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홍순민 저, 우리 궁궐 이야기
역사적 장소에 대한 원근법
1. “경복궁 광화문 앞에는 해태상이 놓여져 있다. 새 도읍으로 정해진 한양이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이점을 안고 있지만, 단지 조산(朝山)인 관악산이 화산(火山)이어서 역모의 기운을 갖고 있는 단점도 있었다. 조선 태조는 술사들의 건의에 따라 불을 먹고 산다는 해태상을 광화문 앞에 만들어서 관악산의 화기를 진압했다.”
필자가 수업시간에 서울의 도시계획을 강의할 때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직접 어느 문헌에서 확인한 내용도 아니고, 단지 여러 건축서에 등장하는 내용이 그럴듯하게 생각되어 전달하면서 추호도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고, 필자는 학생들에게 사기를 친 셈이 되었다. <우리 궁궐 이야기>를 읽은 뒤에 깨달은 후회였다.
저자인 홍순민은 이 책에서 해태상의 화기 진압설은 근거없는 미신적 속설이라고 질타한다. 원래는 육조거리에 있었던 사헌부 정문 앞에 세워졌던 것을 옮긴 것에 불과하며, 해태란 옳지 못한 자를 물고, 바르지 못한 자를 들이받는 정의의 상징동물이라고 한다. 감찰기관인 사헌부 관리들에게 정의의 실천을 강조하는 의미로 세워졌다는 설명에 그 동안의 근거없는 확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필자의 오류는 자신만의 책임은 아니다. 건축학계, 또는 문화재학계에서 수많은 연구서들이 출간되었지만 대부분 통사류였고, 건축 계획의 원리와 기법에 초점을 맞추어, 내재한 상징이나 의미를 심도있게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궁궐건축만을 따로 다룬 연구서도 없었다. <우리 궁궐 이야기>는 물론 건축 연구서는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궁궐의 역사와 제도를 중심으로 다룬 종합적 역사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어떤 건축서보다도 서울의 궁궐 건축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전문 건축서이기도 하다.
필자의 전공이 건축이다 보니, 우선적으로 건축적 가치를 언급했지만, 이 책은 대중적 인문학서로서도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궁궐에 대한 건축, 의례, 구성, 역사, 기능, 상징과 의미, 더 나아가 한양이라고 하는 도시 속에서의 공간적 역할까지도 포괄하는 종합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 해태의 의미 해석에 대한 신뢰는 이러한 종합적 측면의 타당성에 기초한다.
논거의 대상으로 삼는 사료를 선택하고 활용하는 데에도 개방적이며 입체적이다. 문헌기록을 애지중지하는 인문학에서 흔히 간과하기 쉬운 비문자 텍스트들, 즉 유물과 유적들의 해석에도 자상하고 친절하다. 남겨진 유물을 통해서 역사를 구성하기도 하고, 문헌기록을 통해서 지금은 사라진 궁궐의 모습을 상상 복원하기도 하는 문헌적 방법을 입체적으로 병용함으로써, 문자 텍스트와 비문자 텍스트 간의 상호 보완과 검증을 시도한다.
서술 또한 쉽고 재미있다. 쌓여진 학문적 지식들을 논문이라는 딱딱한 형식으로 냉동시키지 않고, 때로는 이야기처럼,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때로는 신문기사와 같이 서술하여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철저한 연구와 풍부한 내용, 그리고 적절한 서술방법이 조화를 이루었으니, 저자가 의도했듯이 살아있는 궁궐을 그리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책의 내용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1부-궁궐 멀리서 보기>와 <2부- 궁궐 가까이 보기>를 시도한 구성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궁궐을 단순한 문화재나 공원의 차원을 넘어서, 조선조 역사와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담겨있는 총체물로 파악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구성이다.
1부에서는 궁궐을 이루는 외부적 환경들- 한반도의 지형부터 시작하여 서울의 도시구조까지, 궁궐의 제도와 일반적 기능들, 조선조 500년간의 궁궐 경영의 역사, 그리고 궁궐 답사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들을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신선한 부분은 궁궐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이다. 조선조 궁궐의 제도의 기본을 양궐체제로 설정하고, 그 양궐체제의 변천사로서 도성내 5대 궁궐의 흥망사를 조명함으로써, 일견 복잡하고 중첩적으로 보였던 궁궐의 경영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비록 저자의 학위논문의 주된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었음을 기억하더라도, 양궐체제에 대한 개념과 정리는 궁궐사 이해에 중요한 틀을 제공할 것이다.
2부는 도성 내 5대 궁궐 -경복궁, 경운궁(덕수궁), 경희궁, 창경궁, 창덕궁의 구체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그 설명들이 하나의 일정한 틀에 의해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경복궁에서는 궁궐의 짜임과 기능적 구성을, 경운궁에서는 고종조 때의 긴박한 국제정세와 왕실의 비운을, 경희궁에서는 복원적 고찰을, 창경궁에서는 일제의 궁궐 훼손사를 중점 주제로 다루고 있다. 자칫하면 판에 밖힌 문화재 해설서가 될 뻔한 유혹을 물리치고, 살아있는 서사구조로서 5대 궁궐을 설명하기 때문에 1부에서 불어넣었던 입체감과 생명력을 끝까지 지속할 수 있었다.
