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사의 효능
건축역사는 무엇에 필요한가? 왜 공부하여야 하는가? 역사의 효능은 각자의 가치관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1) “건축사”가 있기 때문에
2) 단순히 과거를 알기 위해서. 역사 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다. 비교적 가치 중립적이며, 비작동적 (non-operative)이며, 사실의 고증과 설명을 중요시한다. 흔히 고고학과 구별할 수 없지만, 고고학적 상상력마저 제거된다면 죽은 역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이 기초 작업이 없는 온갖 해석은 매우 허구적이고 자의적인 추론에 불과하다. 그것은 왜곡이며 선동이다.
3) 실제 생산에 이론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설계의 기준, 시공 기술의 전수 등 모든 건축 과정에 적용된다. 예컨데, 고전주의 건축의 비례 – 균제 등 의장적 도구를 건축의 기준으로 삼는다든가, 한국건축의 형태적 공간적 전통을 계승하려는 노력들이다. 역사주의의 함정이 다분히 도사리고 있으며, 역사는 틀로서 이해되기 보다는 매우 선택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19세기 신고전주의들의 혼란과 한국근대의 전통 논의에서 보듯이 도구는 도구일 뿐 본질이 되지 못한다.
4) 실천을 위한 지적 훈련으로서. 건축가들은 항상 자신의 건축을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선택을 강요 받는다. 선택의 기준은 흔히 철학과 역사에서 동원되며, 역사는 과거 사실의 창고라기 보다는, 지적 훈련을 받는 학교이다. 인습적 건축과 새로운 건축이 충돌을 일으킬 때, 또 집단의 문화적 전통과 개인의 창작 의지가 상반될 때 건축가는 심각한 위기에 빠진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독창적 이론이 확립되어야 하고, 그 이론의 근거를 역사에서 찾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역사적 훈련을 통하여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해답을 구해야 한다.
2. 역사-이론-실천의 관계
이론이 없는 실천이란 우연에 불과하다. 실천이란 설계, 비평, 시공, 교육, 이용, 보존 등 건축 행위 전반을 포괄한다. 의학에 비유한다면, 임상 치료는 실천이며, 병리학 생리학 등 기초의학은 이론이다. 기초의학의 발달이 없으면, 임상의사들은 감기 설사와 같은 대중적인 질병만을 상대해야 한다. 건축이론이 없다면, 건축가들은 진부한 설계와 일상적인 건축행위만 반복할 수 있다. 건축의 이론이란 의학이나 자연과학의 이론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자연과학적 이론은 실험적 사실의 검증을 통해 또는 경험에 의해 정립되지만, 건축이론은 지극히 규범적이다. 때문에 이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역사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역사란 과거의 모든 건축적 실천을 대상으로 한다. 건축역사란 건물의 역사 만이 아니라 건축에 관련된 모든 인간과 조직, 체계의 이론과 실천을 대상으로 한다. 비평은 건축의 해석과 이해의 과정이며 동시에 실천의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란 과거 건축에 대한 비평적 해석의 체계이다. 이렇게 될 때, 역사와 실천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유형학 (typology)의 예와 같이 역사와 이론, 실천은 일체화되어 작동한다.
3. 건축사의 대상 – 건축의 정의
건축 역사의 대상은, ‘건축’의 정의에 따라 달라진다. 서구적 분류의 한계를 보자.
1) 민중건축 (architecture without architect) : 집단적이며 익명적이다. 고급건축이 갖지 못하는 원초적 감동을 주지만, 생산의 이론은 무의미하며 감상의 평가만이 존재한다. 민중건축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도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민중건축을 통해 개별 문화권의 건축적 특성을 규명하기는 어렵다.
2) 토속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 : 비 서구권의 건축. 집단적이며 익명적인 측면에서는 민중건축과 같지만, 더욱 <건축>적이다. 토속건축에는 양식사의 틀이 적용되지 않는다. non-style architecture. 민족적 혹은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토속건축의 생산자는 전문화된 개인이라기 보다는 문화이다.
3) 고급건축 (high architecture) : 건축가에 의한 건축. 생산으로서의 건축과 창조로서의 건축, 양면성이 있다. 정통적 건축사의 대상이다. 근대건축 이전은 양식사의 틀을 적용할 수 있다. 건축가 개인 혹은 집단의 이론과 사상이 중심 과제이다.
