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그가 택한 전략은 요소요소에 건축적 거점을 마련하여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생활의 질을 바꾸려고 한다. 면사무소를 실질적인 면민의 집으로 개조하여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한다. 그리하여 늘상 말하듯 떠나가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모해 보이는 이 전략이 지역민이나 관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의 건축은 항상 현실적인 리얼리티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첨단 이론에 익숙해 있는 그이지만, 현학적 수사나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배재하고 늘 사용자의 편에서 건축적 개념을 전개한다. 무주의 모든 건축은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궁리하는데서 출발하고 있다. 면민의 집에 미용실과 목욕탕을 만들고, 공설운동장에는 그늘을 만든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외지인이 찾지 않는 동네에 천문대를 설치하는 건 엉뚱하기까지 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투명한 밤하늘을 가진 무주에 별관찰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이다. 그래서 단 몇십명의 외지인이라도 그 동네에서 자고 간다면, 그것이 바로 마을의 활성화일 것이고, 실제로 그의 제안은 맞아 떨어지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건축가의 소극적 구각을 벗어버리고 생활을 디자인하는 적극적인 건축지식인의 참모습이다.
무주가 가진 건축적 매력은 아름다운 산과 물이 엮어내는 자연이요 땅이다. 땅의 형상에서 건축적 리얼리티를 찾으려는 건축가들은 많지만, 실제로 땅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그 잠재력을 현실화시키기는 쉽지 않다. 정기용이 발견한 무주 땅의 잠재력은 바로 풍경으로서의 자연이다. 안성면민의 집은 마을의 구조를 연장시켜 건축의 어프로치로 삼았고, 덕유산의 풍경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했다. 농업인회관에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세워 무주농민들에게 자신들의 땅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려 한다. 서창향토박물관에 이르면 땅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극치에 이른다. 경사를 이용한 순환적 구성도 그러하지만, 내부의 전시 프로그램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향토박물관의 전시물은 농기구나 민속용품이 아니라, 무주의 지형이며 모든 자원이며 생산물들이다. 무주군민 2만여 명의 얼굴사진을 벽면 가득히 전시하려는 계획에 이르면, 산과 물 뿐 아니라 사람마저 땅의 일부로 생각하는 그의 깊은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계획대로 충실한 전시가 이루어진다면, 이 박물관은 무주민들은 누구이고 어디에 살고 있는가? 라는 자의식을 일깨우고 자랑하는 진정한 향토박물관이 될 것이다.
그의 진지한 생각을 이해하고 희생적인 노력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래도 남는 의문이 있다. 과연 건축적 노력으로 사회 변화가 가능할 것인가? 이미 농촌사회가 몰락해버린 거대한 현실적 질곡에서 몇몇 개인의, 그것도 어쩌면 낭만적인 의지와 전략만으로 귀농사회가 도래할 수 있는가? 건축물의 형상 뿐 아니라 내용적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그 운영방법까지 제안한다고 해도, 결국 경제적 소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건축은 건축으로 끝나는게 아닌가. 그러나 그 의문들에 부정적인 답이 나타난다 해도, 끝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와 같이, 건축가 정기용의 시도와 희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단 한명의 이농자를 무주로 되돌릴 수만 있어도 얼마나 건축의 힘은 위대한가. 능력있는 건축가들이 한 고장씩만 맡아 정기용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얼마나 우리 사회는 살 맛 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