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4.02.13.
출처
부산일보
분류
건축론

과거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이 ‘한옥’이었다면, 현재 만들어지는 전통건축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아파트’다. 전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살고, 가장 선호하는 집 형식이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신규 건설 주택의 90% 이상도 아파트가 차지할 정도로 아파트는 완전히 토착화한 현대의 한국집(한옥)이 되었다.
대학 교재에 “아파트란 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좁은 땅에 고밀도로 지어진 저렴한 주택형식”으로 설명된다. 실제로 서구의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일용노동자나 가난한 학생층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교과서적 정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단독)주택’에 사는 한국인이란 극소수의 부유층이거나 극빈층이다.
아파트의 어원인 ‘어파트먼트(apartment)’란 단위세대별로 나뉘어져 값싸게 빌려주는 임대주택이란 뜻이다. AID 차관아파트나 잠실 시영아파트와 같이 초창기 국내 아파트들도 원래의 정의에 충실한 소형 임대 주택이었다. 똑같은 평면이 수백 수천 채씩 반복하니 우선 설계비가 절약되고, 똑같은 규격의 자재들을 대량으로 사용하니 재료비와 공사비가 저렴해진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싸구려 주택이었던 아파트가 국내에서는 가장 비싼 선망의 대상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아파트 인기의 비결로 흔히 편리성을 들고 있다. 주차장이 충분히 확보되어있고, 어린이 놀이터가 의무적으로 조성되며, 현관문만 잘 단속하면 도둑이 들 염려도 없다. 좁은 골목길 주차난에 시달리고, 동네 시장통에서 아이가 납치되며, 옥탑방 전세방에 횡횅하는 강도의 공포에 떠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아파트야 말로 가장 편리하고 완전한 주택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주택이 사용가치보다는 재산 증식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아파트야말로 대량 매매를 통해 환매성이 가장 뛰어나고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오래된 단독주택의 가격은 땅값 상승률만 반영될 뿐, 건물가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땅값 상승이 없다면 10년 전 가격보다 오히려 떨어진다. 반면 아파트의 가격상승률은 2003년의 경우 30%를 상회하고, 강남 아파트의 최고 상승률은 50%를 넘었다. 제로 금리에 가까운 현재 상황에서 아파트만큼 수익이 남고 재산가치가 불어나는 황금알 거위가 어디 있을까?
아파트 가격 급등에 편승해서 신규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여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분석에 의하면, 토지가와 건설비를 합산한 서울 강남아파트의 생산원가는 평당 1,000만원, 수도권은 500만원 선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현행 분양가는 강남 1,500-2,000만원, 수도권 700-800만원이니 원가의 150%가 분양가로 책정되었다는 결론이다. 분양가의 1/3이 거품이며, 이 거품을 건설회사들이 모두 폭리로 취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건설사 측도 할말이 많다. 분양가는 토지와 건설비 말고도 홍보비, 사업비, 건설사 이윤 등 수많은 요소들이 포함되는데, 시민단체의 계산에는 모두가 이윤과 거품으로 취급되었다는 항변이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사업 시행 건설사의 이윤은 5-8%에 불과하다고 한다. 허가와 사업추진 과정에서 재건축 조합, 관계 관청, 정치권, 인근 주민세력 등 허다한 곳에 비공식적인 비용들-굳이 뇌물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통하는-이 쓰여진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거품을 빼야할 곳은 확실해진다. 정상적인 계획과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행과정만 확보된다면 20-30%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이는 곧 분양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용을 높일 부분이 있다. 바로 아파트 품질을 좌우하는 계획과 설계과정에 투여되는 설계비다. 흔히 아파트의 단점으로 지적하는 것이 천편일률적인 획일성과 콘크리트 덩어리로 대표되는 삭막한 비인간성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파트 본래의 단점이 아니라, 최저가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설계를 강요하니 단순반복적인 계획을 할 수밖에 없고, 설계기술과 품격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한국적 상황의 결과이다. 적정 설계비는 공사비의 3%인 평당 9만원 선이다. 그러나 현실은 평당 3만원에 못 미치고, 심지어는 1만원 미만으로 책정하기도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국내 아파트 설계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단지마다 특색있는 외부공간이 마련되고, 다양한 단위 평면이 선보이고 있다. 이미 최고의 주택형식이 되고만 아파트. 분양가를 싸게 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 품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