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마스터플랜의 문제와 새로운 레이어
헤이리 건축설계지침은 김종규(한국예술종합학교)와 김준성(전 경기대 건축대학원)에 의해 작성되었다. 차세대 기대주로 각광받으며 90년대 국내에 돌아온 두 사람은 40대를 넘어 중진 건축가로 성숙했으며, 이번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동지적 유대를 맺고 있다. 각자 독창적인 사고를 통해 개성적인 건축세계를 선보여 왔던 이들은 누구보다 세계건축의 이슈와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 건축적 경관 (architectural landscape)에 관한 개념들, 도시건축적 하부구조(Infrastuctural Urbanism)의 설정 등은 현재 유럽 건축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이기도 하다. 건물과 기능, 독자적 형태와 공간 등 좁은 울타리에 집착했던 지난 세기의 건축이 결과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도시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데, 그 수 없었던 도시계획과 도시설계 기법은 건축을 획일화된 상업적 도구로 전락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반성의 끝에서 건축가가 해야할 일은 곧 도시 또는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존하고 최소로 디자인하는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된다. 또한, 도시계획에서 이른바 도시인프라를 설정하여 필지를 나누고, 나누어진 필지 안에서 자유로운 건축계획을 허용하는 근대적 디자인 과정은 결국 개별 건축에 면죄부를 주는 합법적 불법이 되고 만다. 헤이리의 초기 마스터플랜도 합법적 불법을 보장해주는 근대적 방식에 충실하게 진행되었다. 일산신도시에 무수히 세워지는 러브호텔이나, 목동신시가지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을 도시계획법으로는 도저히 규제할 수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법을 어기지 않는 상태에서 내 땅에 내 돈으로 마음대로 짓는데 누가 간섭할거냐는 배포는 바로 이런 합법적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초기에 작성된 마스터플랜은 너무나 통상적이었다. 지형을 따라 도로망을 설정하고, 공원과 공공장소들을 녹지축이 연결하며, 필지들은 도로를 따라 균등하게 분할되었다. 현재의 코디네이터팀이 헤이리 작업을 인수할 당시는 이미 마을의 도로계획과 필지분양이 진행되어, 마을의 하부구조는 결정된 상태였다. 게다가, 너무 잦게 교차되는 도로망은 위계와 질서를 찾기 어렵고, 녹지들은 대상화되어 있으며, 필지들의 공동체적 영역은 모호했다. 통상적인 하부구조 위에는 통상적인 건축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김종규와 김준성은 이를 대지에 가해진 하나의 제약으로 환원시켜 새로운 레이어를 계획하게 된다. 그들이 헤이리 계획에서 택한 두 개의 원칙은 건축행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계획의 과정을 다시 설정하는 일이었다. 건축은 주어진 환경에 대해 우호적으로 대응해야하고 완성된 건축물들은 다시 환경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택한 이러한 건축에 대한 정의는 곧 건축적 경관, 인공적 풍경(landscape)으로 요약된다. 또한 도시계획과 건축계획을 하나의 과정 속에 용해하고, 도시계획을 건축적 하부구조를 설정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건축계획은 하부구조에서 설정된 제한 속에서 가능토록 만들었다. 랜드스케이프의 개념을 따라 다시 정의된 건축, 재조정된 계획의 프로세스는 헤이리 계획을 끌고 나가는 두 축이다.
랜드스케이프에 대해
여기서 말하는 ‘랜드스케이프’는 ‘조경’이나 ‘풍경’으로는 번역할 수 없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서구 건축사의 뿌리깊은 전통이었던 건축의 중심성, 또는 건축의 오브제화에 대한 집착은 르네상스 이후 더욱 강화되어 근대건축의 상식이 되어왔다. 랜드스케이프는 건축의 오브제화를 거부하고, 건축은 단지 “환경을 점유하는” 구조물일 뿐이다. 오브제로서의 건축은 도시의 주인으로 행세하지만, 점유한 건축은 도시의 조연 또는 배경일 뿐, 도시의 주인은 오히려 건축과 건축 사이(점유와 점유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의 공간들이다.