물론 매우 편협된 분류다. 서유럽의 토속건축은 고급건축이며 비서구의 것은 토속적인가? 인도와 중국과 한국건축은 영원히 건축사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만다. 또한 고급건축으로 분류한 허가방건축은 무엇인가?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암시는 얻는다. 소위 국제화 세계화 시대의 실천적 건축역사란 고급건축의 차원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민중건축이나 토속건축의 역사를 고급건축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민가와 마을을 민중건축적 차원에서만 바라본다면, 한국성이란 기후와 지형적 특성 만이 강조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토속건축은 21세기 문명과는 유리된 과거의 건축일 뿐이다.
4.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관은 건축관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때문에 양식사, 총체사, 공간사, 기술사, 문화사, 사회경제사, 의미론적 역사 등 다양한 역사관을 낳는다. 현대의 역사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갈등이다. 이 갈등은 건축계 내부의 문제라기 보다는 근대와 탈근대의 거대한 세계관적 갈등이다.
1) 절대주의 역사관 : 19세기 서구의 지식 체계는 헤겔이 정립한다. 변증법의 완성. 그 최고의 패러다임은 다윈의 진화론이다. 정치경제적으로는 막시즘, 예술사로는 양식론이다. 18세기 빙켈만에서 시작된 “양식”의 개념은 젬퍼와 리이글에 이르러 더욱 정교화되었다. 뵐프린은 예술사를 視覺의 발전, 양식연속의 법칙성, 인명없는 미술사, 형식의 자율적 발전 등의 관점으로 해석하였다. “연속성과 발전”이라는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술사를 정립한 것이다. 그의 충실한 제자인 프랭클은 르네상스 이후 건축의 양식사를 정립하였고, 기디온은 모더니즘 건축이 역사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발전된 양식의 건축으로 평가하여 모더니즘의 유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모더니즘 건축은 역사적 양식을 부정하는 것부터 출발하였다. 그러나 모더니즘 건축사가들이 헤겔리안의 절대주의적 역사관을 채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디온 페브스너 –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건축의 원리와 규범이며, 불변하는 요소들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하는 연속체이다.
2) 상대주의 역사관 : 진화론적 패러다임은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20세기 초 제기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을 필두로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가다머 들은 전체성보다는 개별성의 사상을 유포시킨다.
파노프스키, 곰브리치의 미술가사들의 반양식적 상대주의 사관은 건축사가들에게도 전파된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예술에 공유된 공통적 성질이란 없다”며 “시대정신의 공리”를 수정할 것을 주장하였다. 곰브리치는 하나의 형태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을 인정해야한다고 하여 이전의 예술사가 통시적 관점에 치중한 것과는 달리, 더욱 공시적이고 다양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관념론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타프리와 포필리오스는 더욱 적극적이다. 과거의 건축사는 건축을 “창조”라고 신화화하여 결국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였다는 것이다. 건축이란 창조가 아닌 “생산”의 관계로 설명하여야 하고, 건축사란 그 생산과정 속에 내재하는 법칙, 위계, 공리및 도출 가능한 원칙들로 해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당대의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 정당한 자세라고 주장한다. 건축생산의 메카니즘을 건축역사의 중요한 동인으로 파악한 베네볼로나 근대적 “기능”의 역할을 대신하여 중세의 “의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코스토프의 해석 등이 그 다양한 예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개별 건축간의 차연과 개성이며, 가변하는 요소들이다. 상대주의는 다변주의 (pluralism)를 허락한다. 다변주의의 범주 안에는 헤겔리안적 전통도 포함된다. 극도의 상대주의는 디컨스트럭션에 이른다. 대안을 제시하는 또 다른 거대이론 역시 절대주의이기 때문에 거부된다. 건축이론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가 없고, 단지 정당성 만이 문제가 된다.
3) 순환주의적 역사관 : 동양의 전통적인 패러다임. 현대에는 고답적이며 낭만적인 사고로 취급된다. 인도의 윤회사상은 극단적인 예. 현세만을 다루는 유교는 역사에 대해 매우 초월적이어서 각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 시대의 生長老死 만이 변화의 주기이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익숙치 못한 사관이지만 변화와 불변은 단지 기준의 문제일 뿐이다.
