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5.09.27.
출처
한국목조건축의 기법
분류
서평

<서평>
한국목조건축의 기법
-金東賢 지음, 도서출판 발언, 1995.8.

건축사 연구에 있어서 일차적인 사료의 정리없이 이차적인 해석을 시도하기는 불가능하다. 제한된 사료의 수준은 제한된 해석만을 초래할 뿐이다. 기존의 많은 한국건축 연구 가운데 질적으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나, 독창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 적은 이유는 대부분 사료의 결핍에서 기인한다. 사료의 결핍이란 대상의 수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존 사료의 체계적인 정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되기도 한다. 90년대 들어 한국건축 연구가 주춤해지고, 유능한 연구인력이 재생산되지 않는 이유도 불충분한 사료의 정리에 기인한다고 보인다.
오랜 기간 문화재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주목할만한 연구결과들을 발표해 온 김동현 박사의 <한국목조건축의 기법>은 앞서 지적한 연구풍토를 일신할 역작임에 틀림없다. 김박사의 새로운 저작은 기존 연구의 부분성 편협성을 뛰어 넘어 목구조에 대한 전체적 시각을 열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수많은 기존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 있다. 평면에서 구성요소들 그리고 총체적인 가구법과 단청 조각의 장식까지 목구조집을 이루는 요소와 체계에 대해 빠짐없이, 그리고 균등한 비중에서 정리했다. 목조건물이 비단 공포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단도 초석도 공포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평범한, 그러나 신선한 건축적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각 요소들은 개념 -역사 -종류 -기법의 순으로 정의되고 재분류되며 해석된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자료들은 저자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얻어진 높은 식견에 의해 꿰어진 구슬들로 탈바꿈된다. 풍부한 자료와 체계적인 분석. – 학문적 연구의 기본적인 토대일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하는 충분조건이다.
이 책은 아울러 대중성도 확보하리라 예견된다. 그 요체는 평이한 서술과 새로운 정의 통해 정비된 용어 선택에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심포 형식을 라대 주심포 (신라계)와 려대 주심포 (고려계)로 나누어 고찰한다든가, 기단 형태의 종류를 층급기단 단면기단 성규형기단 등으로 분류한 것 등은 새롭고도 반가운 분류법이다. 또한 <영조법식>에 근거한 용어의 재정의, 중국과 일본 고대건축과의 비교, 개괄적이기는 하지만 서양고대건축과도 비교를 시도한 점도 대중적인 주목을 받을만한 내용이다. 특히 마지막 장인 ‘목조건축의 조각’ 부분은 저자의 독창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저술된 부분으로 이 책에 독자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환영할 만한 내용과 체계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결락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여전히 목구조를 현상적인 형식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 기둥과 공포의 구성요소들의 결합 속에 내재한 역학적 조직체로서 목구조를 분석했다면, 한단계 더 앞선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또 한가지는 목구조를 생산하는 기술자의 관점에서, 그리고 시공과정을 따라 체계를 잡았다면 더욱 알기 쉽고 생생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20년 전에 쓴 <한국고건축 단장>의 보완판이라고 겸손을 표했지만, <한국목구조의 기법>은 전혀 새로운 저작이며, 한국건축계의 커다란 업적으로 기록될 것을 확신한다.