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도시의 중심부에는 예외없이 넓은 광장이 마련되어 있다. 십여년 전, 처음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해질녘이면 한둘씩 광장에 모여들어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어대던 이탈리아의 시민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었다. 왜 한국에는, 동양의 도시에는 광장이 없을까? 왜 우리 선조들은 그 흔한 공동마당 하나 만들지 않았을까? 부러움을 넘어서 원망에 가까운 푸념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 원망은 우리의 마을과 유럽의 도시를 비교 연구하면서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유럽의 도시주택들은 집 안에 마당을 가지지 못했다. 좁은 택지에 조밀하게 옆집이 붙어서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집안은 단지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에 불과하다. 그것도 매우 비좁은 공간 안에서 최소한의 생존만 가능한 곳이었다. 가족끼리 단란한 대화를 나눈다든가, 친구들이 방문해서 사교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돼지나 토끼도 좁은 우리에 여러 마리를 넣어 기르면 스트레스가 쌓이게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집안에만 갇혀있으면 서로 다투고 짜증나게 된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마치면 습관처럼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여기서 이웃을 만나고, 연애를 하고, 싸우기도 한다. 광장은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만일 유럽 도시에 광장이 없다면 숱한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택에는 아늑한 마당이 있고, 툭터진 마루가 있다. 마실온 이웃들은 마당에 평상을 깔거나 마루에 올라 친교를 다진다. 마을사람들이 상의할 중요한 일이라도 있으면 촌장집 마당이나 대청에 모여서 회의를 연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TV가 귀하던 시절, 한일 레슬링 경기라도 있으면, TV가 있는 집의 대청에 모여 앉아 탄식과 환호를 지르곤 했다. 한국의 주택은 곧 공공의 광장을 집안에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주택 구조에서는 별도의 공공 광장이 필요하지 않다. 한국에, 동양 도시에 광장이 없었던 중요한 이유다. 마을의 공공 공간은 오히려 길과 골목이었다. 아이들은 공용의 넓은 타작마당을 제쳐두고 좁은 골목을 누비면서 놀이를 즐긴다. 처녀 총각은 길 모퉁이 으슥한 곳에서 남이 볼세라 손목을 잡기도 한다. 공동의 공간이기는 하되,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와 비밀이 보장된 길이었다.
마을길은 좁고 구불거려 모퉁이 공간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없었던 시절에 길은 넓을 필요도 곧을 필요도 없었다. 따라서 이런 유행가도 생겼다. “돌담길 돌아서서 또 한번 보고 ….”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는 처녀가 고향을 두고 못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고향집과 사랑하는 님의 모습을 눈에 담아 놓으려는 애절함을 그린 노래다. 돌담길은 굽어있기 때문에 모퉁이를 돌아서면 고향집이 보이지 않는다. 똑바른 길이라면 한참을 걸어나가도 집이 보일 것이다.
왜 우리 마을 길들은 꺽이고 굽어져 있을까?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해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