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매스컴을 달구고 있는 건축 뉴스라면 단연 제2석굴암 건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찬반논쟁이다. 한국의 문화재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석굴암이지만, 그 보존 방법을 두고 가장 많은 시비거리가 있어온 것도 석굴암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잘못된 보존 처리로 수난을 겪더니, 해방 이후의 보수공사 때마다 악화 일로를 걸었다. 에어콘까지 동원해 석굴 내부의 결로 현상을 잡으려 했지만 만사가 무익, 급기야 1976년에는 석굴 내부에 외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유리벽을 설치했다. 천년이 넘도록 외기에 면하며 보존되어왔던 석굴이 20세기에 들어 불과 50년 만에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 석굴암에 가봐야 유리벽 넘어 희미한 본존불만 볼 수 있을 뿐이니, 최고의 예술건축이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해봐야 직접적인 체험은 불가능하다.
잔머리를 굴리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석굴암 근처 어딘가에 원본과 똑같이 만든제2 석굴암을 건립한다면 위대한 석굴의 실내를 체험할 수 있으니, 관광객들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것이고, 석굴암을 관리하는 불국사 측은 더 많은 관광수입을 올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본 석굴암에 대한 관심도 뜸 할테니 보존 효과도 부수적으로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좋은 일석이조의 묘안이지만 막대한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해왔지만, 이제 국가에서 52억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문화재청의 승인도 받았으니 금년 5월중 그 위대한 불사를 기공할 예정이다.
이 계획은 당연히 문화계의 반대에 부딪혔다. 밀실에서 추진되던 계획이 우연히 공개된 이후, 급히 결성된 ‘석굴암, 토함산 훼손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환경연합, 녹색연합, 문화연대, 불교환경연대 등 시민단체와 건축역사학회, 고고학회 등 학술단체 20여 단체와 100여명의 학계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되어 다각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반대론자들에 의하면, 제2 석굴암(모형관)이 원본 석굴암에서 불과 50m 아래에 건립되는 것은 문화재 환경을 훼손하는 것이며 토함산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문화재 보호보다 관광수입 증대만을 꾀하는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계획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단순함이고, 그 복제품을 보고 감동하리라는 그릇된 예측이다. 가짜는 진짜와 가장 비슷했을 때 존재 이유가 있다. 따라서 석굴암의 형태 뿐 아니라 위치까지도 비슷하려 한다. 그러나 가짜를 진짜처럼 취급하고 믿어버리는 순간, 모든 무리한 억지와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복제 모형품을 진짜 바로 옆에 만든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반문화적, 반역사적 행위이다. 십수년 전 익산 미륵사지 동탑을 복원한 적이 있다. 현존하는 서탑의 형상을 그대로 따랐으니 완벽한 복원이라고 자랑했었다. 그러나 기계톱으로 자르고, 그라인더로 가공한 동탑은 전체 형상은 비슷하다 하더라도 질감과 맛이 전혀 달랐다. 천년 전 장인의 솜씨를 따라갈 수도 없을 뿐더러, 진한 세월의 연륜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역사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똑같은 가짜를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예술적 체험이나 감동까지 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면서 이 불가능한 억지를 왜 강행하는가?
더욱 치명적인 사실은 아직도 진짜 석굴암의 비밀이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 행해진 파괴적 복원 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실의 구조는 어떠했으며, 실내 결로현상은 어떻게 막을 수 있었고, 광창은 과연 있었는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직 정설이라고 공인된 것이 없다. 석굴암 아래 마당에는 복원과정에서 사용되지 못한 석재들이 나뒹굴고 있다. 현재 석굴암은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라는 여러 가지 반증들이다. 진짜의 본 모습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진짜를 닮은 가짜를 만든다는 것인가?
이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불국사측은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것이요, 설계를 맡은 김홍식 교수(명지대)는 석굴암 재현이라는 명예와 금전적 이익을 얻는 길이니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태도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무모한 계획을 막아야할 당사자인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의 태도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이미 석굴암 모형관 건립계획을 승인한 바 있고, 결정을 번복할 이유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설계자나 그 설계안을 심의한 문화재위원들은 한국건축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고 자처하던 이들이고, 남다른 문화재 보존의 열정으로 평생을 살아 온 원로들이다. 그런 그들이 왜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계획에 참여하고 찬성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면 석굴암은 어떻게 보존하냐고? 이 작은 세계적 보물을 보존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관람객 수를 제한해야 한다. 예약제를 실시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개방해야 한다. 굳이 모형관을 만들어 국민교육에 이바지하겠다면, 불국사 입구 정도에 세워서, 그 가짜가 진짜 가짜인 것을 확연하게 느끼게 해야한다. 그리고 더욱 철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석굴암의 원형을 찾아서, 유리벽도 에어컨도 철거해야 한다. 그때까지 제2, 제3의 석굴암은 만들어서도 안되고, 만들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