동양적 역사관 : 史 —> 歷史 (袁黃의 <歷史綱鑑補>) (임란 종군학자)
1. 역사적 사실 2. 역사서 3. 역사기록자 (관직명)
-說文解字 : 史 記事者也 從手持中 中 正也
1)규범적 역사관 2)鑑戒와 史實性 : 정확한 사실기록으로 감계 목적달성
3)尙古主義 : 경험주의 (춘추전국시대) 복고성 儒家의 文化主義
4)반복적, 순환론 : 夏 殷 周 三代는 순환론의 표본
(한 시대의 제도에 의하여 다음 시대의 제도를 예지할 수 있다)
5) 음양오행설 : 철학적 순환론
역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떤 역사관이 타당한가는 목적에 따라 좌우된다. 절대주의는 역사를 설명하고 유형화하고 체계화한다. 그러나 현실의 생산에 적용할 수는 없다. 반면 상대주의는 건축가 개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사의 완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절대주의적 틀과 상대주의적 시각의 결합, 그리고 순환사관의 시간성. 어쨌든 중요한 것은 역사의 설명이 아니라 생산적 차원에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건축적 생각 – 그것이 집단적이던 익명적이던, 설사 그것이 건축가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 사상의 부분이라 할지라도-을 이해하려면.
5. 역사 이해의 방법
1) 당대적 이해 : 그때 무엇이 왜 일어났는가? 역사가의 기본적 태도는 정확한 고증성이다. 하나의 건축은 당시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사상적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따분하고 사소한 작업이라도. 당대적 이해야 말로 역사를 아는 것이다.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명제를 위해서도 당대적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고고학적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
2) 현재적 이해 : 지금 그것이 무엇이냐? 흔히 건축가들이 과거의 혹은 타인의 건축을 대하는 태도다. 당대적 이해는 전문가에게 필요하며, 너무 버겁고 어렵다. 그래서 직관과 느낌과 물체 건축적 분석의 틀로 이해를 시도한다. 그 결과 현재의 유용성에 충실한 부분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생산과 인식 사이의 괴리는 항상 존재한다.
3) 외부적 이해 : 전경으로서의 건축물 보다는 후경으로서의 사회가 중요하다. 양식의 규정, 그것들의 변화의 법칙, 이데올로기, 신화적 해석학, 명쾌한 원리를 도출한다.
4) 내부적 이해 : 건축 생산의 근원과 방법, 과정이 중요하다. 더욱 유연하고 다양해 질 수 있다. 기호학과 의미론, 그러나 모호하고 너무나 다변적이다.
따지고 보면 위의 분류들은 매우 이원 대립적이다. 흑과 백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회색들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주체의 선택이다.
6. 한국건축사의 경우 – 위기와 극복의 실마리
90년대의 학계는 점차 한국건축사에 무관심한 경향을 띠고 있다. 80년대까지 연구의 최대 약점은 ‘건축’에 대한 정의가 일반건축가나 건축학자들과의 정의와 너무나 동떨어진 점이다. 한국건축사의 ‘건축’은 문화적 생산물이었고 과거의 유물이었으며, 일반적 ‘건축’은 개인의 창작품이며 당면한 현실이었다. 양자는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혀 별개의 분야로 인식되었고, 심지어 서양건축사까지도 별개의 방법을 가진 극히 다른 영역이었다. 한국건축사의 현실적 효용이란 대학 교육의 한 강좌에 불과했고, 기껏해야 전통건축의 보수나 전통성 계승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괴리는 대학에서 현실적 필요를 반감시키며, 결과적으로 신진학자들이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고갈되어 갔다. 건축사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란 대학과 연구소인데, 구멍가게식으로 운영되는 대학은 한국건축 전공자를 원치 않았으며, 기존 전공자가 있는 대학은 전공자 한명이면 충분하다는 이유로 아예 두드려 볼 수도 없었다. 연구기관이란 문화재연구소 단 한군데로 4-5명의 정원만을 유지할 뿐이다. 영민한 대학원생들이 활로가 보이지 않는 분야에 투신할 모험을 할리가 없다. 현재 학계의 중진을 이루는 세대는 40대후반에 집중되어 있고, 30대의 활동은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 대학원생들의 전공 현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때문에 학계에는 ‘도중승차 도중하차’의 자조적 조어가 생겼고, 학위용 논문들 역시 독창적인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는 지경이다. 70년대에 시작된 한국건축사 연구는 20년만에 일대 절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 근본적 원인은 기존 학자들의 연구 방향이 보편적 건축학의 방법이나 현실적 요구와 유리된 데 있다. 거기에 아울러 다른 분야 학자와 건축가들의 무관심과 경시가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 위기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부의 위기이다.
