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멋진 청자 주전자라도 주둥이 구멍이 없으면 주전자가 아니듯이, 호반의 그림같은 별장도 출입문이 없으면 더 이상 집이 아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격언을 바꾸어 본 말이다. 파라오들의 거대한 피라밋은 내부에 온갖 보물과 아름다운 그림들을 장식했지만 창과 문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무덤이라 부른다. 건축에 창과 문이 없다면 무덤에 불과하며, 입구가 막힌 동굴에 지나지 않는다. 집은 비바람과 추위를 막기 위해 벽과 지붕을 쳐서 내부를 만들지만, 반대로 바깥으로 통할 수 있는 창과 문을 달아야 인간이 살 수 있다.
내부공간이 발달하지 않은 한국건축에서 창과 문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옥의 내부란 외부의 마당없이 존재할 수 없고, 안과 밖의 공간이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는 것이 한국건축의 중요한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옛집의 창과 문은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시골의 초가삼간 오막살이집은 보통 집주인이나 동네 목수들이 주변의 재료를 모아 얼기설기 만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부품만은 기성제품을 사와야 하는데, 그것은 벽에 설치할 창과 문이다.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창호제작을 아마추어들이 맡으면 곧 바로 찌그러지고 닫히지도 않는다. 건축공사에 참여하는 목수들은 대목과 소목으로 나뉜다. 대목은 기둥을 깎고 서까래를 다듬어 얹는 장인들이고, 소목은 농이나 반다지 등의 가구를 제작하는 목수들이다. 창호는 바로 소목들이 담당한다. 한치의 어긋남없고 나무결까지 맞추는 가구짜기 기술이 있어야 창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창호는 보통 세가지 기능을 담는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출입의 기능, 방안의 채광과 환기를 위한 위생적 기능, 그리고 창을 통해 바깥의 경치를 내다보는 경관적 기능이다. 그러나 고급 건축에서는 여기에다 한가지 더 중요한 기능을 부여한다. 창호의 모습을 통해서 건물의 표정을 만들는 일이다. 창호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창살이 필요하고, 창살은 밖으로 창호지는 안으로 향한다. 일본의 경우는 반대로 창살이 집안으로 향하게 된다. 따라서 일본집의 창호를 밖에서 보면 흰 면으로 보이지만, 한국건축의 창호는 선들의 집합체로서 건물의 여러 가지 표정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건물의 표정을 성공적으로 갖춘 우수작이다. 우선 세칸의 정면을 각각 두짝 – 네짝 – 두짝의 창호로 분할했다. 다시 한짝의 창호를 아래 위로 세부분으로 나누어 아래단에는 판자를 끼워 면으로, 중간에는 연꽃 문양의 창살을, 가장 위에는 연잎 줄기 모양의 창살을 짜았다. 중간단은 연꽃이 만개한 모습의 창살들을 90도로 짜맞추었지만, 위단의 것은 60도 각도로 세방향에 만나도록 조각되었다. 중간의 것이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 위단의 것이 더욱 고도의 기술을 요하게 된다. 고도의 수학적 지식과 숙련된 솜씨, 그리고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정체다.
이 창호들의 연꽃은 각 칸이 모두 다른 종류들이다. 초기 불경에 따르면, 연꽃에는 모두 4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홍련 백련 청련 황련으로 내소사 대웅보전에는 네가지 연꽃이 모두 정교하게 조각되었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은 혼탁한 사바세계에서 진리를 구하려는 불교의 상징물이 된다. 지금은 단청이 바래 색채가 선명치는 않지만, 원래의 붉고 푸르고 하얀 연꽃의 색채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화려했을까. 그야말로 연꽃들로 둘러싸인 부처의 세계를 만들어 냈으리라.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밝은 날 법당 안에 들어가 마루에 떨어지는 창살의 그림자를 보면, 화려한 연꽃의 실루엣들이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창호에 지나칠 만큼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연꽃을 조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