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 우리 살림집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렇다. 한옥의 안마당은 서양의 뒷뜰 (court yard)이나 중정(patio)과는 확연히 다른 장소다. 서양의 것들은 넓은 활동용 또는 조경용 공간으로 집의 내부공간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안마당은 방과 마당, 대청과 마당 사이에 끊임없는 공간적 관계가 맺어지고, 내부와 외부공간 사이의 행위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합되어 있다.
‘안마당’은 ‘집 안에 있는 마당’이기도 하고, ‘안채에 딸린 마당’이기도 하다. 앞의 표현은 건물로 둘러쌓인 마당이란 뜻이며, 마당의 네면을 이루는 건물의 바깥벽은 마당 쪽에서 본다면 마당의 안벽이 된다. 안과 밖의 개념이 역전되어 안마당은 지붕만 없다 뿐이지, 실외에 있는 또 하나의 방으로 역할한다. 사랑채가 남자들의 공간이라면 안채는 여자들의 공간이다. 따라서 사랑채는 개방적인 반면, 안채는 폐쇄적이며 은밀하다. 이 은밀한 공간에 안마당은 중심을 이룬다. 안마당은 사랑마당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안마당은 비어있기 때문이다. 비어있음으로 중심을 이룬다. 폐쇄적인 안채에 비어있는 중심이 있음으로써, 안채는 내부적으로 개방된다. 아무리 멋진 고려청자라 할지라도 그 안에 비어있는 공간이 없으면 그릇으로 쓸 수 없듯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가진 안채라 할지라도 비어있는 안마당이 없으면 건물로 쓰이지 못한다. 따라서 안마당의 기능은 더도 덜도 아닌 ‘비어있음’ 그 자체이다. 안마당은 결코 이것 저것에 쓸 수 있는 다목적의 공간은 아니다. 안마당은 아무 것에도 쓰이지 않는 ‘무목적의 공간’이며, 목적을 갖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다 담을 수 있는 무한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로는 안동의 하회와 경주의 양동이 꼽힌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들의 씨족마을인데 비하여,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라는 두 성씨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마을이다. 두 성씨 모두 조선조 최고의 명예와 긍지를 가진 유력 양반들이다. 원래는 손씨들의 마을이었지만, 사위로 들어온 이씨들이 번창하여 사돈끼리 마을을 양분한 경우다. 두 집안은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하면서 마을을 발전시켰다.
양동마을 초입 산허리에 단정하게 자리잡은 기와집이 관가정이다. 관가정은 ‘농사짓는 것을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을 갖는다. 산 중턱에 앉아서 너른 앞 들판의 농토를 바라보는 경관이 일품이다. 이 집은 손씨들의 시조 – 손소선생의 고택으로 전하지만 현재는 비어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이 집만큼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집도 드물다. 보는 각도에 따라 루각같기도 하고, 정자같기도 하고, 커다란 부자집같기도 하여, 최소의 몸집으로 최대의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래서 좋은 집, 아름다운 집이다. 그 가운데 백미는 안마당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사각형의 마당이 펼쳐지고, 마당의 앞과 옆은 마루와 대청으로 떠져있다. 작은 규모지만 마룸변으로 공간감이 확산되어 넓어보이며, 엄격한 대칭적 구성으로 조선조 사대부들의 엄격한 절제정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관가정 맞은 편에는 ‘향단’이라는 대규모의 저택이 견주고 있다. 관가정의 사위뻘 되는 여강 이씨들이 만든 주택이다. 관가정이 고전적이라면 향단은 매우 낭만적인 풍치가 가득한 곳으로, 두 집의 안마당을 비교해 보는 것도 커다란 깨달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