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라는 용어는 원래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산의 가장 높은 능선을 ‘산마루’라 하고, 지붕이 하늘과 맞닿은 가장 높은 선을 ‘용마루’라 부른다. 그렇다면 나무 널판을 깐 바닥을 뜻하는 집의 마루는 높은 곳에 위치한 바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골 수박밭 가운데 우뚝 서있는 원두막과 같이 지면에서 떨어져 높은 곳에 위치한 나무바닥을 마루라고 부르기 시작하여, 위치를 가르키는 용어가 장소의 용어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높은 바닥을 가진 집을 ‘고상형 주거’라고 부르며, 이들은 주로 따뜻한 남쪽지방 – 구체적으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여 한반도로 북상한 해양성 건축요소라 할 수 있다.
마루와 반대되는 요소로 온돌을 들 수 있다. 아득한 옛날, 추운 북쪽 지방사람들은 땅을 파고 내려가 바닥을 고르고 지붕을 덮어 집을 마련했다. 이러한 집은 ‘움집 혹은 수혈식 주거’라 부른다. 그러나 흙바닥만으로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궁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발명한 것이 바닥에 넓적한 돌판을 깔고 그것을 불로 달구어 온기를 보존하는 ‘온돌’이었다. 당연히 온돌은 북쪽지방 – 극동 시베리아와 만주일대 -의 대륙성 요소로 발생하여 남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마루라는 높은 바닥이, 북쪽에서는 온돌이라는 낮은 바닥이 전파되기 시작한 지 오랜 세월동안, 이 두 이질적 바닥들은 서로 융화되지 못했다. 온돌은 낮고 불을 필요로 하지만, 마루는 높고 불을 멀리해야 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고려 때 까지만 해도 건물 한동의 내부는 모두 온돌이나 마루라는 한가지 바닥으로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땅의 머리좋은 조상들은 갖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한 채의 집 안에 온돌과 마루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온돌 고래 기술이 발달하여 마루의 높이를 낮추고 온돌은 높이어 같은 평면에서 두 바닥을 만나게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방에서,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마루 위에서 자연의 제약을 극복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집 – 곧 우리의 한옥이 탄생한 것이다. 온돌과 마루가 함께 있는 집은 한국의 집 밖에는 없다. 일본집에는 마루만 있고, 북부 중죽 주택에는 온돌의 변형인 ‘깡’은 있지만 마루가 없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우리의 한옥은 중세적 기술의 차원으로는 최첨단의 설비를 갖춘 가장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집이었다고 자부해도 모자람이 없다.
한국의 전통 정원을 대표하는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는 3개의 정자건물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사진의 광풍각이다. “비가 갠 뒤 밤하늘에 빛이 나는 것 같이 부는 바람”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건물은 매우 작은 정자건물로, 사람이 누우면 양쪽 벽이 닿을 정도의 6척 한칸 온돌방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 마루를 둘렀다. 방은 폐쇄된 공간이고 마루는 사방으로 트인 빈 공간이다. 따뜻한 온돌방이 육체적 휴식의 장소라면, 시원하게 터진 마루칸은 정신적 감각적 휴식의 장소다. 그러나 방문을 들어 올리면 이러한 대조적 장소들이 금새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된다. 온돌과 마루가 동시에 공존하면서 화학적으로 융화된 한옥의 최소형 모델을 보여주는 집이다. 그러나 광풍각의 가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정자의 방안에 앉아 마루를 통해 주변의 경치를 내다보면, 물과 바람 소리가 들릴뿐 더러, 바람에서 나오는 빛이 보이는 것 같고 온 우주의 중심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소쇄원에 가면 필히 이 방 안에, 또는 툇마루에 앉아 자연을 음미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