II. 그러나 이 책의 많은 장점과 공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존재의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쉽게 구할 수 없다. 물론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궁궐 해설서요, 충실한 궁궐답사의 길잡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 정도의 기준이라면 이 책은 성공적으로 목적에 부합하고 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궁궐을 경영하면서 전개된 치열한 정신과 삶을, 그리고 그들의 문화역량을 읽어야한다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저자가 활용한 방대한 사료들, 종합적인 연구 방법들, 그리고 입체적인 서술 전략들은 결국 인문역사서로서의 목적을 위해 채택된 것들이다. 이들 목적을 얼마만큼 달성했는가에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우선 궁궐에서 살았던 다양한 계층의 인물묘사가 생략되어 있다. 물론 궁궐의 주인은 왕과 왕비 일가이지만, 궁궐은 또한 수많은 궁인들과 관리들이 상주하거나 출입하던 대규모의 마을이었다. 또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치부터, 국왕을 수호하기 위한 군사적 조직들, 중궁전을 무대로 벌어졌을 궐내의 정치적 살림살이, 음식 만들기와 옷짓기 등 궁인들의 일상사, 이 수많은 인구들의 먹거리와 살림살이들의 끊임없는 반입과 폐기 등 …….. 마치 축소된 하나의 국가와 같이 온갖 행태의 일들이 벌어졌던 다층적인 무대였기도 하다. 물론 이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을 추적하고 묘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각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들, 임무와 일상들을 몇 부분만이라도 그렸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궁궐의 도시적 삶의 구조에 좀더 주목했다면, 궁궐의 연구를 통해서 축약된 조선사회를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궁궐을 보아야 하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저자는 ‘왕에 대해서 너무나 몰라서’라고 너무나 소박하게 답한다. 그러면 정치체제가 바뀌어 버린 현대 한국인들이 왜 왕이라는 역사적 존재를 알아야 하는가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왕이란 존재는 왕조정치의 핵심이며, 수많은 관료들과 궁인들의 보좌를 받는 사회적 중심으로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궁궐을 통한 왕에 대한 이해는 왕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궁궐 내의 다양한 인간상들의 조직과 직능과 일상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또 한가지 의문점은 궁궐건축에 대한 저자의 고정된 시점이다. 저자는 죽어버린 궁궐, 온통 망가지고 뒤틀린 궁궐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 물론 조선 최고의 역사적 현장이요, 국가의 상징이었던 궁궐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된 현상에 찬사를 보낼 후손은 없다. 특히 경희궁을 완전 파괴하고,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바꾸어 왕실을 조롱했던 일제의 만행에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궁궐들은 창건 이후로 여러 차례의 중창과 중건을 거쳐왔지 않은가? 불에 타 없어지기도 여러 차례이고, 광해군 때 세워진 인경궁은 아예 흔적도 없지 않은가? 파괴와 왜곡의 역사는 비단 근대에서만 벌어졌던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건축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원래의 모습, 또는 옛모습에 너무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사라져 버린 폐허에 다시 건축물을 복원할 필요도 없다. 단지 정교한 상상으로 복원할 수만 있으면, 상상 복원을 가능케할 깊고 자세한 연구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저자의 과거 지향적, 원형 지향적 건축관은 경운궁을 점령한 서양식 건물들에 대한 비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석조전의 우람한 규모와 이질적인 재료와 형태들이 그나마 남아있는 덕수궁의 전각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물론 미적인 판단은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건축물, 특히 궁궐과 같이 국가적 최상류의 건축물은 변하고 바뀌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타이랜드 왕실의 여름 궁전에는 세계 각국의 건축양식을 따른 건물들이 수도 없이 세워져 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양을 떨었던 태국 왕실의 몸부림의 결과였다. 그러나 태국민들은 이 굴욕적 건물들을 철거하기는 커녕, 민족적인 자존심의 상징으로 여기고 국가적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인도 델리의 무갈제국 왕궁을 방문하는 인도인들과 외국인들은 철저히 파괴된 폐허를 보고 서구 제국주의의 추악함을 다시 상기하고 반성하게 된다. 서울의 궁궐들이 겪었던 변화와 파괴를 왜곡된 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이고 상징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 역사가의 능력이 아닐까.
필자는 <역사기행 서울궁궐 (홍순민 저, 서울학연구소, 1994)>을 통해 저자를 이미 지면에서 만난 적이 있다. 7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던 필자는 인문대 국사학과에서는 혁명과 민중사만 연구하는 곳으로 알았다. 저자 역시 이른바 ‘모래시계 세대’의 학자이다. 그의 책을 접하면서 7,80년대의 지적 풍토에서는 배척했던 지배층의 역사를, 그것도 일반 사학계에서는 백안시하던, 궁궐이라는 구체적 장소를 탐구했다는 데에 우선 놀랄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 궁궐 이야기>를 대하면서 궁금증은 더해갔다. 어떤 동인이 저자를 궁궐사에 몰입하게 했을까? 이런 개인적 호기심보다 더욱 강하게 떠오르는 의문은 과연 저자는 궁궐 연구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가?였다. 지나간 시대의 왕조, 왕 중심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해야 하는가. 궁궐이라는 유물 연구가 던지는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문화재를 보존하고 과거를 알자는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필자가 접한 두 번째 책에서는 그 의문들이 풀릴 줄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개인적 의문에 대한 답을 아직 얻지 못했다.
이 책은 서울의 궁궐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훌륭한 길잡이요, 피상적 설명을 극복한 대중적 연구서이다. 건축사를 전공한다는 필자 자신도 이 책을 통해 궁궐 건축 이해에 밝은 빛을 발견하고 즐거워한다. 또한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들은 더없는 기쁨이다. 반면, 이처럼 지식 전달적인 저작을 평한다는 작업은 고통이다. 맞부딪힐만한 쟁점들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 자신의 과감한 주장들에 대한 토론보다는, 설명적 지식들에 대한 감사가 우선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