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강에 3개의 인공섬을 띄우고 다목적홀과 카페 등 휴식 문화시설을 만든다는 소울 플로라 (Soul Flora) 계획이 실현 중이다. 청계천 복원으로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얻었던 서울시가 그 범위를 한강으로 확대해 벌인 ‘한강 르네상스’의 야심찬 계획의 결정판이다.
서울 강남의 모 대형교회가 서초역에 새로운 초대형 교회 건물을 신축 중이다. 매주 45,000명이 출석하는 공간적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총 2,100억원을 들여 새 성전을 지어, 해당 교회의 공간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지역 사회와 한국 교회에 공헌할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공공적 대형 프로젝트 또는 기존의 관념을 깨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건축물 신축에는 늘 사회적 논란이 따른다. 한강의 인공섬에 대해서는 참신한 볼거리와 체험 장소라는 찬사가 있는가 하면,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인공적 쇼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이 있다. 서초역 교회에 대한 논란은 그 비판의 정도가 더 심하다. 대형 성전은 외부의 특혜 일절 없이 자발적 모금과 노력만으로 이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해당 교회의 주장은 변명으로 치부되고, 특정교회의 대형화와 과도한 건축예산의 사회 환원 등 범사회적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더 나아가, 새해 벽두부터 국가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세종시 문제, 현 정권의 취임시부터 논란을 빚어 온 대운하 또는 4대강 살리기 등 국가 프로젝트에 이르면 그 논란과 갈등의 도는 더욱 심각하다.
건축 건설을 둘러싼 논란의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차치하고, 신기한 것은 그 어느 논란 속에서도 건축계의 목소리는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책 결정 단계의 정치적 판단은 건축의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변명은 건축의 탈 정치적 전문성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종 결과물로 나타날 건축적 내용까지도 일절 함구한다면 건축계 스스로 그 전문성을 포기하는 행위일 것이다.
한강의 인공섬과 서초역의 대형 교회는 모두 현상설계를 통해 공모된 당선작들이다. 제한적으로나마 이미 그 설계안의 개념과 구체적 모습들을 발표했고, 관심만 있다면 언제든지 소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인공섬에 세워질 구조물들은 피어나는 꽃봉오리들을 형상화했다고 하고, 서초역 교회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는 형상을 닮았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 당선하기 위해서 있을 수 있는 홍보 전략이며 언어적 의미 부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건축의 언어화, 상징화 전략이 현상설계 과정에서만 그치지 않고 시공과 완공 이후 사용 과정까지 확대 증폭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인공섬 프로젝트 이름은 아예 ‘서울 꽃 (Soul Flora)’이며, 서초역 교회의 몸통에는 HEART라는 슬로건용 문자를 새겨 넣을 것이라 한다. 이러한 상징화 작업을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건축의 다양한 효용과 가치 가운데 ‘집단적 동일화’라는 정치적 효용성만 강조할 뿐,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 도시 풍경의 사유화 등 더 중대한 문제들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 건축을 단순한 상형문자로 치환하여 수 천 년간 인류가 건축을 통해 이룩해 온 추상화 정신화의 가치를 부정하고 역행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2. 지난 연말 중국을 방문했다. 허난성 안양시의 중국문자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었고 우선 베이징을 경유해야 했다. 베이징에서는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세계문자박람회’를 견학하는 정도였다. 컨벤션센터는 다행히도 올림픽시설지구 안에 있어, 주경기장과 수영장 등 베이징 올림픽 시설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주경기장의 새로운 구조디자인, 수영장의 획기적인 소재와 형태, 프레스센터의 단순 반복적 형태…… 그러나 이러한 건축적 해석은 쉴 사이 없이 쏟아내는 관료적 해설 때문에 개입할 자리를 잃는다. 주경기장은 새의 둥지를 형상화했으며, 수영장은 물거품과 비누방울을 상징하는 것이고, 프레스센터는 책꽂이를 재현한 것이다… 이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대중적 해설이지만, 곧 이어 “둥근 형태의 주경기장과 사각형 상자 모양의 수영장을 붙여 놓은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天圓地方)는 중국적 우주관을 상징한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역시 중국적인 언술이다.
