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대학 입시에서 늘 중위권을 유지하던 건축관련학과의 인기가 2-3년 전부터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올해 초의 입학성적이 공과대학 톱은 물론, 전통의 명문(?) 의과대학을 젖히고 이과계열 최고 성적을 기록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비단 몇 대학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경향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뿐만 아니다. 복수전공제 학부제 실시로 인해 많은 대학이 인근 학과들과 통합 학부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들 90%정도가 건축과를 지원하고, 복수전공의 가장 매력있는 학과로 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건축과의 인기는 최고였고, 이 상종가 행진은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현상을 TV드라마가 빚어낸 왜곡된 ‘거품인기’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안정된 직업을 추구하는 부모세대의 영악함과 품위와 자유를 함께 선호하는 신세대의 취향이 맞아 떨어진 시대적 대세로 보는 시각이 더 설득력이 있다. 또, 몇 년전만 해도 건축과를 지원하는 이유가 대부분 시공회사에 취직하기 위함이었고 건축가를 희망하는 인원은 기껏해야 2할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의 경향은 8할 이상이 건축가 지망생들이어서 몇 년전과는 완전히 역전된 경향도 나타난다. 물론 건축인의 한사람으로서 건축의 인기가 이처럼 높다는데 흐뭇하고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다’라는 격언과 함께 ‘기회는 위기다’라는 충고도 기억해야 한다. 건축과의 인기는 건축교육이 잘 돼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고, 건축의 사회적 인식이 호전된 것은 건축의 여건이 호전된 결과도 아니다. 오히려 교육과 현장의 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정된 교수진과 제도판과 실험실의 용량은 정규 건축과 학생교육에도 허덕되는데, 몇배씩 몰리는 지망생과 복수전공생을 받아들여 정상적인 교육을 실시하기는 불가능하다. 자칫, 건축교양인을 양산하는 부실교육의 온상이 되기 쉽다. 현장의 경제적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아찔하다. 여전히 구멍가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뜰리에 사무소, 대기업에 의존해 하청과 복제로 운영되는 대규모 사무소,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협공을 당하고 있는 중규모 개인사무소들. 덤핑과 부실설계, 설상가상으로 현실화되는 시장개방.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걸경제 체제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어느 분야보다 경기에 민감한 건축시장의 장래는 뻔하지 않은가?
건축과의 인기가 이상현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안이한 체제와 의식 아래서 교육된 꿈나무들이 졸업할 시점이 3-4년 후는 한차례 극심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감수하면서 건축과를 지망하는 학생과 부모들은 이 현실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