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반찬을 여러 층의 그릇에 담아 포개어 간수하거나 운반할 수 있게 만든 용기로, 요즘 말하는 일본식 피크닉 박스를 연상하면 된다. 보통 3-5층을 포개게 되며, 이것을 다시 나무통에 넣어서 운반하기 편리하도록 만든 것도 있고, 서랍 몇 개를 포개어 바로 들 수 있게 만든 것도 있다. ‘합盒’이란 뚜껑이 있는 평평한 그릇을 뜻하는 한자로 현대어로는 ‘도시락’에 해당한다. 도시락 문화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발달했고, 19세기 중반의 기록인 <임원십육지>나 <진찬의궤> 등에 ‘왜찬합倭饌盒’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현재 전하는 찬합의 형식은 19세기 경에 일본에서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 찬합은 나무로 짜거나 종이를 두텁게 바른 위에 짙은 옻칠을 하고, 청록색과 노란색의 화려한 문양, 금박의 번쩍이는 장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찬합은 이런 요란한 장식보다는 갈색 옻칠 그대로의 자연색을 노출시키고 큼직한 백동 장식들을 붙여 형태를 구성한다. 철제 장식들은 나무궤를 견고하게 짜기 위해 필요한 기능적 요소들인데 이를 대담한 장식으로 활용한 한국적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굳이 일본의 조형예술이나 공예품들과 비교하자면, 한국의 것들은 숨김이 없고 자연스러우며, 불필요한 것이 없는 대신 꼭 필요한 것들을 장식적인 요소로 만들어 이중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특성이 있다. 사소한 찬합의 예에서도 어김없이 두 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차이나는 것이 신기하다. 찬합이 전래된지 200년이 채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무 외에도 찬합을 만드는 재료는 다양했다. 대나무 쪽을 잇대어 엮은 죽합이나, 얇은 나무판으로 짠 틀 위에 등나무 줄기로 엮어 만든 등합도 쓰였다. 특히 음식이 상하기 쉬운 더운 여름철에는 통풍이 잘되는 대나무 찬합이 애용되었다. 나무 찬합은 재료의 성질 상 사각형이 일반적이지만, 대나무 찬합은 원통형으로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도자기나 사기로 만든 찬합, 놋쇠나 은으로 만든 고급 찬합까지 재료는 다양했다. 해방 후에는 양은으로 만든 찬합이, 요즈음에는 플라스틱 제품이 범람하여 과거의 고풍스런 찬합들은 사라졌다.
찬합은 나무 용기에 물기와 기름기가 있는 음식을 직접 담아야 하기 때문에 방수 방충은 물론 찬합 자체와 식품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옻칠이 필수적이었다. 간혹 술안주나 마른반찬을 담은 그룻에는 기름칠을 한 예도 있다. 근래의 금속제 찬합이나 플라스틱제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원래 재료가 물에 젖지도 썩지도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두께도 얇아졌고 무게도 가벼워졌다. 색깔도 화려해졌고 심지어 보온성능을 가진 제품까지 나와 야외에서도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런 온갖 편리에도 불구하고 찬합에 담긴 음식은 웬지 맛이 없다. 목합이나 죽합에서 묻어 나오는 찬합맛이 스미지 않아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