안양시는 베이징에서 500km 떨어져 자동차로 6시간 (실제로는 10시간) 밖에 걸리지 않으니 -중국적 스케일에서는 –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사실 안양이라는 도시는 처음 들어본 곳이다. 왜 하필 이 생소한 도시에 세계 최초의 문자박물관이 생겼을까? 또 과연 문자를 주제로 어떤 박물관을 만들 수 있을까? 이곳이 바로 고대 상나라의 수도였고, 그 유명한 은허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한자의 시조인 갑골문의 출토지라는 상식은 여행 초반에서야 얻을 수 있었다.
여행 이전에 미리 구글에서 안양시의 항공사진을 찾아보았다. 여느 중국도시와 마찬가지로 격자형 가로 패턴에 사각형 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매우 특이한 형상의 구조물 두 개가 눈에 띤다. 사각형 안에 원형이 들어간 대형 건물 하나, 그 건너편에 태극모양으로 만든 연못 하나. “사각형 속의 원형이 바로 문자박물관일 것이다. 그리고 예의 ‘천원지방’ 설명을 붙일 것이다. 또한 태극형 연못의 이름은 ‘태극지’ 또는 ‘음양지’일 것이다.” 항공사진만 보고 추측한 결론은 아쉽게도 틀림이 없었다.
사각형 매스의 중앙에 원형 돔을 얹어 로비를 만들면 그 사방에 4개의 전시실을 얻게 된다. 내부 구성까지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구성이고, 이미 상하이의 국립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었던 너무나 중국적인 구성이었다. 태극형 연못의 이름은 ‘음양지’였고, 이러한 형태는 LA수목원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 중국 정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편화된 상징이다.
한자의 출발이라는 갑골문은 주변 사물의 모양을 특징화한 형상 -상형문자-에서 시작했다. 원초적인 상형들은 직선화 기호화하여 지금의 한자로 변화했다. 방사형 햇살의 모습은 ‘日’, 초생달의 모양은 ‘月’, 흐르는 물의 여울 모습은 ‘川’을 거쳐서 ‘水’가 되었다. 갑골문 이후로 발전한 한자는 독특한 문자 체계를 이루었지만, 초기의 갑골문은 발생론적으로 보편적인 기호에 불과했다. 고대 지중해의 크레타 문명은 상형문자와 표음문자의 두 계열을 다 사용했는데, 상형문자 계열 중에 중국의 갑골문과 유사한 문자들이 많다. 한 예로 ‘羊’은 크레타와 중국의 문자가 아예 같다. 양을 정면에서 관찰하여 두 뿔과 두 눈, 코와 입을 상형화하면 당연히 같은 도형이 되기 때문이다.
3. 함께 중국을 방문한 이들은 나를 포함하여 ‘한글문화관 추진위원회’ 멤버들이었다. 작년 한글날을 계기로 정부에서는 한글 창제의 의미를 되새기고 한글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한글문화관(가칭)’을 설립한다고 공표했다. 추진위원들은 대부분 한글학을 포함한 인문사회 분야의 원로학자들이고, 설립 실무를 위해 공무원, 언론계, 디자인계, 건축계 인사들로 구성했다. 이분들의 한글 사랑과 설립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여 회의 분위기는 종종 독립군 결사회의와도 같았다.
어떤 분들은 이미 한글문화관에 대한 전시 내용은 물론, 건축의 형태와 공간까지도 규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글문화관은 필히 세종 창제 당시의 한옥의 형태를 갖추어야한다” 든지, “한글의 자모 형태를 이용하여 건물을 구성하자” 든지, 아예 “하늘에서 보았을 때 ‘한글’이라고 읽히게 하자” 등등…… 순수한 열정을 이해는 하지만,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구할 때 어떻게 코멘트 해야 할이지 무척 난감이다. 고심 끝에 이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비유를 동원하기로 했다.