따라서 이 사이공간들(Between Space)에 대한 배려와 디자인이 중요하게 되고, 개별적인 건축들은 이 사이공간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배경이 되어야한다. 그럼 배경적인 건축, 사이공간을 위한 개별건축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한가지 가능성을 김종규는 자연 지형에서 찾는다. 그는 건축적 공간이란 곧 지형적 공간(Landspace)의 일부이며, 건축적 형태란 지형의 연장이며 지형의 추상화된 형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형 – 더 나아가 환경과 무관한 건축적 형태와 공간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김종규의 건축에서 흔히 나타나는 경사진 바닥면들은 지형적 공간을 가능케 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파악할 수 있다.
지형적 공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모티브로 자연지형의 바닥면을 건축으로 연장하고 재현한다는 개념은 MVRDV가 제안하는 바닥경관론(Groundscape)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한 선도그룹으로서 MVRDV는 건축가의 구체적 행위란 “대지와 그곳에서 일어날 건축 및 이벤트를 위해 그라운드를 건조하는 작업”이라 규정하고, 그 대지를 구축하는 작업을 통해 건축적 랜드스케이프가 얻어진다고 본다. 그들의 이러한 개념들은 건축물 내부의 다층적 바닥 (multi-ground)을 가능케하고, 지표면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같이 접혀있는(folding) 건축공간을 추구하기도 한다.
김종규와 김준성은 바닥면의 구체적 도구로 패치(patch)와, 그 대항적 요소로 판위 (plate)를 도입한다. 임의로 잘려진 작은 헝겊조각과 같이 패치들은 대지의 여기저기에 배열되지만, 기존에 계획된 도로들을 따라 놓여짐으로써 일정한 패턴과 질서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절점이나 쉼점에 간헐적으로 판위들이 점재한다. 선형 바닥인 패치와 독립된 면인 플레이트는 길과 길 사이의 필지를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패치에는 도로와 필지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고, 건축 가능선이 지시되어 있다. 따라서 패치는 단순한 바닥면의 재료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헤이리 전체의 랜드스케이프를 형성할 가장 중요한 기준면이며 건축의 출발면이다.
헤이리의 바닥면 배열도는 마치 잘 디자인된 골프코스를 연상시킨다. 지형을 따라, 도로를 따라 질서를 유지하며 배열된 패치들은 일련의 홀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며, 판위들은 티업존이기도하고, 관전점이기도 하고, 클럽하우스이기도 하다. 패치들과 골프 코스는 지형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동선의 흐름을 따라 배열되었기 때문에 서로 유사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프로세스에 대해
패치나 플레이트는 그 위에 세워질 건물의 위치와 규모를 규정하며 형태까지도 유도하게 된다. 헤이리에 적용되는 건폐율, 용적률, 층수, 최고높이의 일괄적 제한은 여타 계획에서 볼 수 있지만, 패치나 플레이트에 규정되어 있는 건축 점유가능선은 매우 강력한 규제로서 헤이리 건축들을 붙들어 매는 끈들이다. 점유가능선이란, 최대 건폐율 확보를 계산할 때, 그 자체가 바로 건축선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각 바닥면의 유형에 따라 건물의 재료까지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성을 드러내는 솔직한 재료,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재료, 첨단 기술에 의해 생겨난 재료로 규정되어 있지만, 몇 개의 가능성 밖에 없는 건축재료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이 역시 강력한 형태적 제한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패치와 플레이트는 도시적 하부구조이자 건축적 하부구조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디자인의 대상일 뿐 아니라 김종규와 김준성이 의도했던 도시계획과 건축계획의 통합적 프로세스, 그 자체이기도 하다. 도시와 건축계획을 통합 조정하기 위해 ‘도시설계’ 또는 ‘지구단위상세계획’이라는 절충적 과정이 제안되기도 했다. 이들 방법은 도시계획과 건축계획의 독립성을 인정한 채, 그 사이에 끼워 들어간 또 하나의 계획으로서 프로세스의 복잡성만 가중시키게 된다. 그러나 헤이리의 방법은 도시건축적 하부구조를 매개로 도시계획과 건축계획을 동시에 진행하게 한다. 패치와 플레이트는 건축적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적 사이공간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부구조의 변화를 수용하도록 열려있는 면이다. 시간과 사이를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인과 도시형성의 프로세스로 전환된다. MVRDV가 바닥경관(groundscape)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과 변화가 수반되는 독특한 디자인 과정, 즉 “이미지가 아니라 프로세스다” 라고 천명한 바와도 유사하다.