1) 비판적 사고의 부재
일견한 대로 기존 연구와 논의의 방향은 실증주의적 범주에 머물러 왔다. 심지어 누구의 전공은 향교건축이다 혹은 정자건축이다는 전문적 구분이 설정되어 다는 전문가와는 의사 소통이 어려울 정도이다. 이는 다분히 일본학계의 영향이 짙다. 그들은 전공을 더욱 세분하여 지역별, 기능별, 시대별 전문가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일본 내에서도 일본건축사는 일반건축계와 유리된 현상을 빚었고, 통사적 체계를 완성한 대가들이 은퇴한 지금 그 뒤를 이을 중진학자들이 부족하게 되었다. 실무 건축가들과의 괴리는 더욱 심각하다. 일본학계의 현황은 자신의 좁은 연구영역에만 몰두하며, 역사관이나 건축관의 근본적 재설정은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한국 학계의 가능성이 더 높을 지경이다.
한국건축을 유물로만 파악하는 단계는 건축사 연구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실제 생산의 도구로서 기능하기도, 건축가 개인의 이론 정립에 기여하기도 난망하다. 이 기초단계는 순수히 전문가 사회만의 관심일 뿐, 실무건축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 전문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은 누가 특정 분야에 대한 자료를 더 많이 수집하였는가? 누가 발굴과 측량 조사현장에 더 많이 참여하였는가? 혹은 누구의 한문실력이 더 나은가? 등에 의해 평가된다. 다시 말하면 열성적인 기초 자료수집가가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외부 건축계는 이러한 내부적 평가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목적을 상실한 자료의 나열은 해석을 불가능하게 한다. 현재 한국건축에 관심을 가진 대학원생들이 연구 주제가 고갈되어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핑계도 따지고 보면 자료수집적 차원의 풍토에서 나온 현상이다. 기초 자료는 나름대로 많은 양 확보가 되었다. 문제는 끊임없는 과거의 재해석과 현실적 문제에 해답을 주려는 목적의식의 상실에 있다.
비판적 역사이론의 부재는 또 하나의 심각한 역작용을 낳는다. 다른 학문의 방법론을 여과없이 이용하는 경향이다. 고전적 비례론에서부터 인류학, 위상수학, 구조주의, 현상학, 기호론,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첨단 이론이 한국건축 해석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성과는 -물론 창조적 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이 원용한 이론의 정당성만을 확인할 뿐 한국건축의 실체를 발견한다던가 또는 고유한 이론을 창출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연구의 출발부터가 한국건축은 단순한 실험 대상일 뿐 이었고, 사용하는 외부적 이론의 탐구가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비하해 말한다면 학문적 동냥행위이며, 한국건축에 대한 강간행위이다.
2) 한국과 서양, 과거와 현대의 이원론의 벽
심각한 착각이 있다. 한국건축은 19세기로 종말을 고한 사라진 건축이며 현대의 건축은 서양건축이다 라는 인식. 그러면 지금의 한국건축가들은 프랑스를 위해 프랑스의 건축을 실천하고 있는가? 왜 동양은 전근대이고 서양은 근대로 인식하는가? 20세기의 산업사회 문명이 물론 유럽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이미 전세계 공유의 보편 문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여기에는 문명적 선진국과 후진국이 존재할 뿐 동양과 서양의 구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부끄러워 할 것은 과거의 한국건축이 아니라, 세계건축 창조에 기여하지 못하는 지금의 한국건축이다. 정확히 말하면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역적 구분과 과거와 근대라는 시대적 구별은 별개 차원의 개념이다.
이 두 범주의 구별을 혼동하면 곧바로 근대건축의 단절성 시비를 일으키게 된다. 한국근대건축을 정의하는 데에 두 차원이 존재한다. 하나는 절대시간적 구분. 즉 개항기 혹은 한일합방기 혹은 해방 등의 특정 시점부터의 건축을 총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또 하나는 소위 근대적 성격 -그 정의는 참으로 애매하며, 주로 외래건축을 지칭 -을 띤 건축을 대상으로 역사를 전개한다. 후자의 경우 전근대와 근대의 단절 현상은 필연적이다. 전혀 다른 형식의 건축, 정의마저 다른 건축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는 근대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자연히 민족주의 역사관에 접근해 간다. 전자의 가치관에 따르면 일제기 영단주택의 기능성과 기술의 성과는 무의미한 것이며, 집장사 도시형 한옥의 가치야 말로 근대적이고도 현대건축으로 맥을 잇는다. 외래의 영향이 주체가 될 수 없다.
