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8.10.01.
출처
코리아나
분류
건축역사

옛 살림집에서는 장작이나 짚풀을 태워서 난방과 취사를 했다. 이런 식물성 연료들은 필연적으로 재를 남기게 되고, 그 재들을 퍼담아 처리할 용기가 필요했다. 이때 쓰여지는 것이 바로 ‘삼태기’라 불리는 도구지만, 현대식 난방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몇 년전에 활동했던 이상한 가수그룹 정도로 알려져 있다.
삼태기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지방에 따라 삼태미, 삼태, 삼치, 꺼랭이, 소쿠리, 어렝이 등으로도 불린다. 옛 기록에 나타나는 한자어는 <농사직설>에 분(畚)으로, <해동농서>에는 양람(颺籃)으로, <농가월령가>에는 두(篼)라고 표시되어 있다. 삼태기는 가는 싸리나무나 대오리(대나무를 잘게 쪼갠 것), 칡넝쿨, 짚으로 촘촘히 꼰 가는 새끼 따위를 엮어서 만든다. 재료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전남지방에서 짚으로 만든 것은 ‘거렝이’, 싸리나 칡넝쿨로 만든 것은 ‘삼태기’라 하고, 광산지역에서는 통싸리로 엮은 것을 사용하는데 이를 ‘어렝이’라 부른다.
삼태기의 기본적인 쓰임새는 아궁이에서 재를 퍼담는 것이지만, 두엄이나 퇴비를 담아 논밭에 칠 때나, 흙이나 쓰레기를 담아 옮기는 데, 곡식의 파종 때 씨앗을 담아 옆구리에 끼고 뿌리는 데, 타작한 곡식을 가마니에 퍼담는 데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경기도의 백령도에서는 ‘질삼치’라 하여 밀짚으로 짜는데, 가로가 1m 양날개가 70cm에 이르는 큰 것이어서 지게에 얹어 나르기도 한다. 요컨데 잘잘한 입자 형태의 분말이나 알갱이들을 대량으로 퍼담아 옮기는 용도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조직을 치밀하게 엮어서 입자들이 새나가지 않도록해야 한다. 따라서 대바구니나 소쿠리 등과는 달리 매우 촘촘하고 견고하게 짤 수 밖에 없다. 가루나 알갱이를 퍼담기 위해서는 앞의 입부분을 넓고 평평하게 만들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고 깊게 만들어야 한다. 또 무거운 내용물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윗부분 손으로 잡는 테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밑이 빠지지 않고 잡고 운반하기에도 편리하다. 따라서 곡선과 직선, 곡면과 평면이 입체적으로 조합된 매우 복합적인 형태를 갖게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운반하기 편하도록 윗테에 손이 들어가도록 손잡이를 만들기도 한다. 농가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용구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수명은 보통 2년 정도이며 무게는 1kg 쯤 된다.
삼태기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이처럼 복합적이고 기능적인 형태를 가진 용구이며, 제작하는 데 많은 노력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단순함 속에 숨어있는 다기능과 복합성. 이것이 바로 서민적 살림살이들의 매력이며, 민속적 아름다움의 핵심이다.
삼태기에서 변형된 것 중에 ‘둥구미’라는 것도 있다. 삼태기의 앞부분에 낮은 벽을 만들어 곡식 알들을 쓸어 담음과 동시에 보관하기 쉽도록 만든 것이다. 삼태기의 다기능적인 정신을 한차원 발전시킨 용구라 할 수 있다. 삼태기에 얽힌 속담도 있다. “삼태기로 앞 가리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을 속이려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