헤이리의 건축적 랜드스케이프는 바로 이러한 동시 통합적 프로세스를 통해 얻어진다. 어쩌면, 헤이리의 코디네이터들이 개별건축가를 제어하고 조정해야할 부분은 바로 디자인의 내용이 아니라 과정일 것이다. 헤이리에서 랜드스케이프와 프로세스는 서로가 서로를 보증해주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프로그램은 어디로 가는가?
헤이리의 디자인 내용과 방법, 과정은 신선하면서도 정밀하다. 그리고 가시적인 차원에서는 충분히 현실적이며 실현 가능하다. 헤이리는 개발과정에서 세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자연과 인위적 개발의 조화, 둘째 다양한 프로그램의 수용, 셋째 시간 경과에 따른 불확정적 구성 가능성. 친환경적 개발 목표는 이미 너무 상식적이며, 단지 그 시행여부가 문제될 뿐이다. 개발과정의 목표를 열어둔 것은 신개발지의 전략적 목표로도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헤이리에 벌어질 다양한 프로그램들 -건축주들이 희망하고 단지의 분위기가 부추기는 문화적, 상업적 기능들을 수용한다는 목표는 그 실행가능성이 의문스럽다. 1차로 설계된 40여 개의 개별건물들은 순수 주거용도는 소수이며, 대부분 책방이나 카페 등 상업시설, 각종 갤러리 등 문화시설들이 복합되어 있다. 특히 카페는 8군데, 각종 전시장은 13군데나 된다. 물론 한집 건너 하나씩 들어선 각종 개방시설들이 헤이리를 폐쇄된 주거단지가 아니라, 외부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아트밸리’로 발전시키는데 필수 불가결한 시설들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200여 호에 불과한 이 곳에, 건축물 외에 어떤 유인요소도 없는 이 곳에 이처럼 과다한 시설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유지될 수 있는가?
헤이리 보고서 어디에도 문화 상업시설에 대한 시장분석이 나타나 있지 않다. 여러 시설들을 밀집시키면 나타날 수 있는 ‘집적효과’도 여기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집적효과란 동일 용도의 기능들이 모여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유인효과이다. 거기에는 풍부함과 다양성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이리의 각종 시설들은 제각기 독자성을 유지하려 하고, 중복되지 않는 여러 시설들의 전람회장으로 설정된 듯 하다. 이점이 헤이리의 성공 -건축적 성공을 포함하여- 여부에 가장 심각하게 우려되는 점이다. 인근 파주출판도시와는 상황이 다르다. 파주는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는 출판사와 인쇄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파주에서 문제되는 것은 도심과 떨어져있는 생산시설의 지리적 거리일 뿐, 시설면에서는 뚜렷하게 ‘선택되고 집중’되어 있다. 반면, 헤이리는 지리적 거리, 대중교통 연계망, 외부적 인지도, 그리고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는 프로그램들은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입지여건이야 주어진 것이라 해도, 프로그램들은 선택될 수 있다.
물론 헤이리의 입지나 프로그램은 입주 주체들의 결정이며, 참여 건축가들은 주문된 프로그램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전통적인 프로세스이다. 그러나 건축의 정의를 확장하고, 계획의 과정을 새롭게 하는 획기적 시도 속에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 네덜란드 그룹이 주장하듯이, 건축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입지조건이나 건축적 개념만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제약들이며, 이 보이지 않는 제약들을 코드화하는 데이터스케이프(datascape)의 건축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과정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난립한 프로그램들은 다시 전략적으로 정리하고 조정해야할 과제라고 보인다.
건축적 성공은 어디까지인가? 헤이리의 건축지침에는 명쾌한 이론이 있고, 계획과정의 일관성이 있다. 그러나 지침에 제시된 대로 토목공사가 이루어지고, 지침에 따라 설계된 건물들이 완공되고, 언론의 찬사를 받고, 초기 입주자들이 만족하면 끝나는 것인가? 이 역시 전통적인 사후 평가일 뿐이다. 지속적인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활력으로 초기의 계획을 수정해야 할 때, 헤이리의 거대한 실험과 의미있는 의도들이 성공했다고 할 것이다. 가정하기는 싫지만, 헤이리의 실패는 한 단지의 실패가 아니라, 근본적인 건축적 실험의 실패가 되기에, 프로그램에 대한 재검토가 절실하게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