외래건축 전래가 바로 근대건축이라는 시각은 수긍하기 어렵다. 개항기 혹은 일제기의 외래 건축적 전통이 당시 보편적이지도 않았고 현재에 이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회성 조류에 불과했다. 결국 민족주의적 근대의 개념이 비교 우위가 있으나, 역사의 연속성과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보편성을 잃는 우를 범한다. 그들의 논리가 현재로 확장되면, 현재 대부분의 건축은 서양집이며 한옥의 우월성을 강조하게 되거나, 아니면 압구정동의 아파트가 30년대 집장사 한옥에서 발생했다는 가설을 주장하게 된다. 나머지 소위 권위건축들, 상업건축들의 정체는 규명할 수 없다. 역사란 항상 연속적인 것은 아니다. 위기의 순간이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약과 단절의 순간이 있다. 또 우리 역사상 지금과 같은 국제적 시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삼국 통일기 이후 2세기간의 범아시아 국제화 시대, 고려 중기의 동아시아권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의 건축도 엄청난 변화와 단절을 겪었다. 지금 우리만이 역사상 유래없는 충격과 갈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시간적 구분과 문화적 구분의 양자를 분리해 생각한다면 명확한 현재의 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한국건축사가 지금은 끝나버린 유물의 역사가 아니라, 영원한 고전으로서 또 현재와 미래의 영원한 이론적 텍스트로서 작용할 것이다.
3) 도구적 역사관 – 전통의 문제
한국건축사학은 일제 식민지화의 도구로서, 군사정권의 정통성 확보의 도구로서 출발되었다. 아직까지도 한국건축사의 효용을 전통계승의 도구 쯤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실증주의적 연구 태도는 기초 자료의 제공이라는 지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판단을 배제함으로써, 오래된 것은 무엇이던 대상으로 삼는 골동품학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전통의 계승이 가장 중요한 실용적 목표가 됨에 따라 자연히 연구의 방법도 형태론과 공간론으로 압축된다. 과거 건축의 비례와 구성 요소들에 대한 연구와 응용의 노력들. 그리고 외부공간론. 형태론에 비해 유연해진 방법론이지만 역사적 과정과 사실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대의 복잡한 배경과 인연보다는 오로지 현재 어떻게 인식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형태 요소를 가진 건축들은 국수주의적이다 혹은 복고적이다 라는 평과 함께 건축계의 배척을 당하고 있다. 또한 외부공간 이론에 기초한 분석들도 더 이상의 확장과 발전이 차단된 채, 상식적 담론만이 반복되고 있다. 모두가 도구적 역사인식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현재 일각에서 활발한 탐구를 벌이고 있는 민족건축 혹은 민족미학의 정립 운동 역시 넓게 본다면 도구적 역사관에서 출발한다고 보인다. 입에 맞는 떡을 만들어 건축가들에게 먹여서 한국건축 전체를 살찌우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가란 까다로운 인간들이어서 남이 먹는 떡에는 곧 식상하게 된다. 건축가들의 식성을 양식에서 한식으로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떡국만이 한식의 정통이라거나 비빔밥 만을 먹으라거나 하여 강요할 수는 없다. 한식의 다양한 맛과 깊이를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한식 역시 중국식과 일식 양식의 맛과 조리법을 연구하고 수용하여 끊임없이 식단을 개발하여야 한다. 그 개발의 주체는 누구인가? 한식역사가 뿐 아니라 조리사 자신이, 소비자 자신이 되어야 한다. 흔한 비유로 역사의 효용은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잡는 법을 깨닫게 해 주는 데에 있다. 역사를 도구로서만 다룬다면 고정되고 타율적인 규범만을 강조할 위험이 있다.
7. 건축사,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현학을 넘어서 실천적 대안을 모색할 때다. 역사에서 얻어야 할 것은 지혜다. 건축사는 지혜학이다. 비록 지혜가 지식의 축적에서 만이 얻어질 수 있다하더라도, 그 지식들이란 개별 지식이 아니라 체계로서의 지식이다. 즉 이론이다. 건축역사를 이론사로서 재정립해야 한다. 과거의 이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이론들과 실천들의 시행착오 속에서 건축적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결국 건축사의 목적, 즉 더 나은 건축을 위해서 라는 평범한 상식적 결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