갑골문의 전통을 이어받은 한자는 여전히 상형문자의 성격이 다분하며 완성형 글자이다. 상형문자는 앞 서 크레타 옛 문자와 같이 세계적 공통성을 가지며, 완성형 글자는 디지털 시대에 극히 불리한 문자 체계이다. 반면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발음기관을 기호화한 추상적이며, 24개의 자모만을 조합하여 무한한 문자를 생성할 수 있는 조합형 문자이다. 추진위원 누구나 동의하는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이다.
건축은 어떤 체계의 장르인가? 미술과 문학은 사물이나 사건을 묘사할 수 있는 재현예술의 범주에 들어간다. 반면 음악과 건축은 무엇도 재현하고 묘사하기 어려운, 기본적으로 비재현예술이며 추상예술이다. 물론 표제음악이라 하여 무언가 묘사하는 음악도 있지만 너무나 특별한 시도였고 실패한 음악이었다.
표제건축이랄까, 무언가를 묘사하고 재현하는 건물도 있을 수는 있다. 중세유럽 궁전의 겉모습만 닮은 웨딩홀, 오리 모양을 한 유치원, 커다란 핫도그 모양의 스넥 판매소…… 이런 예들이 직설적인 기능적 사물의 재현이라면, 일본의 ‘日’자로 구성된 옛 조선총독부, 예의 ‘천원지방’ 운운한 안양시 문자박물관, 태극 모양의 ‘음양지’ 등은 상징화된 재현이다. 이런 건축은 기본적으로 ‘상형문자적 건축’이다. 위대한 한글문화관을 이처럼 상형문자와 같이 만들 것인가? 한글 애호자들에게는 옴짝달싹 못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논리였다.
4. 장황하게 쓴 까닭을 대략 눈치 차리셨을 것이다. 어디 한글문화관에만 해당될 말인가? 우연히도 한글문화관 추진에 관여하면서, 건축의 추상성과 조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건축이 무엇인가를 직설적으로 연상시키고 재현한다면, 그것은 건축을 정치와 선전의 도구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사용자의 편의, 구조적 도전, 새로운 공간의 실험, 공공성의 실현, 환경의 보존과 지속성, 역사적 맥락의 참조….등 수많은 소중한 가치들을 방기하고 은폐할 위험이 다분하다.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무수히 볼 수 있는 폐해들이다. 새둥지와 비누거품을 닮은 경기장, 걸핏하면 음양과 중국적 우주관에 기대버리는 식상하고 유치한 공공건축들. 방콕이나 상하이는 단순 박스형의 오피스빌딩은 허가를 내주지 않아 모두가 특색을 가진 다른 형태들의 고층건물이 즐비하다. 코끼리 빌딩도 있고 고래 컨벤션도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만을 비웃을 일은 아니다. 서울 한복판에 선 우체국 건물은 하늘을 향해 다리를 벌인 것도 같고 바지를 내리고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우스개로 붙은 별명이 ‘쩍벌남 빌딩’또는 ‘지퍼 빌딩’이다. 심지어 한옥 붐을 타고 일각에서 부활하는 기와지붕 공공건물도 왜곡된 민족주의와 유행의 상형문자일 수도 있다.
한글 창제의 정신은 세종이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 잘 나온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는 바로 차이(difference)의 정신이다. “백성들이 말하고 싶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니…”에서는 소통(communication)의 가치를 목적으로 한다. “내가 이를 매우 딱하게 여기어…”는 백성들에 대한 공공적 연민 (public sympathy)을, “사람마다 쉽게 익히어 나날의 소용에 편리하도록 함이라”는 편리한 기능성 (utility)을 의미한다. 한글 창제의 정신은 다시 이 시대 건축이 추구해야할 보편적 가치가 아닐까? 편리함, 공공성, 소통, 그리고 창조적 차이.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한글이라는 보물만 남겨준 것이 아니라, 혼돈과 왜곡의 건축이 늘 다시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잣대를 소중한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